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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퇴근 후엔 '선생님'…29년차 공무원의 이중생활

송고시간2020-11-22 09:05

제천시청 김창순 팀장 28년째 야학 봉사…교장직까지 1인2역

"가르치면서 제가 더 많이 배워…야학 존재 널리 알려졌으면"

(제천=연합뉴스) 박재천 기자 = "배움에 목마른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야학을 열어야죠"

야학 수업하는 김창순 팀장
야학 수업하는 김창순 팀장

[정진야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충북 제천시청의 김창순(54) 자연재난팀장은 주위 사람들의 응원 속에 '이중생활'을 즐긴다.

낮에는 시청에서 열정적으로 재난 관련 업무를 본다.

지난 8월 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때는 한 달가량의 밤샘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밤에는 돌연 '선생님'으로 변신해 분필을 잡는다.

그는 올해로 공직 입문 29년차의 베테랑 토목직 공무원이자 이 지역 유일의 야학인 정진야간학교의 교장 겸 수학교사이다.

지난 19일 시청에서 만난 김 팀장은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을 모토로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사실 제가 더 배우는 것이 많다"고 겸연쩍어했다.

인터뷰하는 김창순 팀장
인터뷰하는 김창순 팀장

[촬영 박재천]

그는 동료 공무원, 퇴직 교사, 일반 직장인 등 14명과 야학을 이끌고 있다.

정진야학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국사 등 중·고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과정을 무료로 운영한다.

수업은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하루 두 과목씩 평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이뤄진다.

올해 등록생은 20명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11명만 중·고교반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학생층이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으나, 지금은 40∼50대 이상의 '만학도'가 대부분이다.

정진야학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웃에게 배움의 기쁨을 제공하기 위해 김능환씨 등 뜻있는 인사들에 의해 1986년 7월 만들어졌다.

작년까지 1천971명이 정진야학을 거쳐갔고, 이 중 838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시청서 업무 보는 김창순 팀장
시청서 업무 보는 김창순 팀장

[촬영 박재천]

김 팀장은 선배 공무원의 권유로 1992년 정진야학과 인연을 맺었다.

2년 정도 국어를 가르쳤지만, 시청 업무가 너무 바빠 한동안 예비교사로 이름만 올렸다.

그가 다시 야학 교단에 선 것은 2003년 5월부터이고, 과목도 수학으로 바꿨다.

2014년부터는 교장직까지 맡아 '1인2역'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에게 국어와 수학을 배운 제자는 줄잡아 1천200여명에 이른다.

김 팀장은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는 평생학습 정신과 가르치며 배우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정신을 바탕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제천시와 교육청이 지원하는 야학 운영비는 대부분 난방비와 교재 구입비로 쓰인다.

불 켜진 정진야학
불 켜진 정진야학

[정진야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학여행이나 졸업식, 검정고시 응시행 버스 임차료와 식사비 등 쓸 돈이 필요하다 보니 그는 매월 3만원을 학교 운영비로 기부하고 있다.

공직 본업에도 충실해 그동안 제천시 모범공무원상, 충북도 우수공무원상, 내무부·농림식품부장관 표창, 정부 모범공무원상(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소외계층 돕기, 시상금 기부, 장학금 기부 등 지속해서 훈훈한 소식을 전했던 그는 지난해 청백봉사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김 팀장은 "인생 공부를 하는 것도 감사한데 졸업생들이 시청이나 학교를 찾아 와 '야학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거나 대학 합격소식을 들려줄 때, 스승의 날에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 정말 고마웠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야학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흘리는 감회의 눈물은 매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학생 모집이 쉽지 않은데 제천에 야학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1명이라도 더 배움의 기회를 접했으면 좋겠다"며 "교사 모집도 마찬가지로, 배워서 남 주는 삶을 실천할 분들의 많은 지원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jc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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