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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자연의 햇살과 사람의 정성을 담은 약선요리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보약 같은 음식

(익산=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어느새 찬바람이 불고 있다. 산하는 곧 닥칠 겨울을 준비하고 사람은 새로운 계절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자연과 정성을 담은 식사는 보약과 같다.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마음을 살찌운다.

초향정엔 장류, 효소, 양념 보관을 위해 장독대가 세 군데 있다. 사진은 장류 장독대 [사진/조보희 기자]
초향정엔 장류, 효소, 양념 보관을 위해 장독대가 세 군데 있다. 사진은 장류 장독대 [사진/조보희 기자]

전북 익산시 낭산면 진북로에 있는 초향정은 익산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논두렁 길을 몇 굽이 돌아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익산의 넓은 들판과 멀리 보이는 산, 맑고 따사로운 햇살이 객을 반긴다.

초향정은 약선요리 전문 음식점이다. 약 20년의 조리 경력에 영양학을 전공한 유이례 대표가 10여 년 전 문을 열었다.

약선요리란 약이 되는 음식이다. 한의학 기초 이론에 식품학, 조리학, 영양학을 접목한다. 유 대표는 생활 속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음식 재료와 약재의 성격, 효능을 분석해 사람들의 체질, 지역, 기후 등에 알맞은 음식을 내놓는다.

지난해 전북도지사상을 받는 등 여러 음식 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쓴 유명 음식점이지만 주방에는 유 대표와 그를 돕는 올케언니뿐이다.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도 없다. 단체 손님이 있을 때만 아르바이트생이나 딸이 거들어준다.

재료 준비에서 조리, 음식 내놓기까지 유 대표가 도맡다시피 한다. 그는 모든 손님에게 조리 방법, 음식 재료의 효능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고, 손님이 식사하는 전 과정에 그의 공력이 닿지 않는 지점이 없다.

그가 만든 음식과 식자재에는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3∼5년 숙성되거나 발효된 게 적지 않다. 2∼3개월 발효한 모주와 홍어, 2∼3년 숙성·발효한 효소, 5년 묵은 김치, 10년 간수를 뺀 소금….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했더니 유 대표는 발효 음식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유이례 대표가 발효 중인 효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유이례 대표가 발효 중인 효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오래 숙성하고, 잔 손길이 많이 간 요리와 반찬을 먹으려니 음식의 고마움과 중요성이 새삼 마음에 다가온다. 우리는 별 의식 없이 마주하지만, 어머니가 매일 차려 준 밥상에는 말로는 표현을 다 하기 어려운 깊은 정성이 배여 있다.

사 먹는 음식에도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얼마간의 정성이 담겨 있을 것이다. 자연의 선물인 음식은 사람의 정성과 함께 먹어야 몸에 이롭다는 이치를 초향정은 새삼 떠올린다.

초향정은 코스 요리를 대접한다. 코스 끝에 밥상이 차려진다. 처음 나온 것은 황칠나무와 느릅나무를 달인 물이었다. 대추와 감초를 약간 섞었는데 약초 향이 강하지 않고 마시기에 편안했다. 유 대표는 '초향정에 찬물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어 바지락죽이다. 시장했던지 그냥 바지락죽 한 그릇만 먹으면 좋겠다는 충동이 일 정도로 맛있었다. 한 숟갈에도 바지락살의 탄력이 느껴졌다.

짐작하는 바대로 죽을 먼저 먹는 것은 몸에 음식을 먹는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서다. 한국식 애피타이저이다.

이어 보리와 고구마로 만든 모주가 등장했다. 고구마는 익산 특산물이다. 익산의 금마, 황등, 삼기면이 고구마 산지다. 유 대표는 익산 특산물을 활용한 요리 개발에 열심이다. 이 때문에 상을 적지 않게 받았다.

모주는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귀양지인 제주에서 빚은 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대비모주'(大妃母酒)가 '모주'로 불렸다는 것이다. 폭음하는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가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어 달여 아들에게 준 술이라는 설도 있다.

유 대표가 5년 전 특허를 낸 초향정 모주는 막힌 기혈을 뚫어 준다고 한다. 한번 끓인 술이라 알코올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도 한 잔 마시니 속이 따뜻해지는 듯한 반응이 왔다. 유 대표는 모주 한잔이 보약보다 몸에 이롭다고 귀띔한다.

홍어, 돼지고기, 묵은지에 뽕잎 장아찌를 곁들인 4합과 색감이 화려한 흑마늘 밀쌈 [사진/조보희 기자]
홍어, 돼지고기, 묵은지에 뽕잎 장아찌를 곁들인 4합과 색감이 화려한 흑마늘 밀쌈 [사진/조보희 기자]

12가지 산야초로 만든 효소를 넣은 냉채, 손수 만든 야채 식초 샐러드, 흑마늘 밀쌈, 홍어 사합, 고구마 볼, 오리 훈제와 마된장, 닭찜, 잡채, 들깨탕, 동태포 등이 뒤이어 나온 요리였다. 하나같이 오랜 숙성을 거쳤고 정성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삭힌 홍어는 4번 요리한 돼지고기, 5년 된 묵은지와 함께 나왔다. 홍어는 보통 삼합으로 먹지만 초향정에서는 뽕잎 장아찌가 더해져 사합으로 나온다. 돼지고기는 찬 성질을 없애기 위해 삶은 뒤 다시 굽는 등 여러 차례 조리했다.

뼈가 약간 붙어 있는 홍어살 한 점을 먼저 맛봤다. 짜고, 달고, 매운맛과 홍어 향이 차례로 입안에 퍼졌다. 암모니아로 인한 톡 쏘는 맛만이 아니라 이런 복합적인 풍미가 진정한 홍어의 맛이라고 유 대표는 강조했다.

'진정한 홍어 맛'을 내는 비결은 '영업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단다. 그에 따르면 발효된 홍어 뼈와 껍질은 칼슘과 콜라겐이 많고 소화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푹 고아서 먹으면 골다공증과 관절염 예방에 좋다. 뼈와 껍질이라고 버릴 게 아니다.

지면이 제한돼 있기도 하지만 한약재에 문외한이라 유 대표가 설명한 조리법과 음식의 효능을 일일이 옮기기 역부족이다.

코스 끝에는 밥, 된장국, 15가지가량의 반찬으로 구성된 밥상이 차려졌다. 뿌리보다 사포닌이 많은 인삼꽃으로 만든 장아찌, 보라색 돼지감자 장아찌, 콩장, 밴댕이젓 등이 반찬이었다. 코스 요리에다 밥과 반찬이 더해지니 양이 적지 않았다.

식재료를 조달하는 텃밭에서 키운 와송 [사진/조보희 기자]
식재료를 조달하는 텃밭에서 키운 와송 [사진/조보희 기자]

하지만 음식에 담긴 자연의 축복과 사람의 정성을 생각하니 차마 남길 수 없어 마지막 국물과 양념까지 다 먹었다는 말로 상세한 음식 설명과 평가를 갈음할까 한다.

초향정 식자재 중에는 자연 암 치료제라고 하는 와송, 100가지 병을 다스린다는 백년초, 매실, 마, 대추, 배추, 구절초 등 유 대표가 직접 재배하거나 산과 들에서 채취한 자연산이 많다. 물론 계약 재배하거나 시장에서 사들이는 재료도 있다.

초향정에는 교육관이 있다. 된장, 고추장, 효소, 약선요리, 천연 조미료, 김치 등 발효 음식 교육과 체험을 하는 장소다.

유 대표에게는 꿈이 있다. 작은 찜질방을 짓는 것이다. 질병을 고치고 건강 하고자 하는 손님들이 약선음식을 먹고, 조리법을 배우며, 자연 속에서 회복과 치유까지 도모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초향정은 코스 요리 한 가지만 접대하며, 1인당 2만9천원이다. 음식을 미리 만들어놓고 파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약하지 않으면 헛걸음하게 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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