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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청산리전투 100주년…中현장선 韓관련성 흐릿해져

송고시간2020-10-20 10:10

한중이 함께 세운 기념탑 방치돼 주변엔 쓸쓸함만 감돌아

"중국은 독립군에 대해 조선족이자 중국인으로 봐" 전언도

밑에서 바라본 청산리전투 기념탑
밑에서 바라본 청산리전투 기념탑

(허룽=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19일 청산리전투 현장인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에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아래쪽 벽면의 사적지 표식은 녹이 슬어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2020.10.19. bscha@yna.co.kr

(허룽=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100년 전 두만강 건너 지금의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지역 산골짜기 일대에서 치러졌던 청산리전투.

당시 독립군은 일본 정규군의 추격을 피하고 병력을 보존하기 위해 산세가 험한 백두산으로 이동하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군과 엿새 동안 생사를 건 싸움을 벌여 대승을 거뒀다.

한중 양국은 청산리전투 80주년을 즈음한 2001년 17.6m 높이의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를 세웠고, 이후 이곳을 기념공원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청산리전투 100주년을 맞아 연합뉴스 기자가 지난 19일 기념탑을 찾았을 때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쓸쓸함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기념탑 주변 바닥 돌 틈에는 올 여름내 자랐을 것으로 보이는 잡초가 말라 있었고, 곳곳에 낙엽이 쌓여있었다.

기념탑 주변 훼손된 울타리
기념탑 주변 훼손된 울타리

(허룽=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19일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의 청산리전투 기념탑 주변 울타리. 곳곳이 훼손돼있다. 2020.10.19. bscha@yna.co.kr

탑 주변에 돌로 만든 울타리 곳곳이 훼손돼 돌기둥들 사이에 반듯하게 가로질러 있어야 할 돌들이 삐뚤빼뚤 걸쳐 있었고,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에 있는 사적지 표식은 녹슬어 무슨 글씨인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또 8~9년 전 기념관으로 쓰기 위해 지어졌던 건물도 기념공원화 계획이 흐지부지된 뒤 방치되고 있었다.

과거에는 멀리서도 기념탑이 잘 보이도록 조경이 정돈돼 있었지만, 지금은 부근의 나무들이 기념탑을 가리고 있기도 했다.

특히 탑에 새겨진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라는 글자 외에, 청산리전투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화강암으로 된 탑 본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탑 뒤쪽 벽면에 설치했던 건립취지문은 사라진 상태였다.

건립취지문에는 원래 한국어와 중국어로 "동북지역 반일 무장투쟁 사상 새로운 시편을 엮음은 물론, 조선 인민의 반일 민족독립 운동을 주동한 역사로서 청사에 새겨졌다"는 평가가 적혀있었다.

지금은 건립취지문 석판 설치 당시 쓰였던 나사만이 녹슨 채 남아있어, 석판이 없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기념탑 아랫부분에 있는 '청산리전투' 조각
기념탑 아랫부분에 있는 '청산리전투' 조각

(허룽=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19일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의 청산리전투 기념탑에 새겨진 조각. 우측에 있는 사람들이 중국식 옷을 입고 있다. 2020.10.19. bscha@yna.co.kr

대신 탑 본체에 새겨진 청산리 전투 장면 부조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조각은 청산리전투 당시 총을 든 독립군이 앞서 싸우고 뒤에서 남녀노소가 지원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남녀노소가 입고 있는 옷은 한복이 아니고 중국식 의복이었다.

기념탑이 중국 땅에 세워지다 보니 중국 측과 협의 과정에서 이렇게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청산리전투에 대한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부분을 보면 한국과의 관련성을 찾기 어려웠다.

중국 당국은 기념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인들의 기념탑 방문도 막고 있다.

한국인들의 방문 요청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난색을 보이거나, 먼 길을 거쳐 입구까지 온 경우에도 그냥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념탑 바로 옆은 삼림구역인 임장(林場)으로 지정돼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있고, 중국 경찰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 차량들이 이용하는 네비게이션 지도에서도 '청산리 전투 기념탑'은 검색되지 않는다.

인근 마을 한 주민은 "중국 정부가 기념탑을 없애지는 못하고 방치하는 것 같다"면서 "중국의 다른 열사 기념비에는 모두 희생된 열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청산리전투 기념탑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주민도 "청산리전투도 항일전쟁이지만, 공산당과 관련된 게 아니다 보니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면서 "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청산리전투 기념탑
청산리전투 기념탑

(허룽=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19일 청산리전투 현장인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에 기념탑이 세워져있다. 2020.10.19. bscha@yna.co.kr

접경지역의 한 소식통은 "2001년 기념탑 설립 당시는 중국이 소수민족을 우대하고 해외에서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반기던 시기"라면서 "청산리전투 시기가 중국 공산당 성립 이전이라 (덜 민감했던 만큼) 현지에서도 기념비를 반겼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집권 이후 공산주의 홍색(紅色) 교육과 중화 민족주의가 강화하고 소수민족의 한족(漢族)화가 이뤄지는 분위기"라면서 "한국 사람들이 와서 자기 것이라 하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서 "중국은 독립군에 대해 조선족이자 중국인으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중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백과사전 '바이두 바이커'(百度百科)는 독립군의 또 다른 전과인 봉오동전투에 대해 조선족 반일 무장연합부대의 싸움으로 설명하고 있다.

잘 정돈된 청산리전투 기념탑 주변의 과거 모습
잘 정돈된 청산리전투 기념탑 주변의 과거 모습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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