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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덕숭산이 품은 아름다운 절집과 여관

충남 예산 수덕사와 수덕여관

(예산=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수덕사는 사계절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절이다.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기품이 느껴지는 대웅전부터 예술가들의 사연을 간직한 수덕여관, 고승의 자취가 깃든 산속 초당과 암자에 이르기까지,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가 넘친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수덕사 대웅전 측면 지붕 [사진/전수영 기자]
아래에서 올려다 본 수덕사 대웅전 측면 지붕 [사진/전수영 기자]

◇ 예술가들의 숨결이 서린 수덕여관

수덕사 일주문을 지나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절집이 아닌 초가집이다.

'수덕여관'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이 집은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사연이 얽히고설킨 곳이다.

1896년생 동갑내기인 김일엽과 나혜석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일까? 세상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자와 문인으로 활약했던 김일엽은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다 1933년 홀연 수덕사로 출가했다.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나혜석이 일엽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4년 뒤다.

일엽을 통해 수덕사의 만공 스님에게 귀의를 요청했지만 만공 스님은 "중노릇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미련이 남았던 나혜석은 수덕여관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가르쳤다.

수덕사 일주문을 지나면 초가로 된 수덕여관이 나온다. 김일엽, 나혜석, 이응노 등 예술가들의 사연이 얽힌 곳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수덕사 일주문을 지나면 초가로 된 수덕여관이 나온다. 김일엽, 나혜석, 이응노 등 예술가들의 사연이 얽힌 곳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이때 수덕여관으로 나혜석을 찾아온 이가 고암 이응노 화백이다.

나혜석으로부터 예술을 배운 이응노는 나혜석이 여관을 떠나자 1944년 아예 여관을 매입했다.

이곳에 머물며 수덕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던 그는 1959년 부인을 수덕여관에 남기고 연인과 함께 파리로 훌쩍 떠난다.

부인을 버리고 떠난 이응노가 수덕여관을 다시 찾은 것은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다.

홀로 수덕여관을 꾸리며 살았던 이응노의 전처는 돌아온 그를 정성껏 돌봤다고 한다.

여관 뒤뜰의 바위에 새겨진 그림은 이때 이응노가 남긴 암각화다. 글자 모양 같기도 하고 사람 모양 같기도 한 것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무엇을 그린 것이냐는 물음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고성쇠의 모습을 표현했다. 여기에 네 모습도 있고,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는 이 바위 그림만을 남긴 채 다시 파리로 훌쩍 떠나버렸다.

수덕여관 뒤뜰에는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가 남아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수덕여관 뒤뜰에는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가 남아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 절제된 기품이 느껴지는 수덕사 대웅전

수덕여관을 뒤로 하고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만공기념관이, 왼편에는 만공 스님이 세운 7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백제 시대 사찰인 수덕사는 근대 한국 불교에 선풍(禪風)을 진작시킨 경허 스님과 그 법맥을 이은 만공 스님이 머물며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도량이다.

만공 스님이 세운 칠층석탑 [사진/전수영 기자]
만공 스님이 세운 칠층석탑 [사진/전수영 기자]

선원(禪院)과 강원(승가대학 또는 승가대학원)을 모두 갖추고 있는 조계종의 5대 총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보박물관이 자리한 누각 '황하정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두 개의 탑 너머로 대웅전(국보 제49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 충렬왕 때(1308년) 세워진 수덕사 대웅전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조건축물로 꼽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직함과 절제된 기품이 느껴진다.

대웅전의 묘미는 맞배지붕에 있다. 맞배지붕은 지붕이 건축물의 앞뒷면으로만 맞붙어 있는 형태를 말한다. 전통 기와 건물의 지붕 가운데 가장 단순한 형식이다.

배흘림기둥들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수덕사 대웅전의 맞배지붕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단청이 벗겨진 기둥들은 깊게 팬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700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맞배지붕의 묘미를 보여주는 대웅전의 측면. 목부재들이 만들어낸 기하학적 무늬가 무척 아름답다. [사진/전수영 기자]
맞배지붕의 묘미를 보여주는 대웅전의 측면. 목부재들이 만들어낸 기하학적 무늬가 무척 아름답다. [사진/전수영 기자]

맞배지붕의 묘미는 대웅전의 옆모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맞배지붕의 간결한 선과 이를 받치고 있는 목부재의 구도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붕과 보가 연결되는 지점에 가로 세로로 짜 맞춰 넣은 부재들이 옆쪽 벽면의 공간을 절묘하게 분할한다.

직선과 곡선이 혼재된 기하학적 무늬에서 간결함과 함께 은근한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 고승의 자취가 깃든 덕숭산

대웅전이 워낙 유명한 탓에 수덕사를 찾는 이들은 대개 대웅전까지 보고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대웅전 뒤로 솟은 덕숭산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산속 곳곳에 숨어 있는 암자와 석불에 고승의 자취가 진하게 배 있다.

대웅전 왼편 관음 바위를 지나면 등산로가 시작된다. 산속 암자인 정혜사로 향하는 이 길에는 1천80개의 돌계단이 있다.

수덕사 2대 방장인 벽초스님이 놓은 것이다. 인간의 백팔번뇌를 열 번 내려놓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네 개의 면에 불상을 조각한 석불이 나온다. 1983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 유일의 사면석불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사방에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존불이 조각되어 있다.

네 개의 면에 불상을 조각한 사면석불 [사진/전수영 기자]
네 개의 면에 불상을 조각한 사면석불 [사진/전수영 기자]

다시 돌계단을 한참 오르니 산 중턱에 초가집이 나타난다. 만공스님이 머물렀던 소림초당이다. 여기서부터는 '만공의 숲'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림초당과 암자 향운각, 정혜사, 관음보살입상… 모두가 그의 공이 아닌 게 없다.

만공이 세운 암자 향운각 인근에는 수덕사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거대한 석불이 있다. 1924년 만공 스님이 조성했다는 관음보살입상이다. 자연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높이가 25척에 달한다.

만공 스님이 1924년 조성한 관음보살입상 [사진/전수영 기자]
만공 스님이 1924년 조성한 관음보살입상 [사진/전수영 기자]

만공 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만공탑 바로 위에는 정혜사가 있다. 수덕사의 말사인 정혜사는 만공 스님이 주석하며 선풍을 진작시킨 곳이다.

지금도 철마다 수십 명의 스님들이 수행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원이다.

가파른 비탈에 집채만 한 바위를 끼고 있는 정혜사는 덕숭산 최고의 조망처로도 꼽힌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님들이 수행 중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돌계단은 정혜사에서 끝이 난다. 대웅전에서 정혜사까지 돌계단을 오르는 데 40분가량 걸린 것 같다.

정혜사를 지나 15분가량 산길을 더 오르면 정상이다.

덕숭산은 해발고도 495m의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막바지 올라가는 길이 꽤 가팔라 숨이 찼다.

덕숭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전수영 기자]
덕숭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전수영 기자]

정상에 오르자 시원한 전망이 펼쳐졌다. 탁 트인 예당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안면도, 천수만까지 보인다.

발밑으로는 수덕사의 절집 지붕이 작은 점처럼 까마득하다.

정상에서 한숨 고르고 다시 산에서 내려온다. 대웅전 앞에 도달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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