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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다섯 차례 빚어 천천히 숙성한 '느림의 술'

송고시간2020-10-23 07:30

평택 좋은술의 오양주 '천비향'

(평택=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전통주는 몇 차례 빚어 발효하느냐에 따라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오양주로 분류된다.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어 한 차례 발효시키면 단양주(單釀酒)다. 이 술에 쌀과 누룩을 더해 다시 발효시키는 것을 덧술이라고 한다. 덧술을 한 차례 하면 이양주, 두 차례 하면 삼양주, 네 차례 하면 오양주가 된다.

멥쌀 범벅에 누룩 가루를 더해 밑술을 만드는 과정 [사진/전수영 기자]

멥쌀 범벅에 누룩 가루를 더해 밑술을 만드는 과정 [사진/전수영 기자]

덧술을 여러 번 한 술이 고급으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술이 완성되기까지 시간과 정성도 더 많이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빚을수록 맛과 향기도 부드러워진다.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막걸리는 대개 한 차례 빚어 발효시킨 단양주다. 일주일이면 완성된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고급술이라고 해도 많아야 세 차례 빚는 삼양주가 대부분이다. 다섯 차례 빚는 오양주는 시중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만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다섯 차례 빚어 깊고 부드러운 맛

경기도 평택에 있는 좋은술은 오양주를 빚는 흔치 않은 양조장이다.

우선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한 쌀 범벅에 누룩을 넣어 이틀간 한 차례 발효시키면 밑술이 완성된다.

멥쌀 범벅에 누룩 가루를 더해 잘 치댄 뒤 한 차례 발효시키면 밑술이 완성된다. [우리술 제공]

멥쌀 범벅에 누룩 가루를 더해 잘 치댄 뒤 한 차례 발효시키면 밑술이 완성된다. [우리술 제공]

여기에 쌀 범벅과 누룩을 더해 다시 이틀간 발효시킨다. 이런 덧술 과정을 네 차례 거치는데 마지막 덧술 때에는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넣는다.

다섯 차례 빚을 뿐 아니라 쌀 범벅을 반죽할 때는 제외하고는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예령 좋은술 대표는 "누룩 속 미생물들이 고두밥과 만나면 쌀의 전분을 분해해 알코올을 생성한다"며 "덧술 과정은 누룩 속 미생물들이 잘 번식하도록 하는, 즉 미생물을 극대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밑술과 덧술을 총 다섯 차례 하는 데에만 6일가량 걸린다.

다섯 차례 빚은 술은 22∼25도에서 2주가량 발효시킨 뒤 15도 이하 저온에서 3개월 정도 숙성한다.

이렇게 숙성된 술을 술 자루에 넣고 꼭 짜서 지게미를 걸러내는 채주 과정을 거친 뒤 다시 15도 이하 저온에서 3개월 숙성시켜야 술이 완성된다. 다섯 번 빚어 발효와 숙성을 거쳐 완성되기까지 최소 6∼7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이 대표는 "여러 차례 덧술 과정을 통해 미생물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누룩은 적게 사용해도 된다"며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꺼리는 전통주의 누룩내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섯 차례 빚어 숙성시킨 탁주를 거르는 채주 과정 [사진/전수영 기자]

다섯 차례 빚어 숙성시킨 탁주를 거르는 채주 과정 [사진/전수영 기자]

완성된 술은 '천비향'이라는 브랜드로 시판되고 있다.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향기'라는 뜻이다.

'천비향' 브랜드에는 알코올 도수 14도의 탁주와 16도의 약주가 있다. 1년 숙성한 천비향 약주를 증류해 3∼4년 더 숙성시킨 증류주도 만들고 있다.

이 가운데 천비향 약주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는 우리술 품평회에서 2018년과 올해 두 차례나 약주 부문 대상을 받으면서 그 품질을 인정받았다.

오양주 외에 삼양주 방식으로 빚는 탁주인 '택이'(8도)와 '술 그리다'(10도), '술 예쁘다'(13도)도 만들고 있다. '술 예쁘다'는 홍국쌀로 빚어 붉은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와 가격을 낮춰 접근성을 높인 술들이다.

오양주 방식으로 빚은 술은 '천비향'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된다. [사진/전수영 기나]

오양주 방식으로 빚은 술은 '천비향'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된다. [사진/전수영 기나]

◇ 깊은 술맛 뒤에 숨은 코끝 찡한 사연

이 대표가 술을 빚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술 만들기에 뛰어들기 전에는 전업주부였다. 남편에 시부모, 시동생들까지 한집에 살며 대식구를 뒷바라지했는데, 시댁 식구들이 워낙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셔 아침에 못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술을 빚기 시작했다. 숙취 없는 좋은 술을 빚어 식구들이 마시면 몸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2012년부터 평택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양조를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사당동에 있던 가양주연구소에서 술을 가르치고 배웠던 6명이 의기투합해 이듬해 경기도 의왕에 양조장을 차렸다.

하지만 술을 잘 만드는 것과 만든 술을 파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주변에서 맛있다며 달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같이 시작했던 이들이 하나, 둘 그만뒀다. 마지막에 홀로 남은 이 대표는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에 사업체를 인수하고 2017년 평택으로 양조장을 옮겼다.

주변 사람들은 '전통주로는 돈을 벌기 힘들다'며 '미쳤다'고 했지만, 가족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다.

밑술과 덧술 과정을 마친 술이 통 안에서 발효되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밑술과 덧술 과정을 마친 술이 통 안에서 발효되고 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당시 은행에서 정년퇴직한 남편에게 퇴직금을 투자하면 평생직장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더니 선뜻 투자해 양조장을 지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양조장을 옮기고 나서도 1년간은 들어오는 돈이 거의 없었지요. 힘들었던 시기 양조장을 접지 않은 것은 아이들 덕분이에요. 대학에 다니던 딸들이 저를 위해 학교를 포기했거든요. 20년 넘게 식구 10명을 뒷바라지하며 엄마의 인생 없이 살아왔는데 여기서 엄마가 포기하면 안 된다며…"

학교를 그만둔 작은 딸은 양조장에 들어와 술을 빚으며 어머니의 뒤를 잇고 있다. 프로 골프 선수가 된 큰딸은 양조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어머니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대표가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간 것은 전통주를 이론화하고 계량화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전통주 만드는 방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새로운 술을 내놓기 위한 실험도 활발히 하고 있다.

지금 준비 중인 술은 무궁화 술이다. 무궁화 꽃잎을 넣어 술을 빚으면 은은한 향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밀이 아닌 쌀로 만든 누룩과 무궁화 꽃잎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을 만들겠다는 게 이 대표의 포부다.

직접 띄운 누룩. 말린 쑥과 무궁화잎으로 누룩을 덮어 향이 스며들도록 한다. [사진/전수영 기자]

직접 띄운 누룩. 말린 쑥과 무궁화잎으로 누룩을 덮어 향이 스며들도록 한다. [사진/전수영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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