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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100년의 세월에 백련을 더하다

송고시간2020-12-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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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의 신평(新平)은 말 그대로 '새로운 평야'다.

비옥한 간척지 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쌀로 유명한 당진의 곡창지대다.

이곳에는 좋은 쌀로 3대째 같은 자리에서 술을 빚어 온 양조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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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 막걸리 빚는 당진 신평양조장

(당진=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충남 당진의 신평(新平)은 말 그대로 '새로운 평야'다. 비옥한 간척지 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쌀로 유명한 당진의 곡창지대다.

이곳에는 좋은 쌀로 3대째 같은 자리에서 술을 빚어 온 양조장이 있다. 백련잎을 넣어 빚은 이곳의 술에는 88년을 이어온 장인의 혼이 담겨 있다.

신평양조장 백련 양조문화원에 놓여 있는 막걸리 통 [사진/전수영 기자]

신평양조장 백련 양조문화원에 놓여 있는 막걸리 통 [사진/전수영 기자]

◇ 연잎을 넣어 깔끔한 맛…백련 막걸리

잔에 코를 대니 은은한 향기가 올라온다. 한 모금 들이키니 막걸리의 부드러움 속에 잔잔한 기포가 톡톡 터지며 청량감을 준다.

삼킨 뒤에도 막걸리 특유의 텁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산뜻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마치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당진 신평양조장에서 맛본 백련 막걸리는 막걸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술이었다. 막걸리 특유의 텁텁함 대신 상큼함과 깔끔함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비결은 연잎에 있다. 김동교 대표는 "술을 빚을 때 연잎을 함께 넣어 발효시킨다"면서 "연잎을 넣으면 술맛이 한층 깔끔해진다"고 설명했다.

고두밥과 누룩에 말린 연잎을 넣은 막걸리가 항아리 안에서 발효되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고두밥과 누룩에 말린 연잎을 넣은 막걸리가 항아리 안에서 발효되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백련의 잎을 넣어 발효시킨 연잎주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마셨던 술이다. 연꽃이 피는 여름철 딴 연잎으로 고두밥을 싸서 발효시켜 술을 만든 뒤 추석 즈음에 마셨다고 한다.

신평양조장에서는 전통 방식과 달리 생 연잎이 아닌 말린 연잎을 사용한다. 쌀누룩에 물을 넣어 밑술을 만든 뒤, 연잎을 고두밥과 함께 넣어 발효시킨다. 이는 연잎차 제조법을 응용한 것이다.

김 대표는 "1933년부터 양조장을 운영했던 할아버지께서 스님들로부터 배운 연잎차를 응용해 막걸리를 빚곤 하셨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만들었던 연잎 막걸리를 상품화한 것은 양조장 2대 주인이자 김 대표의 아버지인 김용세 명인이다.

부친으로부터 양조장을 물려받은 김용세 명인은 10여 년의 연구 끝에 연잎을 넣은 막걸리와 약주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하고, 2007년 '백련 막걸리'와 '백련 맑은 술'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신평양조장 2대 주인인 김용세 명인 [사진/전수영 기자]

신평양조장 2대 주인인 김용세 명인 [사진/전수영 기자]

연잎을 넣은 백련 막걸리는 세 종류로 출시된다.

'백련 생막걸리 미스티'는 유리병에 담긴 프리미엄 제품이다. 간척지 토양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당진 쌀 중에서도 엄격한 품질 관리를 거친 '해나루 쌀'을 재료로 쓰고, 재래식 항아리에서 발효해 더욱 깊은 맛을 낸다.

페트병에 담긴 '백련 생막걸리 스노우'는 재래식 항아리 대신 대형 스테인리스 발효조를 사용해 가격을 낮춘 제품이다. 현재 대형마트에서 팔리고 있다.

살균 과정을 거쳐 보존기간을 늘린 '백련 살균 막걸리'도 있다. 유통기간이 6개월이어서 면세점에서도 판매된다. 저온 살균 처리해 탄산은 없지만, 더욱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약주인 '백련 맑은 술'은 백련 막걸리의 맑은 부분만을 떠내 2∼3달 더 숙성시킨 술이다. 막걸리에 비해 더욱 깊어진 백련잎의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신평양조장에서는 백련을 넣어 만든 막걸리 3종과 약주 1종을 생산하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신평양조장에서는 백련을 넣어 만든 막걸리 3종과 약주 1종을 생산하고 있다. [신평양조장 제공]

◇ 88년 세월의 흔적 가득한 양조장

3대째 술을 빚고 있는 신평양조장의 역사는 8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대 주인인 김순식 씨는 외삼촌이 운영하던 양조장에서 일하다 이를 물려받아 1933년 지금의 신평양조장 자리에 신평양조장의 전신인 화신양조장을 차렸다.

일제의 주세령 공포로 가양주 문화가 말살되고 근대 양조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김용세 명인은 백련잎을 이용한 술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신평양조장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다.

현 대표는 손자인 김동교 씨다. 삼성전자에 다녔던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잇고 있다.

김 대표는 "당시 백련 막걸리가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면서 주목받고 막걸리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며 "새로운 스타일로 사업을 할 수 있겠다 싶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미곡 창고를 개조해 만든 백련 양조문화원에서는 신평양조장의 88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미곡 창고를 개조해 만든 백련 양조문화원에서는 신평양조장의 88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신평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양조장은 김 대표의 할아버지가 1933년 지은 건물이다.

허름한 양조장 건물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양조장 앞에는 여기저기 깨지고 갈라진 부분을 철심으로 박고 메운 항아리들이 늘어서 있다. 3대에 걸쳐 88년 역사를 함께 해 온 소중한 보물들이다.

양조장 앞에 놓여 있는 오래된 항아리 [사진/전수영 기자]

양조장 앞에 놓여 있는 오래된 항아리 [사진/전수영 기자]

일제강점기 때부터 썼던 미곡 창고는 백련 양조문화원으로 재탄생했다. 3대에 걸친 술도가의 흔적이 이곳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 발급된 임시 주류제조 면허증부터 연도별 세무 서류와 직원들의 보건증, 막걸리를 배달하던 자전거 수리 영수증까지, 사소한 자료들도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정리해 놓은 것에서 양조장 주인의 꼼꼼한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자물쇠가 달린 나무 상자는 일제 강점기 양조장에 비치하도록 한 세무 서류 상자다. 공무원들이 불시에 양조장에 들이닥쳐 점검한 내용을 서류에 기록한 뒤 자물쇠를 잠그고 갔다고 한다.

1935년 조선의 양조 현황을 집대성한 조선주조사, 1937년 전국에 있던 양조장 4천여개를 전수 조사해 발간한 조선주조협회 회원명부, 1938년 양조의 기본원리를 집대성해 발간한 주조독본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희귀한 자료들도 전시돼 있다.

백련 양조문화원 내부. 나무로 된 거대한 통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부산에 세운 청주 공장에서 쓰던 발효통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백련 양조문화원 내부. 나무로 된 거대한 통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부산에 세운 청주 공장에서 쓰던 발효통이다. [사진/전수영 기자]

이곳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15인 이상 단체 방문객이 예약하면 막걸리 빚기, 막걸리 소믈리에 클래스, 증류주 만들기, 누룩전 빚기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2015년 백련 양조문화원을 만들고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덕분에 1년에 1만명 이상이 양조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체험 프로그램은 외국인에게도 인기다. 한 해 체험 참여자 2천500명 가운데 외국인이 15%를 차지한다.

백련 양조문화원 옆에 새로 짓고 있는 300평 규모의 건물은 새 양조장 겸 체험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방문객이 유리 너머 양조장과 숙성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체험 공간도 더 넓게 조성해 개인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새 양조장에서는 새 술도 선보인다. 당진 특산물인 황토 고구마를 재료로 한 증류주를 준비 중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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