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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전사자 아들 10년 기다림 끝에 부친 유해 찾아

송고시간2020-10-26 08:26

국방부, 6·25전사자 명한협 일병 신원 확인…153번째

고(故) 명한협 일병 결혼식 사진
고(故) 명한협 일병 결혼식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국군 전사자 아들이 유전자(DNA) 시료를 제공하고 10년의 긴 기다림 끝에 아버지 유해를 찾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7년 5월 2일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고(故) 명한협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명 일병의 신원 확인은 2000년 4월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53번째다.

지난 2010년 전사자 아들인 명갑원(72) 씨가 아버지 유해를 찾고자 DNA 시료 채취에 응한 지 10년 만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발굴된 유해에서 채취한 DNA 시료와 보관 중인 DNA 시료를 대조하는 작업을 한 끝에 결실을 이뤘다.

명 일병은 1925년 8월 경남 사천시 이홀동 일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하고 부모님께 효도해 가족들이 고인에게 의지했다고 한다.

고인은 아내 이분악 씨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외아들 갑원 씨를 낳았다. 26살이 되던 해인 1951년 2월경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부산 육군훈련소로 입대했다.

국군 제6사단 소속(추정)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가평·화천 진격전(1951.5.22∼5.30)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평·화천 진격전은 국군 6사단이 중공(중국)군 제187, 188, 189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화천까지 진격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6사단 2연대는 사흘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냈고, 중공군은 가평 북방으로 후퇴했다.

6사단은 중공군을 추격하며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가량 진출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에서 전사한 명 일병은 66년이 지나서야 대퇴부, 팔 윗부분의 유해 몇 점만 발굴됐으나 신원을 확인할 유품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인의 아내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아들 갑원 씨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 되어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덤덤한 마음"이라며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과 협의해 명 일병 귀환 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thre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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