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연합뉴스 최신기사
뉴스 검색어 입력 양식

[다시! 제주문화](1) 헤라·아테나? 제주엔 설문대할망도 자청비도 있다!

송고시간2021-01-31 09:00

beta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독특한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요약 정보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줄인 '세 줄 요약' 기술을 사용합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사 본문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제공 = 연합뉴스&줌인터넷®

제주신화, 유교·근대산업사회 거센 물결 속에도 원형 그대로 남아

허남춘 교수 "그리스·로마 신화와 필적…우리 것이기에 더욱 소중"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독특한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농경의 여신 자청비
농경의 여신 자청비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구도심과 목관아지 일원에서 2014 탐라국 입춘굿 개막을 알리는 전야제가 열리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신화요? 고·양·부 삼성(三姓) 신화는 아는데 다른 게 또 있나요?"

사람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 헤라, 아테나, 비너스 등 다른 나라 민족의 신들은 줄줄 꿰면서도 우리의 것인 제주 주요 신들의 이름은 물론 '제주신화'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나마 익숙한 것은 역사·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단군신화나 고구려 주몽 신화 등 건국신화 정도다.

삼성신화 역시 제주 주요 관광지인 삼성혈을 통해 비교적 알려졌을 뿐이다.

사람들은 제대로 알기도 전에 제주신화를 무속신앙과 관련한 허황한 것, 옛것, 촌스러운 것 등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다.

누군가는 우리의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외국 전래동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주신화에 대해 알아본다.

제주 설문대할망제 봉행
제주 설문대할망제 봉행

(제주=연합뉴스) 제주시 조천읍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린 '설문대할망제'에서 여성 제관들이 제주 창조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인 '설문대할망'을 기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신들의 이야기 '본풀이'

제주에는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관장하는 수많은 토속신이 있다.

그 수가 1만8천에 이를 정도로 많아 제주를 '신들의 고향' 또는 '신들의 나라'라고 부르곤 한다.

사랑과 농경의 신 '자청비', 창조의 신 '설문대 할망', 생명의 신 '삼승할망', 풍요의 신 '칠성신', 부엌의 신 '조왕할망', 바람의 신 '영등신' 등 산과 바다, 집안 곳곳에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있다고 믿었다.

제주신화는 바로 이들 신들의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리스·로마 신화가 수많은 역사가와 문학가들에 의해 기록된 잘 다듬어진 신화라고 한다면, 제주신화는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의 노래 속에 담겨 구비전승된 '서사무가'이자 신들의 '서사시'다.

제주에서는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를 '본풀이'라고 하는데, 신의 근본(本)을 풀어낸다는 의미다.

신의 탄생과 성장 과정, 위기, 공을 세워 신으로 좌정하기까지의 내용 등이 본풀이 속에 담겨있다.

제주신화는 상당수가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제주큰굿'에서 구연 된다.

다른 지역에는 본풀이는 없고 굿만 남아있다고 하는데, 제주는 본풀이와 굿이 서로 연결돼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다.

굿은 인간이 신과 만나기 위해 행하는 의례다.

사람들은 굿에서 신들의 이야기인 본풀이를 읊어 신을 칭송하고 신을 기쁘게 함으로써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신에게 기원하고 신들이 도와주길 바란다.

굿에 제주신화가 담겨 구전되는 이유다.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옛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제주 큰굿 시연
제주 큰굿 시연

(제주=연합뉴스) 국립제주박물관 마당에서 제주 큰굿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제주신화에는 어떤 게 있을까?

TV도 없고 연극 무대도 없던 시절 옛사람들은 심방이 굿을 통해 들려주는 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재미와 교훈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제주신화에는 천지가 만들어진 사연, 제주도의 지형이 만들어진 사연, 제주 각 마을의 유래, 집안을 지키는 신들의 유래, 삶과 죽음에 대한 관념 등 제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제주에 전해지는 신화인 본풀이는 보통 일반본풀이와 당본풀이, 조상본풀이로 구분된다.

일반본풀이는 제주신화의 핵심으로 열두본풀이가 전해진다.

하늘과 땅이 열리는 천지개벽 신화인 '천지왕본풀이', 출산을 돕는 신 삼승할망과 관련한 '삼승할망 본풀이', 제주 심방의 조상 격인 무조신 삼시왕에 대한 신화 '초공본풀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신비한 꽃이 있는 서천꽃밭 꽃감관 이공의 이야기 '이공본풀이', 운명을 관장하는 전상신 가믄장아기에 대한 '삼공본풀이'가 있다.

또 사랑을 쟁취하고 농경신이 된 자청비의 이야기 '세경본풀이', 저승사자가 된 강림차사의 이야기 '차사본풀이', 저승사자를 잘 대접해 3천년 수명을 살게 된 사만이의 이야기 '명감본풀이', 재앙과 질병을 일으키는 악귀인 새로 환생한 지장아기씨의 이야기 '지장본풀이', 집안을 지키는 신의 유래를 풀어낸 '문전본풀이', 풍요의 신인 뱀신 칠성에 관한 이야기 '칠성본풀이', 천연두(마마)를 앓게 하는 마마신 이야기 '마누라본풀이' 등이다.

당본풀이는 제주 각 마을의 성소라 할 수 있는 신당에 좌정한 신들의 이야기다.

조상본풀이는 한 집안에서 섬기는 수호신 격의 특정 조상 또는 그 조상과 관련한 신들의 이야기다. 집안의 시조 신화와는 차이가 있다.

이외에도 설화, 전설처럼 내려오는 신화가 있다.

제주올레길 위의 전통 체험
제주올레길 위의 전통 체험

(제주=연합뉴스) '제주올레 길 위의 제주 전통문화 체험' 행사가 열린 제주시 구좌읍 김녕마을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트레일 단체 관계자들이 제주전통 무속 신당(神堂)을 답사한 뒤 기도를 올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제주는 가진 것이 많은 섬"

국내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지역에 다양한 신화가 고스란히 잘 전해져 온 이유는 무엇일까.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섬'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대(고조선∼삼국시대)에서 중세(통일신라∼조선)로 넘어가는 시기,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중세 문명의 전파가 늦었다.

국가가 몰락하고 새로운 국가가 생겨나면서 불교와 유교라는 종교·정치문화의 영향력이 변방 제주 사회까지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제주는 부족공동체를 유지하면서 마을신을 섬기는 오래된 전통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조선의 지배층은 유교적 이념을 뿌리내리게 할 목적으로 불교와 무속을 배척했고, 무당과 승려를 성 밖으로 내쫓는 법령을 내렸다.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가 제주에 부임했을 때 미신 타파를 목적으로 '당(堂)오백과 절(卍)오백'을 파괴했지만, 민간 속의 무속신앙은 단절되지 않았다.

이후 근대 들어서도 천주교 포교 과정에서 신당 파괴, 일제강점기 신당 파괴, 4·3사건 등 무수한 역사적 사건 등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그 생명력을 이어왔다.

결과적으로 제주신화는 근대 산업사회의 거센 물결 속에 '전근대적'이고 '미개한 것'이라 배척받았던 무속신앙에 담겨 현재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에 대해 제주대학교 허남춘 교수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 늘 죽음과 맞서야 했던 제주 사람들에게 있어 자신을 도와줄 신도 산과 바다, 하늘, 집안 등 바로 곁에 있어야 했다"며 "당시 무속신앙은 유교나 불교보다도 더 유용한 측면이 있었고 사람들은 중요한 삶의 원리로 여기고 살아왔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한반도 내에서 신화적 이야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제주는 원시·고대적 문화의 원천을 잘 지켰기 때문에 가진 것이 많은 섬으로 재탄생했다. 그 대표적인 문화가 바로 제주신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필적할 만큼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고, 우리의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눈 쌓인 한라산과 동백꽃
눈 쌓인 한라산과 동백꽃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 기사는 '제주도 무속신화'(문무병 저) '제주도 본풀이와 주변신화'(허남춘 저), '조근조근 제주신화 1·2·3'(여연·신예경·문희숙·강순희 저),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허남춘 저) 등 책자를 참고해 제주신화를 소개한 것입니다.]

bjc@yna.co.kr

댓글쓰기
에디터스 픽Editor's Picks

영상

뉴스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