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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끝까지 맞선 자유프랑스군 원년 멤버 코르디에 별세

송고시간2020-11-21 19:14

향년 100세…레지스탕스 통합 이끈 장 물랭 '오른팔' 비서

전후에는 미술상으로 활동…역사가로서도 인정받아

다니엘 코르디에
다니엘 코르디에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나는 1914년 전쟁의 아들이었습니다. 나의 유년기는 사망한 이들과 부상한 이들의 기념비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1940년, 프랑스가 20년 전 승리했던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샤를 드골 장군이 영국 런던으로 망명해 창설한 자유프랑스군(FFL)에 합류한 초창기 저항군 다니엘 코르디에가 2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1920년 8월 10일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에서 태어난 코르디에는 100세의 나이로 남부 칸에서 영원히 잠들었다고 일간 르몽드, 프랑스앵포 라디오 등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타계 소식을 전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의 승리를 견인했던 필리프 페탱 당시 수반이 1940년 6월 나치 독일과 휴전 협정에 서명했을 때 밀려오는 배신감에 눈물을 쏟아냈던 청년은 곧바로 입대를 자원했다.

1941년 FFL 산하 정보작전부(BCRA)에 몸담았던 코르디에는 이듬해 7월 프랑스 리옹에 잠입해 레지스탕스 세력 통합을 끌어낸 장 물랭을 만나 그가 나치 비밀경찰에 붙잡힌 1943년 6월까지 그의 비서로 활동했다.

참혹했던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술상이 됐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많은 예술가를 세상에 소개했고, 조르주 퐁피두 박물관 등에 많은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 자신이 모셨던 장 물랭을 겨냥해 그가 '이중 첩자'였다느니 '비밀 공산당원이었다'라느니 하는 의혹이 나오자 코르디에는 철저히 고증에 기반해 그의 전기를 쓰기 시작한다.

1983년부터 1999년까지 약 20년에 걸쳐 그가 발간한 장 물랭 전기는 제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저항군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는 평가를 받았고, 코르디에는 역사학자로서도 인정받았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은 이날 코르디에의 타계를 애도하는 성명에서 그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영웅적인 순간을 목격했고 우리에게 가장 구체적이고 감동적인 설명을 해줬다"고 밝혔다.

코르디에의 장례식은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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