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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 베꼈는데 모르네?…허술한 공모전은 표절왕 먹잇감 [이래도 되나요]

송고시간2021/0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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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가진 공간이라곤 자신의 몸뚱이밖에는 없었던 K씨는 결국 식물을 몸 안에 심기로 결정했다.'

2018년 백마문화상에 당선된 소설 '뿌리'의 서두입니다.

이후 '2020 포천38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동명의 소설이 실렸는데요.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저자가 다른 이 작품. 원작 전체를 도용한 표절작이었습니다.

소설 '뿌리'의 원작자 김민정 작가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본문 전체가 무단 도용됐으며 소설을 도용한 사람이 2020년 무려 다섯 개의 문학 공모전에 수상했다는 것을 제보로 알게 됐다"고 밝혔는데요.

작품을 도용한 손모 씨는 포천38문학상을 포함해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소설 미학 신년호' 등 총 5곳에 표절작을 출품해 당선됐습니다.

원작을 그대로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한 표절작인데다 동일 작품을 여러 공모전에 낸 것인데요.

손씨는 이 외에도 한 언론사의 사진에서 워터마크만 지운 채 지역 사진 공모전에 출품해 장려상을, 가수 유영석 씨 노래 '화이트'(W.H.I.T.E) 가사를 도용한 시로 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리포트 공유누리집 '해피 캠퍼스'에 올라온 사업계획서를 표절해 특허청 아이디어공모전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는데요.

손씨는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알아주는 어떤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컸던 것 같다"며 "취업 같은 건 매번 떨어지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상을 받으면 스스로 기뻤다"고 해명해 누리꾼의 빈축을 샀죠.

논란이 불거지자 주최 기관들은 수상 취소와 상금 환수는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공모전 사이트 씽굿에 따르면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1년간 씽굿에 등록된 공모전은 총 7천338건. 매달 600여 건의 공모전이 열립니다.

2017년 2천546건, 2018년 2천946건, 2019년 3천634건 등 공모전 개최 건수가 늘어나면서 표절작이 당선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지난 2019년, 천안 도시디자인 공모전의 2017년도 대상작이 뒤늦게 표절 확정을 받아 수상 취소 및 상금 환수가 진행됐습니다.

2018년에는 대전 공공디자인 공모전에서 동상 수상작이 국제 공모전 수상작을 표절해 수상이 취소된 바 있죠.

이번 표절 사건에 대해 검증 과정에서 표절 작품을 제대로 거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김민정 작가는 "소설 '뿌리'는 온라인에 본문이 게시돼 문장을 구글링만 해 봐도 전문이 나온다"며 "이것은 문학상에서 표절, 도용을 검토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부재함을 시사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일부 누리꾼들도 "심사 과정서 표절을 걸러내지 못해 누군가는 상을 받지 못했다", "심사위원이 다른 공모전 수상작조차 읽어보지 않았다는 게 착잡하다" 등 출품작 심사가 미흡했다고 비판했는데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수한 응모작품을 모두 검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번 사례는 여러 군데에서 수상하는 문제가 발생해 전반적으로 (심사) 과정 자체가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지만, 심사하는 입장에서 작품들을 완벽하게 통제해 사전에 검수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도 "표절을 걸러내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저작권 문제로 인해 입력되지 않은 작품이 많다"며 "또 논문은 국공립 도서관에서 검색되지만 작가나 일반 개인 다수는 저작권 때문에 창작물, 특히 소설의 경우 전문을 온라인상에 올려놓지 않아 베껴 응모한 것인지 발견하는데 애로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일부 공모전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표절 신고' 이벤트를 열기도 합니다. 제보를 통해 동시 출품작, 표절 의혹 작품을 걸러내겠다는 겁니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 침해를 피해자가 고소해야 공소 제기가 가능한 친고죄(영리 목적 또는 상습적으로 침해한 경우는 예외)로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데요.

지난달 30일부터는 누구든지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한 공익신고가 가능해졌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손씨 사례처럼 일반 시민이 저작권 침해 정황이 있는 공모전 당선작을 발견했을 때도 국민권익위원회 '청렴포털'을 통해 공익 신고를 할 수 있는데요.

문체부 관계자는 "권익위에서 일차적으로 침해로 판단하면 문체부나 한국저작권보호원 같은 조사기관으로 송부한다"며 "이곳들에서 조사해 시정 권고나 대응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선 주최 측의 꼼꼼한 심사가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소한 데이터 검색을 통해 기존 문헌과 대조하는 등 꼼꼼한 일 처리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는데요.

아울러 근본적으로는 공모전 참여자의 올바른 저작권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정덕현 평론가는 "공모하는 분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같이 포함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으려면 결국 (무단 도용과 표절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가 분명해야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호운 이사장도 "문학상 공모자들에게 매뉴얼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 협회에서 준비하고 있다"며 "어떤 부분에서 표절이 못 걸러지는지 살펴보고 (주최 측이) 사전 공모할 때 표절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주의 환기 조건을 제시하는 등의 방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은정 기자 성윤지 인턴기자 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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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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