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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느린 여행, 쉬어가는 간이역 ② 추전역

백두대간 중심 태백산 줄기 '하늘에 가장 가까운' 역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추전역 [사진/조보희 기자]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추전역 [사진/조보희 기자]

(태백=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추전역은 해발 고도가 855m다. 웬만한 산보다 높다. 남한에서 고도가 제일 높은, 하늘 아래 첫 역이다.

백두대간의 중심인 태백산 줄기에 있는 추전역은 모산인 태백산(1,567m)보다 6m 더 높은 함백산(1,573m)을 이고 있다.

올해 연말에는 사람도, 화물도 오가지 않고, 드문드문 기차만 지나가는 추전역에서 백두대간의 우렁찬 바람 소리를 들으면 어떨까. 한 해를 보내는 스산한 마음이 홀연히 차분해지고, 붉고 큰 태양이 가슴에서 떠오를지 모른다.

◇ 해발 고도 855m, 하늘 아래 첫 추전역

충북 제천에서 강원도 백산까지 이어지는 태백선에 있는 추전역은 서울을 기준으로 할 때 고한역 다음, 태백역 전의 작은 간이역이다.

한국철도공사의 행정적 분류에 따르면 간이역은 역장이 없지만 상근 역무원이 근무하는 배치 간이역과 역장도 역무원도 없는 무배치 간이역으로 나뉜다.

우리가 찾아가 보니 추전역은 부역장을 비롯해 역무원이 2인, 3개 조로 24시간 근무하는 배치 간이역이었다. 작지만 중요한 역이다. 기차가 정기적으로 서지 않아도 기차 통행에 꼭 필요한 업무를 하는 곳이다.

태백선은 복선이 아닌 단선이어서 이 노선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는 추전역을 지나야 한다.

추전역 관계자는 "여객과 화물 취급만 하지 않을 뿐 운행, 보수 등 그 외 열차 관련 업무는 모두 다 한다"고 강조했다.

추전역 표석 [사진/조보희 기자]
추전역 표석 [사진/조보희 기자]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늦가을이었지만, 추전역은 한겨울이나 진배없었다. 추전역을 둘러싼 함백산과 매봉산의 나무들은 대부분 잎을 다 떨군 나목들이었다.

역사 안엔 난로 위에 약초 달인 물이 주전자 안에서 끓으며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휑한 선로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날고 있다. 까마귀는 사람이 낯설었는지 취재진을 보더니, 머리 위를 선회하며 유심히 살펴보는 눈치다.

'추전'은 싸리밭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이곳에 아름드리 싸리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추전역이 만들어진 것은 석탄산업 때문이었다.

태백선은 1973년 10월 현재의 노선으로 개통됐고, 추전역은 그해 11월 영업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고한∼추전∼황지역(현 태백역)은 험준한 산악지형 때문에 연결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태백지역 무연탄은 영주, 제천을 거쳐야만 전국 각지로 운반됐다.

1966년 연탄 파동이 나자 정부는 빠른 무연탄 수급을 위해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선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래서 생긴 게 추전역과 정암터널이다.

추전역에서 서울 방면으로 약 500m 떨어진 정암터널은 길이가 4천505m로, 한때 전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

정암터널 개통 전까지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제천∼영주 간 죽령터널이 4천500m로 최장이었다.

이후에 정암터널보다 더 긴 슬치터널(6,128m)이 전북 완주에 건설됐고 지금 남한에서 제일 긴 터널은 태백시 백산동과 삼척시 도계읍을 잇는 솔암터널(16.2㎞)이다.

정암터널 위에 있는 고개가 고려말 유신들이 은둔했던 곳으로 알려진 두문동재다.

유신들은 삼척에 있던 공양왕을 찾아가다가 공양왕이 교살됐다는 소식을 듣고 두문동재에서 은거했다고 한다. 외부와 왕래를 끊는 은둔을 이르는 '두문불출'은 여기서 유래했다. 같은 유래의 두문동 지명은 황해도 개성에도 있다.

용연동굴 [사진/조보희 기자]
용연동굴 [사진/조보희 기자]

추전역은 평소에 여객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가기는 어렵다.

태백에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눈꽃 관광열차가 운행되면 기차를 타고 도착할 수 있다. 감염병 때문에 올해 겨울에 눈 축제가 열릴 수 있을지, 눈꽃 열차가 운행될지는 미지수다.

태백 시내 쪽에서 자동차를 타고 추전역을 오르다 보면 가파른 도로에 놀라게 된다.

석탄 산업 전성기 때는 추전역 주변에 탄광이 여럿 있었다. 석유가 석탄의 역할을 대신하고 석탄 산업이 몰락하면서 전성기의 자취는 이제 찾기 어렵다.

당시 추전역 주변에는 광업소 사택과 거주자가 많아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정차했으나 태백지역 인구 감소와 함께 1995년 여객 취급이 중단됐고, 2016년에는 무연탄 수송까지 중지됐다.

근래 추전역이 최고 고지의 역으로 주목받고, 태백시가 고원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추전역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추전역은 여객을 취급하지 않음에도 맞이방을 갖추고 있다. 맞이방은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하거나 방명록을 작성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 하늘 다음 태백, 백두대간의 중심

태백에는 '처음', '최고'의 수식어가 붙는 장소가 한둘이 아니었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다. 빗물이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나눠 흘러드는 분수령인 삼수령도 태백에 있다. 해발고도 920m로, 전국 최고 지대의 자연 석회동굴인 용연동굴이 있는 곳도 태백이다.

태백시에 있는 매봉산은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지점이다.

옛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한 제단인 태백산 천제단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꼭대기에 있는 큰 제단이다. 만항재는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중에서 제일 고도가 높다.

이처럼 시원, 중심, 최고라고 부르는 곳이 여럿이다. 백두대간의 중심인 태백시는 한반도의 신비스러운 성소라 할 만했다.

검룡소 [사진/조보희 기자]
검룡소 [사진/조보희 기자]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는 514㎞에 이르는 한강의 하구에서 가장 먼 발원지다.

태백시 대덕산 금대봉 기슭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나는데 하루 2천∼3천t의 물이 용솟음친다. 가물어도 물의 양은 큰 변화가 없다.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 가는 1.3㎞가량의 숲길은 고즈넉했다.

숲은 특이하게도 갈색이나 황금빛으로 변한 낙엽수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황금색 일본잎갈나무 잎들은 눈꽃처럼 날렸다.

낙동강 1천300리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은 태백 시내 중심가에 있다. 둘레 100m가량의 이 연못에서 하루 5천t의 물이 솟아난다.

공원으로 조성된 황지연못은 11월임에도 빨간 단풍나무들이 고운 빛을 잃지 않은 채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삼수령에서 빗물은 한강을 따라 서해로,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도 흘러간다.

이곳 물길은 세 갈래로 나뉘어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바다로 연결되는 것이다.

삼수령은 검룡소에서 시작하는 한강과 황지연못에서 발원하는 낙동강이 연결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산의 이미지를 가진 태백은 물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실제로 태백은 5억 년 전 고생대 선캄브리아기에 얕은 바다였다.

황지연못 [사진/조보희 기자]
황지연못 [사진/조보희 기자]

삼수령은 해발 1천305m인 매봉산에 있다. 삼수령에는 백두대간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매봉산에서 건의령까지 7㎞를 생태적으로 복원했다는 푯말이 서 있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돼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다.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 인식체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총길이는 1천400㎞에 이른다.

매봉산에는 삼수령 외에도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바람의 언덕', 낙동정맥의 시작점, 고랭지채소단지 등의 명소도 있다.

수확이 끝난 40만여 평의 채소밭은 황량하고 거대했다.

돌이 많아 거친 밭은 경사가 급해 기계로 경작할 수 없다. 손으로 일일이 모종을 심어야 하는데 막막한 느낌이 밀려들 정도로 밭은 바다처럼 넓었다.

풍력발전단지는 해발고도 1천270m에 조성돼 있다. 단지에는 풍력발전기 17기가 가동 중이고, 7기를 건설 중이다. 작업 크레인의 길이가 200∼300m는 돼 보였다.

바람의 언덕에는 장관이 여럿 있다. 거센 바람, 비탈의 넓은 땅,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역사(役事)….

가장 벅찬 감동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드러누운 백두대간이었다. 산은 첩첩이 이어지고, 봉우리들 너머에는 맑은 하늘과 하얀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 끝 먼 곳은 바다처럼 보였다. 나뭇가지가 앙상해진 산은 반투명 옷을 입은 듯 멀리서도 속살이 느껴지는 듯했다.

산들이 연봉으로 이어지는 풍광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산맥이 발아래로 펼쳐지는 장관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항공사진으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이다.

태백에는 유일의 장소가 또 있다. 5억∼3억 년 전 고생대 땅의 역사를 보여주는 구문소다. 구문소는 황지천이 산을 뚫고 들어가 철암천과 만나는 곳이다.

뚜루내라고도 불리는데 경치가 탁월하다. 구문소에서는 석탄기, 오르도비스기, 캄브리아기, 선캄브리아기에 속하는 지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2억 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지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역이 퇴적층이어서다.

복족류 화석, 건열구조, 스트로마톨라이트, 생교란구조, 연흔구조, 암염흔적 등 이름도 생소한 지질 구조들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었다.

구문소는 지질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학자들이 꼭 거쳐 가는 곳이며, 구문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도 여럿이라고 한다.

구문소 [사진/조보희 기자]
구문소 [사진/조보희 기자]

◇ '검은 진주' 석탄과 태백

태백시가 생긴 것이나 추전역이 건설된 것은 석탄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석탄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석탄이 주된 에너지로 사용됐던 1970∼1980년대 전국 연간 석탄생산량 1천800만t의 약 30%인 568만t이 태백에서 생산됐다.

1981년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돼 태백시로 출범했다.

'검은 진주' 석탄이 주목받던 1970년대 태백에서는 '개도 천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경제가 활황이었다.

당시 1천 원의 구매력은 지금의 1만 원보다 작지 않았다. 광부들은 생명 수당을 받은 덕에 탄광에서 1년만 일하면 서울에 집을 산다는 말이 있었다.

광업소 사원증은 내밀기만 하면 외상 거래가 가능해 요새로 치면 신용카드로 통했다.

그러나 '검은 굴에서 번 돈은 햇볕을 받으면 녹아 버린다'고 할 정도로 소비, 유흥 문화도 성해 돈을 모으지 못한 채 건강만 해치는 광부도 적잖았다.

'크게 밝다'라는 뜻의 태백산 이름을 딴 태백시는 생긴 지 40년이 채 안 되는, 역사와 전통이 짧은 도시다.

지역 정체성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데는 석탄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통이 불편했던 것도 태백의 참모습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태백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고, 한반도의 정기가 서린 곳이었다.

도로가 거미줄처럼 뚫리면서 태백을 찾는 국민과 관광객이 늘고 있다. 새로운 십 년을 시작하는 2021년 새벽에 백두대간의 중심, 푸른 하늘에 가까운 태백에서 힘찬 출발을 다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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