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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세계에서 다시 현실로…백건우, '슈만'을 위로했다

송고시간2020-10-10 09:43

올해 첫 국내무대 네번의 커튼콜…'백건우와 슈만' 전국투어 첫 공연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피아니스트 백건우(74)가 슈만이었고, 슈만이 곧 백건우였다. 유령 세계로 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백발의 거장이 죽음을 앞두고 외로웠을 슈만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10개월 만에 국내 무대에 선 백건우는 슈만의 첫 작품 '아베크 변주곡'에서 시작해 마지막 작품인 '유령 변주곡'까지 95분간 피아노 건반 위에 자신의 모든 영혼을 쏟아부었다. 슈만은 백건우에 의해 완벽하게 되살아났고, 관객들은 그의 열 손가락의 움직임과 호흡을 같이 했다.

유령 변주곡은 1854년 슈만이 마지막으로 쓴 피아노곡이다.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면서 결국 세상과의 끈을 놓아 버리려고 한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꽤 차분했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가 지친 슈만을 그려내기도 했다.

슈만을 쉽게 놓아줄 수 없었기 때문일까. 피아노 앞 백건우는 유령 변주곡을 마친 뒤에도 30초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는 백건우를 위해 객석을 가득 채운 900여명의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이윽고 백건우가 일어서자 관객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백건우는 양팔을 나란히 내린 뒤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여러 차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첫 공연부터 매진을 끌어낸 관객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마스크를 쓰고 좌석 한 칸 띄워 앉기를 실천하면서 네 번의 커튼콜로 거장을 예우했다.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슈만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슈만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백건우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가 가슴에 얹었고, 마지막에는 객석을 향해 왼손을 세 번 흔들었다. 그가 공연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박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한음 한음 소중하게 꾹꾹 눌러 쓴 붓글씨처럼, 올해 첫 국내 공연에서 그렇게 슈만을 표현했다. 라인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정신 분열 증세를 보였던 슈만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집어 삼켜버린 공연이었다.

백건우의 슈만은 좀 더 담담하고 진중했다. 슈만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마음의 상처와 슬픔이 얼마나 큰지 다 알고 있다고, 말없이 보여준 손끝의 힘만으로도 슈만이 비로소 치료되는 듯했다.

화성의 변화가 잦은 부분에서 자칫 지저분하게 들릴 수 있는 부분은 댐퍼 페달을 기술적으로 사용하면서 무리 없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슈만의 작품으로만 연주하는 그의 첫 공연에서 한평생을 음악에 바친 백건우의 향기가 묻어난 순간들이었다. 음악이 가진 힘에 백건우의 연륜과 경험이 더해져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백건우는 아내인 배우 윤정희를 생각하며 슈만을 연주하는 동안 피아노 앞에서 외롭지 않았다. 연습장에서도 공연장에서도 늘 함께했던 두 사람, 왼손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그의 결혼반지가 피아노 뚜껑에 반사돼 유독 더 반짝였다.

'백건우와 슈만' 전국투어는 수원, 부천, 광주, 안성을 거쳐 서울 강동, 인천과 경남 통영, 울산 등 다음 달 21일까지 이어진다. 슈만의 음악의 시작과 끝을 그만의 섬세한 감정선으로 되짚으며 전국의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9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백건우
9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백건우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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