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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고문…' 낙동강변 사건 조작부터 무죄 판결에 이르기까지

송고시간2021-02-0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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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 변 갈대숲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었다.

경찰은 괴한들의 소재를 쫓았지만 검거에 실패했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1991년 11월 8일 경찰공무원을 사칭해 구속된 최인철, 장동익 씨가 느닷없이 이 낙동강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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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사칭죄로 구속됐다가 살해 사건 범인 지목

21년 옥살이 후 모범수 석방…31년 세월 흘러 무죄 판결

2019년 대검 과거사위 범인조작 결과 발표 후 재심 개시

21년 한 씻어낸 31년 만의 무죄
21년 한 씻어낸 31년 만의 무죄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최인철(왼쪽) 씨와 장동익 씨가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박준영 변호사.
부산고법 제1형사부는 4일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1.2.4 handbrother@yna.co.kr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 변 갈대숲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었다.

경찰은 괴한들의 소재를 쫓았지만 검거에 실패했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1991년 11월 8일 경찰공무원을 사칭해 구속된 최인철, 장동익 씨가 느닷없이 이 낙동강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두 사람은 그해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닷새 동안 부산 사하경찰서 수사관으로부터 자백 강요와 함께 모진 폭행과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최씨는 "계속되는 물고문에 살려고 손가락을 까딱했다. 자백한다는 의미였다"면서 "경찰이 시키는 대로 썼다. 검찰과 법원에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qISqqXiuaLU

두 사람은 1991년 12월 30일 강도강간, 특수 강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약 10개월 뒤인 1992년 8월 두 사람은 부산지법에서 내려진 1심 판결에서 모든 혐의가 인정되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했지만 1993년 1월 7일 부산고등법원 2심에서도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1993년 4월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31년만에 누명 벗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31년만에 누명 벗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최인철(왼쪽)씨와 장동익씨가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는 4일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1.2.4 handbrother@yna.co.kr

두 사람은 그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두 사람은 징역 21년만인 2013년 모범수로 출소, 사회에 다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최씨는 "21년 동안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살인자라는 것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가족들, 동생들이 결혼해도 밖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며 그간 고통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2017년 5월 8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019년 4월에는 대검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하고 비로소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월 6일 부산고등법원은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재심을 열기도 했다.

법원은 재심 결정 1년 1개월여 만인 4일 이들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경찰에서 가혹행위와 제출된 증거가 법원에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그로 인해 21년이 넘는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하는 고통을 안겼다"며 "가족과 당사자들이 고통을 겪게 된 데 대해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장동익 씨는 "저와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선 안 된다"면서 "100명 진범 놓쳐도 1명 억울한 사람 만들면 안 된다"며 형사소송법의 기본정신을 강조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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