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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속 땀·소변 범벅된 아이 마지막 외침 "아, 숨이…"

송고시간2020-09-16 17:29

그래도 '엄마'라고 불렸는데…동거남 아들 잔혹 살해 "그저 분노만"

160㎏ 무게로 가방 짓누르고 호흡 곤란 아이에 뜨거운 드라이기 바람

재판부 "밝고 춤추기를 좋아했다는 피해자, 단지 어린아이였을 뿐"

9세 소년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40대 송치
9세 소년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40대 송치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동거남의 아들을 7시간 동안 여행용 가방에 가둬 결국 숨지게 한 40대 여성이 10일 오후 충남 천안동남경찰서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0.6.10 jung@yna.co.kr

(천안=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7시간 넘게 비좁은 여행용 가방 2개에 연달아 갇힌 9살짜리 아이는 '아, 숨이…'라는 울음 섞인 외침을 마지막으로 혼절했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아이한테서 '엄마'라고 불렸던 친부의 동거녀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가 무거운 법의 심판을 받았다.

16일 검찰과 재판부 설명을 종합하면 살인·상습아동학대·특수상해죄 피고인 A(41)씨는 지난 6월 1일 정오께 충남 천안시 자신의 주거지에서 동거남의 아들 B(9)군을 가로 50㎝·세로 71.5㎝·폭 29㎝ 크기 여행용 가방에 들어가게 한 뒤 지퍼를 잠갔다.

게임기 고장의 책임을 B군에 돌리며 "훈육한다"는 등의 이유에서 였다.

밀폐된 가방에 장시간 감금돼 음식도 먹지 못한 B군은 가방 안에서 용변을 봤다.

당시 집에 함께 있었던 A씨 친자녀들은 잠시 가방 밖으로 나온 B군의 모습을 "말할 때 힘이 없어 보였는데,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있었고 소변 범벅이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B군을 가방에 가둬둔 채 외출했다 돌아온 A씨는 용변을 보고 잔뜩 지쳐 처진 B군에게 다시 가로 44㎝·세로 60㎝·폭 24㎝의 더 작은 가방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이 더 작은 가방 속 B군 상황에 대해 검찰은 "마네킹으로 현장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보면 고개를 거의 90도로 숙이고 허벅지를 가슴에 붙은 자세를 취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70㎏대 몸무게의 A씨는 그런데도 가방 위 가운데에 올라가고서 자신의 친자녀들에게도 가방에 올라오도록 했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조차 어려운 자세로 있던 B군은 도합 160㎏가량까지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가방 속 아이의 몸무게는 23㎏에 불과했다.

"아동학대 살인인데, 좀 아쉽다"
"아동학대 살인인데, 좀 아쉽다"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16일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열린 '동거남 아들 여행용가방 감금살해 사건'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9.16 jung@yna.co.kr

A씨의 잔혹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방의 벌어진 틈을 테이프로 붙이거나, 가방 자체를 이 방 저 방으로 끌며 옮기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급기야는 가방 안으로 뜨거운 드라이기 바람을 30여초 불어 넣기도 했다.

A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1심을 맡은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채대원 부장판사)는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은 행위는 호흡 곤란으로 힘겨워하는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A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한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 친부와의 관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피해자를 지목했다"며 "피해자가 사건 당일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분노와 원망이 폭발해 일련의 가해행위를 했는데, 이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범행이 잔혹할 뿐만 아니라 아이에 대한 동정심조차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분노만 느껴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B군에 보내는 일종의 추모사 같은 말을 남겼다.

채대원 부장판사는 "피해자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것까지도 추궁당하면서 학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쉽게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피해자는 그러나 단지 어린아이였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유족, 학교 교사, 이웃 주민이 기억하는 피해자는 명랑하며 춤추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며 "마지막까지도 엄마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지만, 참혹한 결과를 맞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약 7시간 동안 가방 2개에 갇혀 정신을 잃기 전 검찰이 파악한 B군의 마지막 행동은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이윽고 "아, 숨!"이라고 외친 뒤 B군의 움직임은 잦아들었다.

가방 속에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절규한 이 아이는 아빠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살던 A씨를 죽기 직전까지도 '엄마'라고 여겼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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