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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샵 아프리카] 남아공 대통령궁 유니온빌딩 앞 단상

송고시간2020-11-28 08:00

한국전 참전명패 등 손상 방치 '역사의 단절'…'부시맨' 원주민 2년째 권리찾기 농성

유니온빌딩 앞 두 팔 벌린 넬슨 만델라 동상
유니온빌딩 앞 두 팔 벌린 넬슨 만델라 동상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27일(현지시간) 넬슨 만델라 동상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궁 유니온빌딩 앞에 서 있다. 2020.11.28. sungjin@yna.co.kr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취임식은 프리토리아 유니온빌딩에 의해 조성된 멋진 사암의 반원형극장에서 열렸다. 수십 년간 이 자리는 백인 우월주의의 권좌였다. 그리고 이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민주적·비인종적 정부의 설립을 위해 다른 색깔과 국가가 모인 무지개의 자리였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를 종식시키고 1994년 5월 10일 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취임한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에 나오는 유니온 빌딩 관련 단락을 사역으로 옮겨봤다.

그날 취임사에서 만델라는 유니온빌딩 앞에 운집한 국제사회 하객들과 남아공 국민 앞에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정치적 해방을 달성했다. 우리는 우리 모든 사람을 가난, 박탈, 고통, 성 차별 등 계속되는 속박에서 해방시킬 것임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가 다스리게 하라. 하나님이 아프리카를 축복하시길!"이라고 맺었다.

그로부터 26년여가 흐른 지난 25일 유니온빌딩 반원형극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희생자들을 닷새간 애도하는 행사가 부통령 주재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또 젠더폭력기반(GBV) 희생자도 함께 애도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싸우는 16일간의 집중 캠페인을 출범시켰다.

남아공 대통령궁 유니온빌딩의 위용
남아공 대통령궁 유니온빌딩의 위용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좌우 대칭으로 위용 있는 남아공 대통령궁 유니온빌딩의 27일 정면 모습. 코로나19 희생자를 기리는 닷새간의 애도기간이라 조기가 걸려 있다. 2020.11.28 sungjin@yna.co.kr

기자가 방문한 27일(현지시간) 현재 유니온빌딩 앞에는 이제는 역사의 위인이 된 만델라의 큰 동상이 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계단앞 공터에는 잔디가 우거져 푸르고 몇몇 젊은 여자들이 주말을 맞아 둘러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꺼내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니온빌딩은 남아공 대통령궁으로, 우리로 치면 청와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앞길은 청와대처럼 경찰이 서 있거나 검문을 하는 삼엄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유니온빌딩 앞 주차장에 차를 대자 기념품 노점상들이 눈에 띄고 사진사들이 곳곳에 보였다.

동양인을 보고는 대뜸 중국인으로 생각해서 '니하오'라고 물어본다.

'코리언'이라고 하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대한민국∼'까지 하는 사진사도 있었다.

남반구 멀리 반대편에 있지만, 이곳에서도 한국을 아예 모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유니온빌딩 앞 계단을 내려가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한 용사들을 기리는 명패들이 보인다.

그런데 명패가 온전하지 않고 절반 이상이 뜯겨 나간 것을 볼 수 있다.

거의 다 뜯겨나간 1차대전 참전 명예용사 현판
거의 다 뜯겨나간 1차대전 참전 명예용사 현판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27일(현지시간)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 참전 명예용사 추모 동판이 대부분 뜯겨 나간 채 일부만 남아 있다. 2020.11.28 sungjin@yna.co.kr

더 아래로 내려가면 2차대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한국전 참전 용사를 기리는 부분도 있는데 역시 코리아 영문 글자 중 'O'자가 사라지고 없다.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현판에서 영문 국가명 중 'O'가 없다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현판에서 영문 국가명 중 'O'가 없다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27일 'KOREA'에서 'O'자 사라진 채 있는 남아공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 명패. 2020.11.28 sungjin@yna.co.kr

다른 참전 용사들 관련 제목 글자들은 통째로 사라지고 없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

동행한 대사관 관계자는 "일종의 생계형 범죄로 동판이나 글자를 뜯어가 팔거나 귀고리 등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남아공 정부에서 이렇게 '역사 기념물'을 방치하는지가 궁금했다.

돌아온 답은 아파르트헤이트 백인 정권의 역사는 현재 '자유' 흑인 정권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는 우리 대사관에서도 몇 번이나 공문을 보내 시정을 요구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냥 우리 재정으로 정비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역사적 유물이라 그렇게는 또 안 된다고 한다.

백인 정권의 역사도 엄연히 남아공의 역사일진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지금 흑인 정권의 입장에선 자신들을 탄압한 적이나 '식민 종주국' 영국의 유산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 인식의 괴리가 이렇게 크다는 것은 새삼 우리와 일제 식민지 기간을 대비시켜 유추해볼 따름이다.

최근 청와대 앞에서도 천막농성이 길게 이어진 바 있지만, 유니온빌딩 앞에도 천막농성이 있다.

호주처럼 이곳의 원주민들인 '애버리지니'들이 권리찾기 투쟁을 하는 곳이다.

남아공 토착민 '부시맨'들이 2년째 천막농성 중인 현장
남아공 토착민 '부시맨'들이 2년째 천막농성 중인 현장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27일(현지시간) 남아공 토착 원주민인 '부시맨'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2년째 유니온빌딩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간판에 '애버리지니(원주민) 대사관 공보'라고 적혀 있다. 2020.11.28 sungjin@yna.co.kr

옛날 원주민처럼 차려입고 거의 맨몸인 한 사람이 움막을 만들다 말고 와서 물음에 답을 해준다.

그는 자신들은 '코이산'과 '부시맨'의 후손이라면서 다른 종족들은 땅과 권리가 있지만, 정작 진짜 토착민인 자기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2년째 천막 농성 중이라고 설명해줬다.

곧 천막 농성 2주년을 맞아 '보름달 축제'도 준비 중이라면서, 현 정부가 자신들을 막연히 '컬러드'(혼혈인) 인종으로 분류한 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니온빌딩 앞 넓은 잔디 광장에는 사람들이 몰려와 시위하기도 하는데 인접한 곳은 프리토리아 도심지구(CBD)이다. 주로 흑인들이 도심에서 생활하고 있다.

만델라의 취임식 날은 유니온빌딩 앞을 남아공 공군 제트기, 헬리콥터, 수송기가 "완벽한 편대 비행으로" 축하했다.

오늘도 구름 낀 프리토리아 하늘에는 싸울 일 없어 보이는 공군기가 굉음과 함께 무심히 지나갔다.

만델라 동상이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도심을 굽어보고 있다.
만델라 동상이 행정수도 프리토리아 도심을 굽어보고 있다.

(프리토리아=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27일(현지시간) 저 멀리 잔디광장 너머로 프리토리아 도심지구가 보인다. 2020.11.28 sungjin@yna.co.kr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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