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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고 생각하고 싶은 안드로이드의 인정 투쟁

송고시간2020-10-18 07:46

영화 '인간증명'…춘천영화제서 90분 버전 첫 공개

(춘천=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혜라(문소리)는 사고로 죽은 아들 영인(장유상)의 뇌 일부와 인공지능을 연결해 안드로이드를 만든다. 아들을 소생시켰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아들이 아들 같지 않다고 느낀 혜라는 경찰에 신고한다.

영화 '인간증명'
영화 '인간증명'

[수필름·DG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간과 인공지능이 일정 비율로 섞이는 게 일반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법정소설 '독립의 오단계'(이루카)를 원작으로 만든 김의석 감독의 영화 '인간증명'은 몸을 공유하던 인간을 시스템에서 삭제한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의 인정 투쟁을 지켜보는 인간들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한다.

아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에 아들의 영혼이 있다고 믿고 위안을 얻었지만 그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 혜라처럼, 관객도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고 의지를 드러내는 안드로이드를 보며 혼란을 느낀다.

뇌 생체 조직 유지 장치를 차단해 영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를 받는 안드로이드는 "(영인은) 죽어 있는 거나 다름없는 목숨"이었다고 항변하고,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다.

영인이 사라진 뒤에도 혜라 앞에서 영인을 연기하며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했던 안드로이드는 존재를 의심받으면서 '왜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취급하느냐'며 절규한다.

영화는 죽음을 욕망하는 인간과 삶을 욕망하는 안드로이드, 그 둘을 품고 만들었지만, 포기도 인정도 하지 못하는 혜라를 통해 한없이 복잡하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이어간다.

하지만 감독의 답은 안드로이드의 입을 빌려 비교적 일찌감치, 간결하게 내놓는다. 법정에 서게 된 안드로이드는 말한다. "계속 산책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싶다"고.

영화 '인간증명'
영화 '인간증명'

[수필름·DG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간증명'은 지난여름 한국영화감독조합이 기획해 선보인 'SF8' 시리즈의 하나다.

SF 문학을 원작으로 영화 감독이 만든 드라마 시리즈로,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웨이브(OTT), 지상파 방송(MBC)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선보이며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다.

'SF8' 시리즈는 50분 분량을 기준으로 8편의 작품에 같은 예산과 시간이 주어졌다. 50분 분량의 드라마 버전을 두 배 가까이 확장한 영화 '인간증명'은 본격 SF 영화제를 표방하며 새 출발 하는 춘천영화제 특별전에서 처음 선보였다.

지난 16일 춘천영화제에서 만난 김의석 감독은 "처음부터 90분 버전을 구상하고 긴 테이크를 많이 사용하려고 생각했다"며 "처음 해보는 드라마 작업인 데다 후반 작업 기간도 짧아 50분 버전 편집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SF 영화'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고정된 이미지들을 배반하는 영화는 드라마 버전에는 없던 인트로와 결말, 새로운 인물로 이야기와 사유를 풍성하게 완성한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지금의 일상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를 말하지만, 주변 인물이나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모습으로 구현했다.

"아들을 잃고 심연을 헤매는 혜라의 고민이 일상성을 얻으면서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고민으로 연장되면 좋겠다"는 게 감독의 의도였다.

동시에 영화는 꿈인지 환상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인간인지, 연기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을 오간다. 겉보기에는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를 확인 시켜 주기 위해 매우 제한적으로 쓰인 컴퓨터 그래픽(CG)마저 물성(物性)이 아닌 환상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김 감독은 "(안드로이드 설정에 대해) 관객과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오류가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하고 모호한 느낌"을 이야기했다.

감독은 "처음부터 CG가 없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며 "미술이나 조명 등 모든 부분에서 최대한 지양하고 감정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욕심을 냈다"고 말했다.

연극적인 대사,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한 영화는 과연 배우 문소리와 장유상의 밀도 높은 연기로 꽉 채워졌다.

김의석 감독
김의석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CGV아트하우스 제공]

데뷔작 '죄 없는 소녀'(2017)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신인인 김 감독은 혼자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중 'SF8' 제안을 받고 계획에 없던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그는 "명확한 기획과 가이드라인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권한이 주어져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자극이 됐다"며 "혼자 작품을 준비했더라면 가보지 않았을 길도 보고, 넓게 볼 수 있는 수업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영화 '인간증명'은 춘천영화제에 이어 오는 29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선보인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영화제 규모가 대폭 축소되면서 단 한 차례 상영하는 데다 상영관 인원까지 제한돼 일찌감치 매진됐다.

김 감독은 '인간증명' 정식 개봉 여부와 차기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돌진하기보다는 떨어져서 스스로한테 질문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소기의 성과는 이뤘지만, 더 많은 분께 보이려면 제가 더 성장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람에게 다가갈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답은 아직 못 얻었어요."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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