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 지뢰 위험에도 수확 앞둔 논에 가야만 하는 철원 농민들
송고시간2020-09-05 09:00
지뢰 30발 이상 수거…탐색 중 작물 피해에 보상 기준 없어 막막
(철원=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저 멀리 빨간색 깃발 보이시죠? 저 자리에서 지뢰가 나왔다는 표시입니다. 지난달 폭우에 북한에서 물이 넘어와 이 일대가 완전히 잠겼는데 지뢰가 얼마나 떠밀려 왔을지 아무도 몰라요."
5일 오전 민통선 마을인 강원 철원군 동송읍 강산리에서 2만2천400여㎡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최종수(52)씨는 자신의 논에 꽂힌 깃발을 가리키며 하소연했다.
예년 같으면 황금빛 들판으로 변했어야 할 논은 누런 빛을 잃었다. 가까이서 살피니 알곡 대신 쭉정이가 많았다.
역대 최장을 기록한 장마에 벼가 물에 잠기고 한여름 뙤약볕을 마음껏 쬐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흘간 1천㎜ 넘게 쏟아진 폭우는 농민들에게 침수 피해보다 더 큰 위험을 떠안겼다.
DMZ, 접경지역 등에 묻혀있던 지뢰가 논 등으로 떠밀려 온 것이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초 집중호우에 발생한 유실 지뢰를 탐색한 결과 이날까지 철원군 내에서만 30여발을 찾았다.
이중 절반가량이 민통선 내 농경지에서 발견됐다.
아직 지뢰 탐색은 민가와 논둑 등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논 안쪽으로는 지뢰 탐색 작업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뢰를 찾기 위해서는 논에 물을 다 빼고 무른 땅을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뢰 탐색에 나선 장병들이 논 구석구석을 밟고 다니면 벼 상당수가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피해를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은 선뜻 지뢰 탐색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추수할 때가 다가왔다.
장마에 태풍까지, 비가 잦았기에 농민들은 지뢰 위험을 무릅쓰고 논에 들어가 병충해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
불안 속 작업을 이어가는 농민들은 지뢰 탐색으로 발생하는 작물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씨는 "접경지역에서 많은 규제를 겪으면서도 땅을 지키며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이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봤다"며 "지뢰는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인데 탐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농민이 오롯이 감당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농민 김모(61)씨도 "농민들도 일정 부분 피해액을 감당할 용의가 있다"며 "정부가 긴급조치를 통해서라도 빨리 지급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농민들에 주장에 철원군도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도 법이 없어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철원군 관계자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더라도 정확한 근거 안에서 지원금을 집행해야 한다"며 "유실 지뢰는 주민 안전에 큰 위험인 만큼 탐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강원내륙을 통과할 것으로 예보된 상황에서 지뢰 탐색 작업은 더 시급해졌다.
민통선 내 유실 지뢰가 큰비를 만난다면 철원지역 농업용수를 담고 있는 토교저수지는 물론 한탄강까지 흘러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농민은 "태풍에 지뢰가 더 멀리 떠내려간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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