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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위대한 유산 ② 기암괴석과 청옥빛 바다, 그리고 작은 섬들

송고시간2021-03-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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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이어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꼽힌다.

우아한 청옥빛을 뽐내는 남해 바다와 구불구불 해안을 따라 보석처럼 박힌 작은 섬들이 어우러진 경관은 전국 22개 국립공원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웅장한 산과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바다 풍경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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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석 '금산'

해 질 녘 금산에서 내려다본 남해 [사진/전수영 기자]

해 질 녘 금산에서 내려다본 남해 [사진/전수영 기자]

(남해=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이어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꼽힌다.

우아한 청옥빛을 뽐내는 남해 바다와 구불구불 해안을 따라 보석처럼 박힌 작은 섬들이 어우러진 경관은 전국 22개 국립공원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경남 남해군에 있는 금산은 535㎢에 달하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웅장한 산과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바다 풍경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다.

◇ 비단을 두른 듯,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

금산(錦山)은 이름 그대로 비단처럼 아름다운 산이다.

흔히 이름난 명승에는 8경이니 10경이니 하는 명소가 있는데, 금산에는 무려 38경이 전해 내려온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금산의 석양 [사진/전수영 기자]

제석봉에서 바라본 금산의 석양 [사진/전수영 기자]

38경 대부분은 자연이 만들어낸 기기묘묘한 형태의 바윗덩어리들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신비한 기암괴석이 경탄을 자아내고,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은 산행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해준다.

금산이 품은 절경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안에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던 원효대사부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영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 나선 진시황의 신하 서복에 이르기까지 간절했던 발걸음들이 바위 곳곳에 박혀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가장 큰 '줄사철나무'. 금산 정상 부근 해발 700m 기암괴석에 붙어서 자생하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가장 큰 '줄사철나무'. 금산 정상 부근 해발 700m 기암괴석에 붙어서 자생하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금산은 보타산에서 보광산으로, 보광산에서 다시 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보광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이 산을 찾았을 때 산이 엄청난 빛을 발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원효대사가 이 산에 올라와 기도하며 지은 절 보광사가 바로 보리암의 전신이다.

'금산'은 태조 이성계가 내린 이름이다. 고려말 남해로 내려와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가 이 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린 뒤 조선을 건국했다고 한다.

'만약 왕이 된다면 산 전체에 비단을 둘러드리겠다'고 기도했던 이성계는 '산을 비단으로 덮을 수는 없으니 대신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산이라 하면 어떻겠느냐'는 신하의 제언에 따라 이 산을 금산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금산 동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사암 [사진/전수영 기자]

금산 동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사암 [사진/전수영 기자]

남해가 '보물섬'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도 금산과 관련이 있다.

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배에 보물을 싣고 동쪽으로 향하다 남해까지 와서 보물의 일부를 금산 어딘가에 묻어놨다는 전설이 있다.

두모마을에서 출발하는 금산 등산로 중간쯤에 거북 형상 바위가 있는데, 여기 새겨진 석각이 서복이 남긴 글씨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는 서복의 석상도 있다. 2014년 남해에서 서복을 주제로 한 한·중 학술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을 때 중국 학자들이 가져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 금산 38경…역사와 전설이 얽힌 기암괴석의 향연

해발 700m인 금산은 정상 부근까지 찻길이 나 있다. 복곡2주차장(해발 577m)에 차를 대고 20∼30분 정도만 걸으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금산을 찾는 탐방객 대부분은 보리암과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유명해진 금산산장 정도를 둘러본 뒤 돌아선다. 하지만 무려 38경을 품은 금산에 와서 고작 두 곳만 찍고 가기에는 너무 아쉽다.

굳이 산 밑에서부터 등산로를 따라 오르지 않아도 된다.

복곡2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리암, 쌍홍문, 상사바위 등을 거쳐 정상까지 연결되는 탐방로를 따라 두 시간가량 걷다 보면 금산의 절경을 대부분 가져갈 수 있다.

거대한 장군암과 허리 굽혀 절하는 듯한 모습의 형리암은 마치 장군과 신하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거대한 장군암과 허리 굽혀 절하는 듯한 모습의 형리암은 마치 장군과 신하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진/전수영 기자]

복곡2주차장에서 출발한 탐방객을 가장 먼저 맞는 금산 38경은 3경인 대장봉과 4경인 형리암이다.

보리암 뒤편에 창공을 찌르며 우뚝 솟은 거대한 장군암과 그 앞에 허리 굽혀 절하는 듯한 모습의 조그만 형리암이 마치 장군과 신하의 모습 같다. 형리암은 엄지를 '척'하고 올린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 보리암으로 향하지 않고 정상을 먼저 찍은 뒤 부소암, 상사바위, 쌍홍문, 보리암을 거쳐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눈길을 끄는 거대한 바위는 금산 2경인 문장암이다.

'신선이 벗어놓고 간 나막신'이라고 해서 '목혜 바위'라고도 불린다는데, 듣고 보니 정말 커다란 나막신처럼 생겼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거대한 나막신 모양의 바위에는 조선 시대 유학자 주세붕의 친필이 새겨져 있어 문장암이라 불린다. [사진/전수영 기자]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거대한 나막신 모양의 바위에는 조선 시대 유학자 주세붕의 친필이 새겨져 있어 문장암이라 불린다. [사진/전수영 기자]

문장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바위에 조선 시대 유학자인 주세붕 선생의 친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주세붕 선생은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 남해에 있는 금산이 명산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쌍홍문(금산 15경)을 통해 정상까지 오른 뒤 이 바위에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 : 홍문으로 말미암아 금산에 오르다)이라는 글씨를 새겨넣었다고 한다.

문장암에서 조금만 더 가면 금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망대'다. 이곳이 바로 금산 1경이다.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과 광활한 남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망대에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했던 우리나라의 최남단 봉수대가 복원돼 있다.

금산 정상에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가 남아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금산 정상에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가 남아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망대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부소암이다. 34경인 부소암은 기이한 모양으로 탐방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거대한 둥근 모양의 바위가 사람의 뇌를 꼭 빼닮았다. 일부러 깎아 만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형상을 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기이한 바위 너머로 보이는 남해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부소암에는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서 귀양살이하고 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부소암은 바위를 등지고 있는 암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옛 건물을 헐어내고 다시 짓는 중이다.

사람의 뇌를 꼭 빼닮은 부소암 [사진/전수영 기자]

사람의 뇌를 꼭 빼닮은 부소암 [사진/전수영 기자]

부소암에서 발길을 돌려 금산 능선 서남쪽 끝에 솟아있는 상사바위로 향했다. 27경인 상사바위는 금산을 통틀어 가장 웅장하고 큰 암봉이다.

봉우리에 오르니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금산과 섬들이 점점이 박힌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은 동쪽 절벽에 서 있는 보리암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반대로 상사바위의 웅장한 자태는 보리암에서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다.

27경인 상사암은 금산을 통틀어 가장 웅장하고 큰 암봉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27경인 상사암은 금산을 통틀어 가장 웅장하고 큰 암봉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상사암에는 유난히 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상사병에 걸린 한 젊은 남자가 이 바위에서 여인과 사랑을 맺었다는 전설도 있고, 부잣집 주인의 딸을 사랑한 머슴이 상사병으로 죽은 뒤 뱀으로 변해 딸의 몸을 감아 떨어지지 않자 이곳으로 딸을 데려와 굿을 한 뒤 뱀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상사암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사진/전수영 기자]

상사암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사진/전수영 기자]

◇ '금산의 관문' 쌍홍문 지나 보리암으로

상사암에서 내려와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좌선했던 곳이라는 좌선대(20경)를 거쳐 쌍홍문으로 향했다.

쌍홍문은 산 밑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보리암으로 갈 때 지나게 되는 관문이다.

암벽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나란히 나 있는 것이 두 눈에 구멍이 뚫린 해골바가지처럼 험상궂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던가. 원효대사는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해서 쌍홍문(雙虹門)이라 불렀다고 한다.

금산의 관문인 쌍홍문. 원효대사가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해서 쌍홍문이라 불렀다. [사진/전수영 기자]

금산의 관문인 쌍홍문. 원효대사가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해서 쌍홍문이라 불렀다. [사진/전수영 기자]

동굴처럼 생긴 쌍홍문 안으로 들어가 뒤를 돌아보니 둥근 원 안으로 보이는 다도해의 풍광이 일품이다.

석가모니가 금산에 와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인도로 돌아갈 때 이 문을 통과해 돌배를 타고 내려가다 금산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인 세존도(36경)에 부딪혀 섬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렸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쌍홍문 안쪽에서 바라본 남해의 절경 [사진/전수영 기자]

쌍홍문 안쪽에서 바라본 남해의 절경 [사진/전수영 기자]

쌍홍문에서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보리암이다. 금산 하면 누구나 보리암을 먼저 떠올릴 만큼, 어쩌면 금산보다 더 유명한 암자다.

보리암은 강화도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3대 관음 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정성 들여 기도드리면 한가지 소원은 꼭 이뤄진다고 한다.

상사암에서 바라본 보리암 [사진/전수영 기자]

상사암에서 바라본 보리암 [사진/전수영 기자]

보리암 경내에는 남해를 내려다보는 해수 관음상과 작은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다. 삼층석탑이 있는 자리는 금산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와 남해에서 불어오는 기운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이곳에 나침반을 갖다 놓으면 바늘이 정북 쪽을 가리키지 못하고 계속 춤을 춘다고 한다.

삼층석탑이 서 있는 절벽은 '탑대'라고 해서 금산 5경으로 꼽힌다.

이 석탑에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인도에서 김해로 오던 허황옥의 배가 심한 풍랑에 자꾸 되돌아가자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파사석(婆娑石)을 배 밑바닥에 깔고 김해로 왔는데, 이 석탑이 바로 그 파사석으로 만든 탑이라는 것이다.

보리암은 강화도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3대 관음 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사진/전수영 기자]

보리암은 강화도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3대 관음 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사진/전수영 기자]

보리암은 소위 '기도발'이 잘 먹히는 명당으로 꼽히지만,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린 곳은 보리암이 아니라 탑대에서 동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삼불암 아래쪽이었다.

9경인 삼불암은 누워 있는 바위 한 개와 서 있는 바위 두 개로 이뤄져 있다. 세 개의 바위가 부처님 좌상 같다고 해서 삼불암이라고 부른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리기 전에는 바위 세 개가 다 누워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내가 한 나라의 재상이라면 바위 하나를 올려주고, 왕이 될 재목이라면 두 개 올려달라. 만약 고구려 옛 땅까지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이라면 세 개를 올려달라'고 기도를 드리자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려오면서 바위 두 개가 일어나 앉았다고 한다.

보리암 동쪽 건너편의 삼불암 아래쪽에 조선태조기단이 있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백일기도를 드린 곳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보리암 동쪽 건너편의 삼불암 아래쪽에 조선태조기단이 있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백일기도를 드린 곳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절경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산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덧 상사바위 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38경을 모두 훑진 못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출발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레지꽃이 금산을 아름답게 수놓는 계절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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