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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시선] 중국은 '북한의 남침'을 역사에서 지우려하나

송고시간2020-11-21 07:07

'항미원조' 정당성 훼손 우려해…학문의 자유도 침해받아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10월 25일 베이징 군사박물관에서 개막한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전에서 한국전쟁의 장진호 전투가 묘사돼 있다. 2020.10.25 ykim@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10월 25일 베이징 군사박물관에서 개막한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전에서 한국전쟁의 장진호 전투가 묘사돼 있다. 2020.10.25 ykim@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은 1950년 10월 19일 시작됐다. '한국전쟁'은 언제 시작된 것인가?"

최근 중국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평소 알고지내던 한 중국 기자가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한국을 침략해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했다는 한국인들의 '상식'을 알려주자 이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군의 남침 사실을 어렴풋이만 알고 있는 듯 했다.

중국인들은 중국군이 출병해 압록강을 건넌 같은 해 10월 19일부터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은 자국군이 참전한 한국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으로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달 항미원조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해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반발을 샀었다.

침략이라면 북한이 한 것인데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린 것이다.

중국이 한국전쟁과 항미원조전쟁을 굳이 분리하는 것은 어떤 의도일까?

북한의 남침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중국은 북침을 주장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남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을 가리키는 것은 애써 피하고 '내전이 발발했다'고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중국역사 교과서 본문 첫줄에 '1950년 6월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고 적혀 있다. [촬영 김윤구]

중국역사 교과서 본문 첫줄에 '1950년 6월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고 적혀 있다. [촬영 김윤구]

중국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이어 2과에서 '항미원조'를 다루는데 본문 첫줄에 "1950년 6월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은 난폭하게 파병해 조선을 침략했다"고 나온다.

시 주석이 지난달 관람한 항미원조 7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도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의 발발 후 미국은 병력을 보내 무력 개입을 했고 전면전을 일으켰으며 중국 정부가 거듭 경고했는데도 38선을 넘었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의 청년 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은 항미원조 70주년 기념일인 지난달 25일 웨이보(微博)에 올린 Q&A에서 '한국전쟁은 북한이 한국을 침략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아니다"라고 못 박기까지 했다.

공청단은 "당시 북한과 한국은 서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주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 국가의 내전"이라고 주장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연합뉴스로부터 공청단의 주장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비슷한 의견을 밝혔었다. 그는 "한국전쟁은 본래 한반도에서 남북 쌍방간에 발생한 것으로 내전에 속한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을 덮으려는 듯한 중국의 태도는 학문의 자유마저도 억누르고 있다.

저명 학자인 선즈화(沈志華) 중국 화둥사범대 역사학 교수는 이달 초 대학에서 강연을 하다가 '악의적인 신고' 때문에 강연이 돌연 중단됐다.

이 강연은 동영상 플랫폼 '비리비리'(Bilibili)에서도 생중계되고 있었다. 강연은 이후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계속됐으나 주최 측은 나중에 강의 동영상을 올리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역사학자 장싱더(張興德)는 강의를 주최한 수도사범대에 보내는 공개 서신에서 선 교수가 항미원조전쟁의 정당성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전쟁은 남침이 아니다'
'한국전쟁은 남침이 아니다'

사진 공청단 웨이보

선 교수는 마오쩌둥(毛澤東)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단순히 북한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 동북부 국경의 안보를 우려한데다 소련의 지지를 얻어 공산당 정권을 강화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펴왔다.

그는 한국전쟁 60주년이던 2010년에 한국전쟁이 북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소련의 스탈린이 승인하면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당시 이 인터뷰는 관영 언론에 실렸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주요 매체는 항미원조의 정당성에 대한 당과 정부의 공식 입장만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어긋나는 내용이 보도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선 교수의 학설이 항미원조의 정당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강연이 느닷없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일을 보면 항미원조전쟁의 정당성에 흠집이 가는 것을 피하려는 중국의 속내가 드러난다.

중국이 '남침'을 입에 올리지 못 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 남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북한을 지원한 중국은 '침략전쟁을 도와준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전쟁에서 함께 싸운 한미 양국의 고통과 희생을 언급한 발언을 놓고 중국 내에서 일어난 논란은 어긋난 역사인식의 폐해를 극명히 알렸다.

중국이 최강대국 미국과 싸워 전쟁에 이겼다는 선전에만 열을 올리고 역사적 사실에 계속 눈을 감다가는 자칫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데 방해가 될 수 있고 양국 국민의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일깨워준 것으로 보인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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