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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언제 가도 좋은 아! 지리산

송고시간2020-10-31 10:30

지리산 천왕봉 일출
지리산 천왕봉 일출

지난해 12월 29일 촬영한 지리산 천왕봉 일출 모습. [국립공원공단 제공]

1985년, 군대를 막 제대한 청년 두 명과 배낭을 메고 지리산에 갔다.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경남 하동·함양·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483.022㎢의 면적으로 걸쳐 있다.

둘레가 320km나 되며, 천왕봉(1천915m), 반야봉(1천732m), 노고단(1천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무거운 배낭 탓도 있겠지만 1천500m쯤 올랐을 때 두 청년이 더는 못 가겠다며 두 손을 들었다. 구상나무와 전나무가 울창한 숲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와야 했다.

2013년, 20대가 된 두 아이를 데리고 지리산 종주를 위해 구례로 갔다. 아침 일찍 성삼재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도중에 스님 두 분이 버스에 오르더니 통행료를 걷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때 자신들의 절이 소유한 토지도 함께 포함됐다기에 찜찜한 맘을 걷어냈다.

성삼재에 도착해 2박 3일의 종주를 시작했다. 벽소령 대피소와 장터목 대피소에서 추운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출을 보기 위해 천왕봉으로 향했다. 어둠을 뚫고 서서히 여명이 비춰왔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이 조금씩 붉은색을 입기 시작했다.

해가 솟기 전에 천왕봉에 도착하기 위해 마음이 바쁜데 여명에 취해 자꾸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겨우 오른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며 한참을 다시 취했다. 장터목으로 돌아온 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와서야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너무 힘들어 다시는 오지 말자고 다짐했다.

2015년, 둘레길이 유행할 때 지리산 둘레길을 찾아보다 '대박' 정보를 발견했다. 15박 16일간 둘레길을 걷는 행사에 시니어 20명을 뽑는다는 공고였다. 장장 295km의 장거리 행군이었다.

둘레길은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연결했다. 옛길은 최대한 복원하고 원래 있던 숲길, 임도, 강길, 제방길, 마을길을 적극 활용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 '여길 왜 왔을까' 후회하며 매일 15km씩 걸었다. 말이 둘레길이지 산을 매일 하나씩 넘는 기분이었다. 다만,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매력이 넘치긴 했다. 깊게 감춰진 계곡에서 바위에 누워 하늘을 보고, 고생한 발을 계곡물에 식히면 힘듦이 어느새 사라졌다. 길가에 널린 나물을 뜯어 가져간 밥과 먹으면 최고의 식사가 됐고, 산딸기 서너 개를 따 입에 넣으면 디저트가 필요 없었다.

대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귓가로 바람이 지나가고, 드라마 '토지'에서 봤던 평사리 논두렁을 일렬로 걸을 때는 어느새 과거로 돌아갔다. 섬진강을 걸으며 튀어 오르는 은어를 보고, 화개장터에서는 도토리묵과 파전을 먹었다.

길에서 만난 자연과 마을, 역사와 문화가 모두 새롭고 흥미로웠다. 한 땀씩 수놓듯 이어가는 지리산 둘레길을 통해 만난 모든 생명의 속삭임을 생전 처음 인식한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지리산 운해 장관
지리산 운해 장관

k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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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가 된 어느 날 노고단 일출을 보러 가자는 유혹에 또 나섰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고 랜턴 불빛에 의지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대피소에 도착하니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예약해야 한다.

노고단은 다른 코스에 비해 등산로가 완만한 데다 식물 자원이 풍부해 외국인 선교사들의 휴양촌으로 이용됐고, 완만한 경사지에서 스키 대회를 열기도 했던 곳이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훼손이 심했다.

복원을 위해 10년간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고 자연을 복원하는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했다고 한다. 관리인이 입구를 열어주더니 차를 타고 먼저 올라갔다. 노고단 고개에 가니 먼저 도착해 있던 관리인이 예약을 체크했다. 정상까지는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정상을 향하다 뒤를 돌아본 순간,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발아래 모든 세상이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노고단보다 더 높은 천왕봉에서도 볼 수 없었던 구름바다. 구름이 마을과 마을을 감췄다 보여주고, 보여주다 감추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일출을 보러 정상에 가야 하는데 구름바다가 놔주질 않았다. 그 사이 해는 사방을 붉게 물들이며 해맞이 준비를 하더니 서서히 웅장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세계 곳곳을 돌며 수없이 많은 일출을 봤지만 노고단의 일출이 단연 최고다.

지리산은 '악' 소리가 날 만큼 험하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와 건강에 알맞은 방법을 찾는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다가갈 수 있다.

오현숙
오현숙

배낭여행가 | 여행작가 | 약 50개국 방문 | 저서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 등
insumam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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