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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탈출] 지리산에서 흙집 짓고 오손도손

대구에서 남원 산골로 간 안오순 씨 "도시보다 몇 배 풍성한 삶"

(남원=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대구에서 자동차정비업을 하던 남편과 함께 전북 남원의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한 안오순 씨.

온 가족이 힘을 합해 흙집을 짓고 산 지 10년이 넘었다. 그는 도시에서보다 몇 배나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지리산 자락에 있는 안씨의 흙집을 찾은 것은 어느 겨울날 오후였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 가운데 있는 안오순 씨의 흙집 위로 아침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지리산 둘레길 3코스 가운데 있는 안오순 씨의 흙집 위로 아침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남쪽으로 멀리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가 바라보이는 곳이다.

어머니 산이라고 불리는 지리산의 힘 덕분인지 때마침 몰아친 북풍도 한층 잦아진 듯했다.

안씨는 집안에서 메주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복잡한 도시의 삶이 싫어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안씨는 대구의 기독교 노동자의 집이라는 노동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마음이 맞는 여러 가족과 함께 2006년 이곳으로 귀촌했다.

안씨의 남편도 일에 지쳐 있었고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2층 높이의 거실 [사진/성연재 기자]
2층 높이의 거실 [사진/성연재 기자]

◇ 흙집을 짓다

그때 함께 귀촌한 사람들 여럿이서 어울려 집을 지었다. 집은 오로지 내 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길도 제대로 나지 않았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공사 차량이 올라가려면 교량도 필요했다. 건축업자들의 견적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결국 각자의 손에 의존해 집을 짓는 방법뿐이었다.

친환경적인 흙집을 짓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같이 귀농한 사람들 일부가 흙집 건축 현장을 몇 달 따라다니며 건축일을 배웠다.

너와 지붕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너와 지붕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품앗이로 12명이 투입됐고 아이들까지 고사리손으로 힘을 보탰지만, 집 짓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안씨가 지은 흙집은 모두 5채로, 기거할 살림집과 함께 민박집을 할 요량으로 4채를 더 지었다.

가장 아래쪽의 살림집은 마치 중국 푸젠성의 토루(土樓)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가운데 거실 공간이 2층 높이로 가장 높았다.

흙집은 경남 산청에서 사 온 황토와 지역에서 나온 통나무로 만들어졌다.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살림집 거실로 들어서 보니 공간이 제법 컸는데도 아주 훈훈했다. 가운데는 동네 사람이 직접 제조했다는 수제 화목난로가 자리 잡고 있다.

화목난로도 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 동네 사람들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요."

메주 작업을 하던 안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메주 작업을 하던 안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 소중한 재원이 된 흙집

그때 지었던 흙집은 부부의 소중한 재원이 되고 있다. 가족의 주 수입원은 민박이다.

둘레길이 뚫리면서 도움이 됐는지 물어봤더니 민박집은 둘레길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한다. 둘레길 이용자들은 걷기에만 관심이 있어 저가형 숙소를 찾는다고 한다.

대신 이 민박집을 찾는 사람들은 고요한 흙집에서의 삶의 방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흙집이니 불편한 점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후에 손님을 받는다. 흙집이기에 벽을 잘못 만지면 흙 부스러기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깔끔한 풀빌라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형태의 민박이다. 안씨는 철학에 맞지 않는 손님은 받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안씨 집을 찾았다. 안씨는 서둘러 산으로 장작을 하러 나서는 길이었다. 기계톱까지 챙긴 그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벌목작업을 한 뒤 남은 잡목 중 장작이 될만한 것들을 골라 톱으로 잘라 오는 작업이다. 높은 언덕 위에 올라간 안씨는 씩씩하게 굵은 통나무를 아래로 던졌다.

뒤이어 기계 톱으로 나무를 잘랐다. 조용한 지리산 골짜기에 힘찬 엔진소리가 퍼졌다.

기계톱으로 자르는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기계톱으로 자르는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 도시보다 몇 배 풍성한 삶

남편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면 소재지로 나가 산 지 1년이 된다고 했다.

남편은 함께 귀촌했지만,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는 생활보다는 퇴근 후 휴식이 보장되는 회사원 생활을 다시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안씨는 남편의 생각을 이해했고, 각자의 방식대로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고 한다. 남편은 현재 건축회사에 다닌다.

안씨는 서둘러 저녁 모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참여하고 있는 모임만 해도 10여 개나 된다. 이 지역에는 각종 모임만 45개나 된다고 한다.

배워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몸이 하나라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집 명패도 안씨가 직접 만들었다.

그는 도시에서 살 때보다 몇 배나 삶이 풍성해졌다고 자랑했다.

당연히 경제적인 측면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적게 벌어서 나누어 쓰는 데 의의를 둔다는 것이다. 그래도 1년에 3천만원 이상의 수입은 들어온다고 한다.

안씨가 만든 메주 [사진/성연재 기자]
안씨가 만든 메주 [사진/성연재 기자]

덕분에 아이들도 잘 자라줬다. 지금 자녀 중 2명이 대학생이며, 고등학생이 1명이다.

지리산 덕분에 먹거리가 풍성하다는 것에도 안씨는 만족감을 느낀다. 봄에는 해발 1천m 이상에서만 나는 산나물을 따 맛난 산채 음식을 만든다. 이 동네에서는 '개발딱주'라고 부르는 단풍취나 병풍취 등 귀한 산나물이다.

가을에는 송이가 난다. 다음 봄에는 지리산에서 나는 산나물밥을 먹으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며 집을 나섰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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