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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고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인천 초등학생 형제의 비극

송고시간2020-09-18 11:35

엄마는 방임·학대…구청·학교는 인지하고도 강제성 없어 대응에 한계

경찰·법원, 엄마 처벌·상담·판결했지만 아이들 방치 못 막아

코로나시대 돌봄 시스템 맹점도 노출…보완 필요

모두 타 버린 주방
모두 타 버린 주방

[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4학년·2학년 형제는 점심때 배가 고파 라면 봉지를 꺼내 들었다.

평소 같으면 학교에서 급식을 기다릴 때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하는 날이라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남편 없이 형제를 키우는 엄마는 전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라면이 끓는 대신, 불길이 집 안에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119에 신고해 거친 기침과 함께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하던 형제는 화재 사고 나흘이 지나도록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병실에 누워 있다.

지난 14일 발생한 인천 '라면 형제 중화상' 사건은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돌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구청·아동보호전문기관·경찰·법원·학교 등 관계 기관은 모두 이들 형제가 엄마 A(30)씨로부터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참극을 막지 못했다.

◇ 돌봄 서비스 권고해도 거절…강제성 없는 맹점

이웃들은 A씨의 자녀인 B(10)군과 C(8)군이 방임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2018년 9월, 2019년 9월, 2020년 5월 등 3차례에 걸쳐 신고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왜소한 형제가 저녁때면 주먹밥이나 과자·우유를 사러 분식점과 편의점을 들락거리고 밤마다 자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상황을 심상치 않게 생각한 것이다.

학교 측도 B군 형제가 취학 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닌 경험이 전혀 없어 교우관계나 사회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인천시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담을 의뢰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신고 때마다 A씨와 상담을 하고 청소 등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 급식을 해결해주는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를 보내는 방안도 권고했지만, A씨는 자활 근로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제안을 거절했다.

구청 관계자는 "학교 긴급돌봄교실이나 지역아동센터 등 취약계층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무리 잘 운영돼도 본인이 싫다고 하면 관련 시설 이용을 강제할 수 있는 구속력이 없는 것은 맹점"이라고 토로했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
화마가 지나간 자리

(인천=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17일 오전 물청소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0.9.17 goodluck@yna.co.kr

◇ 엄마·아들 격리 보호 요청은 수용되지 않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3차례의 상담 끝에도 B군 형제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바뀌지 않자 결국 지난 5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법원에는 A씨와 B군 형제를 격리 보호하는 방식의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다.

미추홀경찰서는 A씨가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를 앓는 B군을 수차례 폭행하는 등 형제를 학대한 정황을 확인하고, A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인천가정법원은 격리 조치보다는 심리 상담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달 상담 위탁 보호 처분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A씨는 6개월간, B군 형제는 1년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면 접촉 상담 자제로 인해 첫 상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A씨와 B군 형제의 격리 요구 청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 여론과 관련, "아이들과 어머니를 분리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적절한 다른 처분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불행 재발 막으려면 돌봄 시스템 재정비 필요

인천 초등학교 형제의 불행이 다시 재발하지 않으려면 취약계층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 외에도, 현재의 돌봄 시스템이 실질적이면서도 강력하게 가동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만 놓고 봐도 학교·구청·경찰·법원 등 관계 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A씨의 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제각각 맡은 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B군 형제의 참극을 막지 못했다.

작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부모가구는 153만9천가구로 전년보다 6천가구(0.4%) 늘어났다.

자녀 연령이 18세 이하인 한 부모가구도 40만8천가구에 이르며, 출생신고 자격이 없는 미혼부, 이혼 조정 중인 한부모 등 통계 밖 한 부모까지 합치면 더 많을 수 있다.

아울러 지난 16일 기준으로 코로나19 비대면 원격수업을 하는 학교는 10개 시도 7천10개 학교에 달해, 세심한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가정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천 초등학생 형제와 같은 불행이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허종식(인천 동구미추홀갑) 의원은 "이번 사건은 코로나19 시대에 돌봄의 사각지대를 보여준 안타까운 사례"라며 "이번 4차 추경에 아동수당 지급과 아동양육 한시 지원사업에 1조원이 넘게 편성되는데,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순회 돌봄 서비스 도입 등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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