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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혀끝에 감도는 그윽한 오크향과 사과향

송고시간2020-11-20 07:30

예산 사과로 와인·브랜디 만드는 '예산사과와인'

하늘에서 내려다본 예산사과와인 와이너리와 사과밭 [예산사과와인 제공]

하늘에서 내려다본 예산사과와인 와이너리와 사과밭 [예산사과와인 제공]

(예산=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6천500평 드넓은 밭에 사과나무가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는 무척이나 크고 탐스러웠다.

와이너리 건물로 들어가니 향긋한 사과 향기가 마스크를 뚫고 코끝을 휘감는다. 잘 익은 사과를 세척해 즙을 짜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잘 씻은 사과를 잘라보니 껍질뿐 아니라 속살도 빨갛다. '속 빨간 사과'로도 불리는 '레드러브'라는 품종이다.

맛이 시고 떫어 그냥 먹기에는 힘들지만, 술로 만들면 맛도 색깔도 잘 나온다고 한다.

속 빨간 레드러브 사과. 그냥 먹기에는 시고 떫지만, 술로 만들면 맛도 색깔도 잘 나온다. [사진/전수영 기자]

속 빨간 레드러브 사과. 그냥 먹기에는 시고 떫지만, 술로 만들면 맛도 색깔도 잘 나온다. [사진/전수영 기자]

◇ '레드러브'와 '후지'로 만든 달콤한 와인과 브랜디

충남 예산군 고덕면에 있는 '예산사과와인'은 예산에서 생산되는 '레드러브'와 '후지' 품종의 사과로 술을 빚는 와이너리다.

아이스와인 스타일의 달콤한 사과 와인과 사과 와인을 증류해 오크통에서 숙성한 브랜디를 만들고 있다.

정제민 부사장의 안내를 받아 작업장 옆 숙성 창고로 들어가 봤다. 문을 여니 냉기와 함께 술이 익어가는 큼큼한 내음이 밀려온다.

넓은 창고 안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거대한 스테인리스 탱크와 오크통이 늘어서 있었다.

스테인리스 탱크 안에서 익어가는 술은 '추사 로제 스위트'와 '추사 애플와인'이다. 둘 다 아이스 와인 스타일로 만든 달콤한 와인이다.

캐나다와 독일에서 많이 생산되는 아이스 와인은 원래 겨울에 꽁꽁 언 상태의 포도를 딴 뒤 해동되기 전 짜서 발효시키는 달콤한 와인이다.

포도 내부의 수분이 얼어 그 즙이 농축되기 때문에 풍미 좋고 당도 높은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캐나다 퀘벡에서는 이런 방식을 사과에 적용해 애플 아이스 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언 상태의 과일을 수확하는 방식으로 아이스 와인을 만들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열매를 따서 냉동하거나 가당해 달콤한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이런 와인은 오리지널 아이스 와인과 구분하기 위해 '아이스 와인 스타일'이라고 한다.

예산사과와인은 사과에 당을 더해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달콤한 사과 와인을 만들고 있다. 사과즙에 설탕을 첨가해 당도를 30브릭스로 올린 뒤 1년 이상 숙성 시켜 완성한다.

사과를 깨끗이 씻어 착즙하는 과정 [사진/전수영 기자]

사과를 깨끗이 씻어 착즙하는 과정 [사진/전수영 기자]

정 부사장이 맛보라며 '추사 애플 와인'과 '추사 로제 스위트'를 따라 내왔다.

'추사 애플 와인'은 직영 농장에서 수확한 후지 사과로 만든 것이다. 껍질째 착즙한 사과즙을 스테인리스 탱크에 넣은 뒤 15∼18도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다.

알코올 도수는 12도지만, 향긋한 사과향과 달콤한 맛 덕분에 술술 넘어간다. 디저트 와인으로 제격일 것 같다.

'추사 로제 스위트'는 속 빨간 레드러브 사과로 만들어 붉은색을 띤다. 빛깔뿐 아니라 맛도 매력적이다.

달콤함과 함께 쌉싸름한 맛과 신맛 등 레드러브 특유의 다양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달콤한 와인이지만 다양한 풍미를 지니고 있어 음식과 곁들여도 손색없을 것 같다.

◇ "예산에는 술 취한 천사들이 많다"

숙성 창고 안쪽에는 오크통 60여개가 줄지어 누워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공수한 증류주용 오크통들이다.

사과 발효주를 증류한 뒤 이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시킨 것이 브랜디 '추사 40'이다.

숙성 창고에 누워있는 60여개의 오크통 안에서 사과로 만든 증류주가 익어가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숙성 창고에 누워있는 60여개의 오크통 안에서 사과로 만든 증류주가 익어가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정 부사장이 오크통 뚜껑을 열고 술을 뽑아 맛보라고 내민다. 4년 숙성된, 알코올 도수 53도의 브랜디라고 한다. 한 모금 마셔보니 목 넘김이 무척 부드럽다. 53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목 넘김은 가볍지만, 오크향과 바닐라향, 사과향이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면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술에 정제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40도로 맞춘 뒤 6개월가량 더 숙성시킨 것이 '추사 40'이다.

알코올 도수를 50도 이상으로 올려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것은 높은 도수의 술이 나무의 향이나 색을 더 잘 뽑아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랜드명인 '추사'는 예산이 고향인 김정희 선생의 호에서 따 온 것이다. 추사의 삶과 정신을 담은 술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가을 사과', 혹은 '가을 이야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산사과와인은 사과 브랜디인 '추사 40'과 달콤한 사과 와인, 블루베리 와인 등을 만든다. [사진/전수영 기자]

예산사과와인은 사과 브랜디인 '추사 40'과 달콤한 사과 와인, 블루베리 와인 등을 만든다. [사진/전수영 기자]

증류주인 '추사 40'은 가격이 높은 편이다. 500㎖ 한 병 가격이 6만원이다. 비싼 오크통을 쓰는 데다 숙성기간도 최소 3년으로 길기 때문이다.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동안에는 1년에 1∼3%씩 술이 증발해 없어지기도 한다. 유럽사람들은 이를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한다.

"예산 하늘에는 그래서 술 취한 천사들이 많다"며 정 부사장은 웃었다.

정 부사장은 예산 출신인 백종원 씨와 의기투합해 오크통에서 숙성시키지 않은 소주 형태의 사과 증류주도 준비 중이다.

누구나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마실 수 있는 가성비 좋고 대중적인 술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다. 가격은 '추사 40'의 3분의 1 수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압력을 낮춰 낮은 온도에서 증류시키는 '감압 증류 방식'으로 증류하면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한 달만 숙성시켜도 부드러운 술을 만들 수 있다"고 정 부사장은 설명했다.

증류주 '추사 40'을 만드는 다단식 증류기 [사진/전수영 기자]

증류주 '추사 40'을 만드는 다단식 증류기 [사진/전수영 기자]

◇ 사과 농장에 일군 와이너리의 꿈

예산사과와인은 40년 전부터 사과를 재배해 온 은성농원에서 출발했다.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정제민 부사장은 은성농원 서정학 대표의 사위다.

대학 시절 가족을 따라 캐나다에 이민 간 정 부사장은 13년간 이민 생활을 하면서 와인에 빠져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서울에서 이민·유학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취미 삼아 와인을 만들었다.

사무실 한쪽에 와인 공방을 차리고, 인터넷 카페에 와인 만들기 동호회(와만동)도 만들었다. 당시 회원 수가 2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와인 만들기 원정대'를 꾸려 복분자 철에는 고창으로, 포도 철에는 영동으로, 사과 철에는 예산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와인을 만들었다.

예산사과와인을 운영하는 정제민 부사장 [예산사과와인 제공]

예산사과와인을 운영하는 정제민 부사장 [예산사과와인 제공]

본격적으로 와인 사업에 뛰어든 것은 10년 전이다. 장인이 운영하는 사과밭 한쪽에 와이너리 건물을 세우고 와인을 만들었다.

와이너리 투어, 사과 따기, 사과 잼·파이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해왔다.

덕분에 농장과 와이너리를 찾는 방문객이 한 해 2만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이 중 7천명가량은 외국인이다.

'예산 사과와인 페스티벌'도 17년째 독자적으로 열고 있다. 바비큐 파티, 재즈·록 공연, 시음회 등을 즐길 수 있는 축제다. 올해에도 11월 첫째 주 축제를 연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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