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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톡톡] 빨간불의 정체 '누구냐 넌?'

송고시간2020-08-29 06:30

브리핑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브리핑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김주형 기자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얼마 전 동료 사진기자 SNS에서 흥미로운 글을 보았습니다.

동료 기자는 한 블로거의 글을 링크해두었는데, 기자회견 사진에서 종종 보이는 붉은 색 원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글에 남겨진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 '클릭 수를 높이려는 행동이다', '일장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동그라미는 특정 언론사만 사용하고 있다',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등 다양한 의견과 함께 동그라미의 의미를 유추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진기자는 이미 이와 비슷한 종류의 사진들을 찍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촬영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의도를 다르게 해석하는 독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 사진톡톡에서는 이 내용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신문이라는 매체 특성상 사진이나 기사는 한정된 지면 공간을 통해 뉴스를 전합니다. 이 때문에 보통 스트레이트 기사는 내용을 요약한 '리드'와 이를 뒷받침하는 '본문'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진도 지면 공간 제약으로 대형 사건·사고 또는 기획 기사를 제외하고는 보통 한장 정도가 기사에 사용됩니다. 여기서부터 사진기자들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해야 한장의 사진으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글 기사에 특정 문장 구조가 존재하고 글쓰기에 다양한 비유법이 있듯이 뉴스 사진에도 다양한 패턴과 표현 방법이 존재합니다. 망원렌즈와 광각렌즈의 특성을 강조한 촬영법도 있고, 피사계 심도를 조절해 피사체를 두드러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이트성 뉴스의 경우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 전달이 힘든 경우 사건을 함축하는 상징적인 요소를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들은 보통 이미지 컷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앞서 말한 스트레이트성 뉴스 사진이 직유법에 해당한다면 이미지 컷은 은유법이나 때로는 부분으로 전체를 설명하는 대유법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현장을 조작하거나 연출하지 않고 취재 현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촬영했다고 해서 그 사진이 꼭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피사체를 선택하고 배경을 정하고, 그 상황에 알맞은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 수치를 결정하는 것 모두가 사실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영역입니다. 취재 현장에서 촬영한 수십장, 수백장의 사진 중 한장을 선택하는 것 역시 주관적인 부분입니다. 한장의 사진으로 상황을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죠. 결국 한장의 사진이라는 것은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 것과 동시에 가장 뉴스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8.15 광화문 집회 이후 열린 긴급 중대본 회의 주재하는 정세균 총리
8.15 광화문 집회 이후 열린 긴급 중대본 회의 주재하는 정세균 총리

정세균 국무총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종찬 기자

발언하는 정세균 총리
발언하는 정세균 총리

한종찬 기자

위 사진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8.15 광화문 집회 다음 날인 16일 열린 중앙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는 정세균 총리의 모습입니다. 한장은 발언하는 정세균 총리의 모습만, 다른 한장은 방송 카메라 뒤에 달린 탤리 램프와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기자들이 붉은색 동그라미를 한 프레임에 배치하는 것은 보통 부정적 상황 또는 긴박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정지를 의미하는 '빨간색 신호등', 위기를 뜻하는 '적신호', 위험을 알리는 '적색경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회의 내용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그 분위기와 긴박함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죠. 문제는 사람들 각각의 경험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빨간색 동그라미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고 일장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 11년 차에 접어든 한 경제지 사진기자는 이런 종류의 사진에 대해 "시각적으로 시선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서 종종 촬영했지만 지면 제작에 반영되는 비율이 점차 떨어져 요즘은 잘 찍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스통신사에서 근무하는 다른 사진기자는 "글로 따지면 '청신호, 적신호'와 같은 관용적 표현이다.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특정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표현방식은 국내 사진기자만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외신에서도 종종 이와 같은 사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신들에서도 사용한 붉은색 동그라미
외신들에서도 사용한 붉은색 동그라미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 하는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왼쪽부터), 리빈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부주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AP,EPA]

그렇다면 실제 지면에 사진과 글 기사를 배치하는 편집기자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이른바 보수 매체로 분류되는 종합일간지에서 근무하는 한 편집기자는 지면에 배치할 사진을 결정할 때 '지면 성격과 기사들과의 연관성', '독자에게 전해주는 뉴스 메시지', '사진의 비주얼 포인트' 등을 먼저 고려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붉은색 동그라미는 오히려 시선을 분산시키고 합성처럼 느껴져 본인의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경제지 편집기자는 "정말 빨간불처럼 제동이 걸린 강한 느낌이 아닌 이상 사용을 안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종합일간지 중견 편집기자는 "예전에는 지면에서 종종 쓰기도 했지만, 보다 상황을 더 잘 표현해주는 컷이 있다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라며 사진 사용 흐름이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현장의 사진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이전보다 이런 종류의 사진을 촬영하는 빈도는 많이 줄었습니다. 한때는 이런 종류의 사진이 취재 현장에서 응당 찍는 필수코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뉴스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재생산되는 이런 이미지는 점차 사진기자들에게도 인기가 식어버렸죠.

사실 붉은색 동그라미만큼 사진기자들이 많이 애착을 가졌던 피사체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신호등, 교통표지 같은 것들이죠. 이런 상징을 이용한 메시지 전달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통용되고 있는 표현방식입니다. 청와대, 국회, 그리고 기업 건물과 신호등 이미지를 결부해 국정, 의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기업의 위기 상황 등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이 역시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빈도가 줄었습니다.

빨강 신호등과 청와대
빨강 신호등과 청와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교통표지와 국회
교통표지와 국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갈림길과 검찰
갈림길과 검찰

[연합뉴스 자료사진]

붉은색 신호등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붉은색 신호등과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뉴스와 역사를 기록하는 전국 500여 사진기자는 오늘도 '한장의 사진'에 대해 고민합니다. '진실에 가까운 모습,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있는 이 동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는 이전부터 끊임없이 반복된 질문입니다. 요즘은 그 고민이 더 늘었습니다. '누구나 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은 물론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 사진기자는 어떤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가?'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수많은 사진기자는 '사진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묵묵히 현장 속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2020.8.29

superdoo8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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