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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남설악 가을의 참멋, 주전골길

기암괴석, 맑은 계류, 단풍이 어우러진 장관

(양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주전골 길은 오색약수터를 끼고 있다. 오색의 단풍은 글로는 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기암괴석과 푸른 계곡이 단풍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가을의 참맛을 느끼게 했다.

단풍으로 고운 주전계곡 [사진/전수영 기자]
단풍으로 고운 주전계곡 [사진/전수영 기자]

산세와 경치가 빼어난 남설악. 그중에서도 오색지구에 있는 주전골 길은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는 기암괴석, 계곡의 비췻빛 맑은 물줄기, 노랗고 빨간 단풍이 어우러져 멋스럽고 상큼한 한국 가을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설악산 정상의 단풍이 절정에 이른다는 10월 중순. 고도가 한참 낮은 주전골에서는 단풍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감염병 사태로 인한 사회 긴장이 늦춰지지 않았고, 주말 아닌 평일인데도 주전골은 오색의 단풍을 즐기려는 탐방객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주전골'이라는 명칭은 조금 생소할지 모르겠다. 주전계곡 입구가 오색약수터다. 주전계곡은 오색천으로 이어진다. 오색약수터는 설악산 등반의 주요 시작점이다.

주전 계곡 위쪽에는 용소폭포가 있다. 옛날 강원 관찰사가 한계령을 넘다가 주전골에서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살펴봤더니 동굴 안에서 10여 명의 무리가 위조 엽전을 만드는 것을 발견하고 그 무리와 동굴을 없앴다고 한다. 이후 이 골짜기를 주전골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주전골 길은 용소폭포코스라고도 부르는데, 설악산국립공원의 15개 탐방로 중 하나다. 양양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12개 양양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색약수터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오색약수∼선녀탕∼금강문∼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까지 편도 3.2㎞다.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왕복 2시간∼2시간30분 정도다.

오색약수터 [사진/전수영 기자]
오색약수터 [사진/전수영 기자]

주전골 길 인근에는 남설악의 명소인 만경대가 있다. 만경대로 이어지는 길은 공식 탐방로가 아니지만, 가을이 한창인 9월 24일부터 11월 14일까지 50여 일 동안 임시 개방된다.

만경대로 가는 길은 용소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된다. 만경대가 임시 개방되는 동안 주전골 길은 오색약수터 탐방지원센터∼오색약수∼선녀탕 ∼금강문∼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만경대∼오색약수터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형성하게 된다. 이 둘레길은 약 5㎞다.

우리는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오색분소에서 시작해 둘레길을 걸었다. 2시간 30분∼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오색약수는 탐방객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여전했다. 오색약수터는 2006년 큰 수해 때 유실된 적이 있다. 터가 손상됐지만, 약수는 계속 샘솟아 약수터는 복구됐다.

오색약수는 수량과 수온이 일정하고, 철분이 많아 위장병, 빈혈, 신경통에 약효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전골에는 성국사라는 고찰이 있다. 1500년께 성국사 승려가 오색약수를 발견했다고 한다. 5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나무, 즉 '오색화' 나무가 이 절 마당에서 자랐다는 전설에서 '오색'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오색약수는 약효, 인지도, 역사성 등을 평가받아 2011년 약수 중에서 처음으로 천연기념물(제529호)로 지정됐다.

약수터탐방지원센터에서는 만경대 탐방 신청을 받고 있었다. 만경대를 탐방하려면 국립공원 인터넷예약 시스템으로 예약하거나 이 지원센터에서 현장 예약해야 한다. 예약하지 않고는 탐방할 수 없다. 탐방객 안전과 임시 개방한 탐방로 보호를 위한 조치다.

만경대에서 바라본 만물상 [사진/전수영 기자]
만경대에서 바라본 만물상 [사진/전수영 기자]

지원센터를 지나니 0.7㎞에 이르는 무장애 길인 '설악산 오색약수 편한 길'이 나왔다.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다.

완만한 경사의 데크, 블록 포장, 휴게 데크, 장애인 전용 주차장 등으로 구성된 길이다. 북한산 둘레길, 태안 기지포 천사길, 내장산 자연사랑길, 덕유산 무장애 탐방로, 오대산 전나무숲길 등이 국립공원에 조성된 무장애 탐방로다.

주전골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에 편안해 어린이, 노약자를 포함해 가족이 함께 걷기에 좋다.

홍창해 양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정상 정복감을 맛보려 하기보다 각자의 체력에 맞는 길을 편안하게 즐기는 산행이 바람직한 걷기 문화인 것 같다"며 "그러려면 보통 체력의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이 개발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을 가까이 느끼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는 것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체력이 강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게 여건이 조성돼 있다면 성숙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0여분 걸었을까. 성국사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나왔다. 이 절은 오색석사라고도 불린다. 절 마당에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삼층석탑이 서 있다. 양양에 있는 유일한 보물(제497호)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2∼3개 지났을까. 주전골 최고 비경이라는 독주암이 눈앞에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부가 한 사람 겨우 앉을 정도로 좁아 독좌암이라고도 불린다.

독주암과 주전계곡이 만들어내는 그윽한 풍경은 설악의 비경을 자랑하는 천불동 계곡의 축소판이라 할 만했다. 혹자는 남설악의 주전골,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 내설악의 백담계곡을 설악산 최고의 단풍 경관으로 꼽기도 한다.

독주암 [사진/전수영 기자]
독주암 [사진/전수영 기자]

이어 선녀탕이다. 옥같이 맑은 물이 암벽을 곱게 다듬어 청류로 흐르다 아담한 소(沼)를 이루었다.

전국 계곡 곳곳에 흔한 게 선녀탕일지 모르겠다. 설악산에만도 십이선녀탕, 비선대 등 선녀와 연관된 이름의 지형지물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천상의 비경 속에 살포시 들어앉은 듯한 작고 어여쁜 못을 선녀탕 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싶었다.

계곡에 걸친 금강문교를 지나 금강문에 다다랐다. 잡귀가 미치지 못하게 강한 수호신이 지키는 문이 금강문이다.

금강문을 통과할 때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 금강문에는 얼마나 많은 꿈과 소원이 깃들었을까. 길은 코스의 종착지인 용소폭포로 이어진다. 용소삼거리에는 등선대까지 탐방로를 통제한다는 표시판이 서 있었다.

주전골 길은 몇 년 전만 해도 용소폭포에서 끝나지 않고 등선폭포∼등선대∼여심폭포∼흘림골공원지킴터까지 3.5㎞ 더 이어졌다.

2015년 낙석 사고가 난 뒤 이 구간을 폐쇄했다. 이 구간은 특히 경관이 탁월해 오색지구 주민과 상인들은 길의 재개방을 바라고 있다.

낙석방지 시설과 조치를 한 뒤 내후년쯤에 이 구간이 다시 열릴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한다. 등선대에 올라가면 한계령, 점봉산, 대청봉이 보이고 멀리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다.

금강문 [사진/전수영 기자]
금강문 [사진/전수영 기자]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인기 있는 이 구간이 폐쇄되자 임시로 대신 개방된 길이 만경대 길이다. 주민들은 오래전에 있었던 만경대 옛길의 재개방을 요구했고, 비록 가을 한 철이지만 개방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2016년 남설악 만경대가 폐쇄된 지 40년 만에 재개방됐을 때 오색지구는 전국에서 찾아온 등산객, 단풍객들로 다시 한번 들썩였다고 한다.

지금은 탐방예약제를 시행해 탐방 인원과 시기를 제한하고 있다. 자연을 보호하는 동시에 방문객들이 번잡스럽지 않은 분위기에서 산행의 참맛을 느끼게 하기 위한 조치다.

용소폭포 옆에 주전바위가 있었다. 마치 동전을 쌓아 올린 듯한 모양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시루떡을 쌓아 놓은 형태와 비슷해 시루떡 바위라고도 한다.

기암괴석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만물상도 위용을 드러냈다. 독주암, 만물상 등 신령스러운 바위들이 계곡의 품격을 높이고, 맑은 계곡물이 높은 바위산의 위엄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만물상에 이르러서는 '역시 설악'이라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용소폭포 [사진/전수영 기자]
용소폭포 [사진/전수영 기자]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까지는 편안하고 완만한 길이다. 그러나 이 센터에서 만경대로 가는 길 1.1㎞는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등산용 스틱을 이용하면 오르기가 훨씬 수월하다. 만경대에 오르니 만물상을 가까이에서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연두, 노랑, 빨강 색으로 곱게 물든 나무들이 커다란 바위 사이사이에서 만물상을 한껏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만경대는 만 가지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만경대에서는 한계령으로 오르는 44번 국도와 한계령 정상에 있는 휴게소가 멀리 보였다. 만물상 왼쪽으로는 단풍 옷을 입은 산들이 첩첩이 이어졌다.

만경대에서 내려오는 길은 0.8㎞다. 길 끝에 오색약수터탐방지원센터가 있다. 내려오는 길에는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가파른 계단이 많았다. 발길에 신경 쓰느라 고개 들어 경치 구경할 여유를 부릴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에서 만경대를 지나 오색약수터탐방지원센터까지 이어지는 길은 일방통행이다. 만경대 정상부에도 오고 가는 탐방객들이 맞부딪히지 않도록 일방통행로가 조성돼 있었다. 인파 속에서도 산행의 멋을 제대로 맛보려면 지혜로운 체계가 필요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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