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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끝자락에 찾아온 재기의 기회…페인트공으로 돌아간 좀도둑

송고시간2020-09-20 09:00

광주 동부경찰서, 50대 생계형 절도범에게 회복적 형사활동 전개

생계형 범죄 (위 이미지는 해당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생계형 범죄 (위 이미지는 해당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페인트공으로 30년을 살아온 김모(56)씨는 실직과 이혼을 연달아 겪으면서 일상이 무너져내렸다.

싸고 풀기를 거듭한 이삿짐은 월세방과 고시원 쪽방을 전전하는 동안 단출한 짐가방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중에 동전 몇 닢만 남아 몹시 배가 고팠던 어느 날 나이 든 절도범으로 전락했다.

김씨는 좀도둑질을 끊지 못했고 결국 감옥에 갇혔다.

출소한 김씨에겐 마중 나온 친지도, 돌아갈 집도 없었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했으나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김씨가 치러야 할 또 다른 죗값이었다.

싸늘한 눈초리를 견디지 못한 김씨는 또 실직자가 됐다.

잠에서 깨어나면 굶주림의 공포부터 밀려오는 나날이 반복했다.

거리를 터벅터벅 걷던 김씨의 퀭한 눈에 갖은 차림표가 내걸린 음식점이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식당에서 돈 한 푼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씨는 현금 20만원이 든 간이금고를 통째로 들고 도망쳤다.

노련한 강력팀 형사들에게 쇠약한 도둑을 추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200여 개의 CCTV 영상을 따라간 다리 위에서 형사들은 하염없이 강물을 내려다보는 김씨와 마주했다.

형사들을 맞닥뜨린 김씨는 품 안에 숨겨둔 플라스틱병을 꺼내 허겁지겁 들이켰다.

수상한 병을 손으로 쳐낸 형사가 역한 살충제 냄새를 맡고 119구급대를 불렀다.

'20만원을 훔친 대가로 왜 목숨을 버리려 했나.'

의구심이 든 형사들은 가족과 주변인을 탐문했다.

나락으로 떨어져 다시 일어설 기회를 잃었던 김씨에게 회복적 경찰활동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김씨의 주소지 동주민센터를 찾아간 형사들은 성실했던 페인트공이 생계형 절도범으로 전락한 과정을 설명했다.

동주민센터가 수소문에 나섰고, 한 건설업체가 김씨의 경력을 믿고 선뜻 일감을 맡겼다.

건강을 회복한 김씨는 굳은살이 채 빠지지 않은 손에 페인트 붓을 들었다.

재범을 저지른 전과자가 아닌 숙련공으로서 면모를 알아본 건설업체 대표는 김씨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퇴근 이후의 삶도 보살폈다.

이달 9일 첫 월급을 받은 김씨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러 형사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아들의 결혼자금이라도 아빠가 손수 마련해주고 싶었다며 복받치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20만원을 도둑맞았던 식당 주인은 처벌 대신 재기를 바란다며 경찰에 선처를 당부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공동체 통합 등에 중점을 둔 회복적 경찰활동을 올해 상반기 8건 전개했다.

김씨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이들 덕분에 사회의 일원으로 제 자리를 찾았으나 절도 행각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20일 광주 동부경찰서는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김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과 법원이 어떠한 처분을 내리든 김씨는 두 번째 삶을 안겨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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