[imazine] 위대한 유산 ③ 고려인삼

'고려'라는 국명 세계에 알린 일등공신

(금산·영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고려인삼은 일본이나 중국의 인삼과 비교해 효능과 맛, 향 그리고 가격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고려인삼은 일찍이 아시아 각국 왕실의 최고 진상품이 됐고, 고려라는 국호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절대적으로 이바지했다.

눈 내린 금산군의 인삼밭 [사진/성연재 기자]
눈 내린 금산군의 인삼밭 [사진/성연재 기자]

◇ 고려인삼이라는 브랜드

고려인삼(Korean ginseng·高麗人蔘)은 신라 시대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고려인삼의 브랜드 가치를 온 국민에게 심어준 일화가 있다.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은 고려인삼을 중국에 판매하러 갔지만 중국 상인들의 담합에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이때 동행한 추사 김정희가 임상옥에게 붓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줬다.

'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진일보)

백척간두의 위험에서도 뒷걸음치지 말고 한 발짝 앞으로 더 나가라는 뜻이다.

임상옥은 비장한 각오로 중국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고려인삼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헐값에 팔기보다는 불에 태워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놀란 중국 상인들은 잘못을 빌며 오히려 훨씬 비싼 가격에 고려인삼을 매입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덕분에 임상옥은 고려인삼의 브랜드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

이 일화는 2001년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MBC 드라마 '상도'를 통해서도 소개됐다.

일제강점기 개성의 인삼 건조 풍경 [사진/성연재 기자]
일제강점기 개성의 인삼 건조 풍경 [사진/성연재 기자]

고려인삼은 실크로드를 통해 동남아는 물론, 멀리 아라비아 등지까지 팔려나갔다. 덕분에 고려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고 벽란도를 통해 'COREA'라는 단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인삼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성덕왕이 200근의 삼을, 효성왕과 경문왕이 각각 100근의 삼을 당나라에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의 인삼재배 기록은 조선 후기 문헌인 산림경제, 해동농서, 임원경제지 등에 등장한다. 조선 시대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의 지시로 인삼이 재배되면서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인삼이 유명한 것은 유효 사포닌 성분 덕분이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과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등이 지난 2004년 조사한 결과, 인삼의 사포닌 성분 가운데 특이성분으로 알려진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의 경우 고려인삼에는 34종, 미국 화기삼에는 13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려인삼에는 화기삼에는 없는 Rh2, Rf, Rg3 성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Rh2는 항암에, Rf는 생체신호 전달체계에 효과가 있으며, Rg3는 혈관의 이완과 수축을 돕는 성분이다.

금산군 수삼센터에 전시된 인삼 [사진/성연재 기자]
금산군 수삼센터에 전시된 인삼 [사진/성연재 기자]

◇ 국가중요농업유산 충남 금산

인삼 재배지로 충남 금산을 빼놓을 수 없다. 금산의 인삼 농업은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되고 2018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될 만큼 국내 인삼 생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금산은 개성·풍기와 함께 조선 시대 대표적 인삼 생산지였으며, 1923년에 금산삼업조합이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인삼 재배·가공·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금산은 해발 400∼700m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로, 고려인삼이 자라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비옥한 토양과 금강 지류의 농업용수도 풍부하다.

금산에서도 대표적인 경작지로 손꼽히는 곳은 제원면의 '포평뜰'이다. 포평뜰에는 금산 인삼 홍보전시관인 삼락원이 세워져 있다.

삼락원에서 만난 금산인삼조합의 이용기 회장은 "포평뜰은 1천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대표 인삼 생산지이자 금산의 얼굴마담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금산은 여타 지역과 달리 씨를 직파해 기른다.

대표적인 인삼 경작지 포평뜰 [사진/성연재 기자]
대표적인 인삼 경작지 포평뜰 [사진/성연재 기자]

인삼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배지 선정과 관리다. 한번 선정하면 한자리에서 최소 3년, 길게는 6년을 재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땅심을 기르기 위해 호밀 등 다양한 작물들을 미리 2년 정도 키워 최적의 토양을 만든다. 금산에서는 토질 개선을 위해 다른 곳의 흙을 갖고 와 붓는 '객토'를 하는 농가가 많다.

차를 몰고 금산군 부리면 선원1리로 향하던 중 인삼밭을 객토하고 있던 주민 양희두 씨를 만났다.

양씨는 "새 흙을 받아서 거름을 넣고 2년을 묵혀 관리한 뒤 종자를 심는다"고 말했다.

실제 금산에서는 흙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두 객토를 하는 차들이다.

부리면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제원면 쪽으로 들어오니 밤새 하얗게 눈이 내렸다. 햇볕을 가리기 위해 부직포를 설치한 인삼밭 위로 내린 하얀 눈은 평소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인삼밭 객토 현장의 농민 [사진/성연재 기자]
인삼밭 객토 현장의 농민 [사진/성연재 기자]

◇ 빠질 수 없는 인삼 먹거리와 쇼핑

국내 최대 인삼 산지인 충남 금산은 전국 인삼의 70%가량을 유통한다. 타지역에서 생산된 인삼도 대부분 금산에서 팔려나간다는 얘기다.

명실상부한 인삼의 본고장인 셈이다. 금산읍 신대리에는 금산수삼센터와 금산국제인삼유통센터 등 현대화한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다.

금산국제인삼유통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백화점 같은 건물에서 관광객들이 쉽게 쇼핑할 수 있게 돼 있다. 수십 가지 다양한 금산 자체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금산만의 다양한 인삼 브랜드들을 만날 수 있는 국제인삼유통센터 [사진/성연재 기자]
금산만의 다양한 인삼 브랜드들을 만날 수 있는 국제인삼유통센터 [사진/성연재 기자]

때마침 설 대목을 앞두고 관광객들이 쇼핑백에 다양한 홍삼 제품을 담고 있었다.

매장 직원은 "이곳에는 금산 인삼의 자부심이 있어 정관장이나 한삼인 같은 브랜드는 입점해 있지 않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밖으로 나오니 왼편에 수삼센터 건물이 보인다. 수삼센터는 인삼을 살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인삼들이 진열돼 있다.

5호점의 이상옥 대표는 가성비 가장 좋은 인삼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외형은 못났지만, 잔뿌리가 잔뜩 붙은 것이 가장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귀띔한다.

실제 인삼의 사포닌 성분은 잔뿌리에 많다. 750g에 2만원을 주고 못생긴 인삼을 사 들고 나왔다.

금산에 왔으면 인삼을 재료로 한 음식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수삼센터 밖으로 나오니 추운 날씨에도 인삼 막걸리가 가게 밖 테이블에 잔뜩 진열돼 있다.

독특한 맛의 인삼 튀김과 인삼막걸리 [사진/성연재 기자]
독특한 맛의 인삼 튀김과 인삼막걸리 [사진/성연재 기자]

인삼 막걸리 외에도 눈에 띄는 먹거리가 즐비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삼 튀김이었다.

별맛이 있을까 싶어 지나치려는 순간 한 인삼 튀김 가게 주인이 한번 먹어보고 가라고 권한다.

튀김을 입에 넣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구마처럼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인삼을 튀기면 이렇게 고구마 맛이 난다고 한다.

다양한 인삼 먹거리 중 가장 만족감이 높았던 것은 인삼 삼계탕이었다. 쫄깃한 토종닭의 육질과 깔끔함이 돋보이는 국물 맛 덕분에 뚝배기가 바닥을 드러내도록 먹었다.

◇ 2021 인삼 엑스포가 열리는 경북 풍기

풍기 인근 봉화군의 인삼밭 [사진/성연재 기자]
풍기 인근 봉화군의 인삼밭 [사진/성연재 기자]

우리나라 인삼 농사에서 금산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경북 영주의 풍기다.

풍기는 고려인삼이 가장 먼저 대규모로 재배된 곳으로 자부심이 높다.

풍기인삼은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 선생이 재배를 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무거운 산삼 공납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산삼 씨를 채취해 풍기읍 금계리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다.

풍기는 금산보다 15년 빠른 1908년에 풍기삼포조합을 결성해 체계적으로 인삼 농사를 관리해왔다.

소백산 자락에 있는 영주는 소백산의 풍부한 유기물과 대륙성 한랭기후가 만나 인삼 생육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풍기 인삼박물관의 인삼 식재 모형 [사진/성연재 기자]
풍기 인삼박물관의 인삼 식재 모형 [사진/성연재 기자]

풍기 지역의 평균 해발은 200m가량으로, 땅바닥은 배수가 잘되는 자갈과 모래가 많아 인삼 농사의 최대 적인 곰팡이가 잘 번식하지 않는다.

풍기는 객토 사업이 왕성한 금산과 달리, 주변에서 땅심이 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밭을 계약해 재배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

풍기읍사무소 건물에 있는 풍기인삼축제 조직위원회를 찾아 이창구 위원장을 만나 풍기 인삼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들은 뒤 소백산 자락에 있는 인삼박물관으로 갔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상황이지만, 취재를 위해 미리 요청해둔 덕분에 박물관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풍기인삼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알 수 있다.

인삼 클렌징 [사진/성연재 기자]
인삼 클렌징 [사진/성연재 기자]

특히 흥미를 끌었던 것은 1년근부터 6년근까지 인삼이 밭에 심어진 모습을 모형화한 것으로, 한눈에 인삼 생산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풍기의 경우 재배 방법이 금산과 달랐다.

인삼박물관 이학주 관장은 "씨를 뿌려 어느 정도 크기가 되면 그것을 재배할 밭으로 옮겨심는 이식 삼이다. 씨앗을 직파하는 금산과 다른 부분"이라고 말했다.

풍기인삼의 또 다른 특징은 논에 삼을 심는 '논삼'이라는 점이다.

이창구 위원장은 "밭에 심는 밭삼과 달리 논삼은 사포닌 성분이 더 다양하다"고 말했다.

풍기는 금산만큼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곳이니만큼 재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올해 9월 2021 영주 세계풍기인삼엑스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삼 종주국의 위상을 다시 정립하고 침체한 국내 인삼 산업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 곳곳에 보이는 인삼건강원

인삼건강원 주인이 작업 도중 홍삼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인삼건강원 주인이 작업 도중 홍삼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인삼 농사의 본고장답게 풍기에는 인삼건강원이 곳곳에 눈에 띈다.

한 건강원 문을 열고 무작정 들어갔더니 마침 찐 홍삼을 기계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가게가 영주에만 200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농민들이 찐 홍삼을 이곳에 가져오면 진액을 짜주는 곳이다.

풍기읍내를 다녀보면 인삼을 소재로 한 먹거리가 자주 눈에 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인삼 불고기다.

한 식당은 홍삼액에 쇠고기를 절여 숯불에 구워내는 메뉴가 있다.

홍삼액에 쇠고기를 절여 숯불에 구워내는 인삼석갈비 [사진/성연재 기자]
홍삼액에 쇠고기를 절여 숯불에 구워내는 인삼석갈비 [사진/성연재 기자]

뜨거운 돌에 인삼 조각과 함께 나오는 인삼석갈비는 마치 연탄불고기처럼 잘 구워져 겉 부분은 바싹하고 안은 육즙이 촉촉했다.

인삼 불고기는 풍기를 들른 사람들은 꼭 찾아봐야 하는 맛이다.

다음으로 인삼홍삼센터를 찾았다. 금산에 비하면 규모가 다소 작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쇼핑센터가 다섯 군데나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45개 상점이 성업 중이었다.

수삼판매장과 홍삼 판매장이 구분된 금산과 달리 이곳은 수삼과 홍삼 등 다양한 제품을 동시에 판매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홍삼을 활용한 클렌징 크림 등 다양한 화장품도 개발됐다.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들어 상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코로나19 영향 탓이 적지 않다고 했다.

상인들은 올 9월로 잡혀있는 영주 세계인삼엑스포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축제장을 찾는 고객들이 쓰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풍기인삼축제 조직위원회 이창구 위원장이 인삼홍삼센터에서 한 상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풍기인삼축제 조직위원회 이창구 위원장이 인삼홍삼센터에서 한 상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상인들의 기대에 찬 말을 듣는 이창구 위원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코로나19로 엑스포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이때야말로 거상 임상옥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댓글쓰기

이매진 기사는 PDF로 제공됩니다. 뷰어설치 > 아크로벳리더 설치하기

출판물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