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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이야기로 풍자하는 역사의 허구성

송고시간2020-10-20 13:45

대작가 필립 로스가 쓴 유일한 야구 소설 '위대한 미국 소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야구는 미국의 국민 스포츠다.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 미국인들의 생활 자체이자 힘든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판타지이면서 미국 정신을 대변하는 문화적 결정체다.

대공황기에 "베이브 루스가 오늘도 홈런을 쳤느냐"고 물어보는 건 마치 안부 인사와도 같았다.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미국인들이 오랫동안 노벨문학상을 거머쥐길 바랐지만 결국 '무관'으로 눈을 감은 대작가 필립 로스(1933~2018)도 야구광이었다.

"일요일 더블헤더가 없는 미국의 여름, 월드시리즈가 없는 미국의 10월, 스프링캠프가 없는 미국의 3월. 아, 그들은 그때도 그걸 미국이라 부르겠지만 아주 다른 나라일 거야."

로스가 일곱 번째 장편 '위대한 미국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드러낸 야구관이다. 도서출판 문학동네가 김한영의 번역으로 최근 국내에 소개한 이 소설에서 로스는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야구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풍자한다.

무수한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음모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폭력적인 세상을 비튼 현대식 우화다.

야구 이야기로 풍자하는 역사의 허구성 - 1

전직 스포츠기자인 스미티 노인은 일관되게 과거에는 메이저리그가 세 개였다고 주장한다. 현재 아메리칸 리그, 내셔널 리그 외에 '패트리엇 리그'라는 대단한 리그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패트리엇 리그가 미국인들이 아무도 기억 못 할 정도로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엄청난 비밀을 소설로 쓰기로 한다.

그가 노년에 이 집단 망각을 바로잡으려는 엄청난 시도를 하게 된 건 예술을 도구로 진실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다수의 폭력과 압박 속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으로 살아남은 그는 진실을 다시 기록해낼 유일한 언론인이었다.

그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패트리엇 리그 최약체인 루퍼트 먼디스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 팀의 홈구장을 신병과 무기, 보급품을 유럽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기지로 쓰기로 한 것이다. 한때 강팀이었던 먼디스는 야구계 거목이자 팀 창설 주역인 전 구단주가 세상을 떠나고 이윤만 좇는 아들들이 구단을 물려받은 뒤로 급속히 쇠락해왔다.

돈에 눈이 멀어 홈구장을 육군성에 넘긴 새 구단주 형제는 그러나 마치 이 결정이 애국심 때문인 것처럼 위선을 떤다. 그러자 먼디스는 1943년 모든 경기를 원정으로 치러야 했다. 먼디스의 몰락은 결국 리그 전체의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역사 속에서 패트리엇 리그가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로스는 '미국의 목가', '미국을 노린 음모' 등의 작품이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퓰리처상, 미국도서상,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 미국역사가협회상, 영국 WH스미스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등 주요 문학상과 함께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훈장과 각종 상을 받았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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