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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가을을 붙잡는 3가지 방법 ① 단양 새한서점

오지마을 헌책방에서 찾은 옛 친구들

(단양=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지난 여름 유난히 사람들을 괴롭혔던 길고도 끈질긴 장마, 잠깐 찾아온 가마솥 무더위도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가을 기운이 신선한 9월이다.

한여름 들떴던 가슴을 가라앉히고 나 자신으로 돌아올 때다. 마음에도 양식을 공급해야 할 때다.

번잡한 도심을 피해 오지마을의 헌책방에서 보석 같은 옛 친구들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오지마을의 헌책방 단양 새한서점 [사진/성연재 기자]
오지마을의 헌책방 단양 새한서점 [사진/성연재 기자]

◇ 오지마을의 헌책방

충북 단양의 새한서점은 언젠가 한 번 가봐야겠다 마음먹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뒤로 미뤄놓았던 곳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내로라하는 단양의 여행지들이 즐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의 문턱에 서니 갑자기 그곳이 가고 싶어졌다.

이름 없는 시골의 헌책방이던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의 새한서점은 영화에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의 아버지 집으로 나오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단양IC에서 나와 충주호를 끼고 달리다 보니 폭우가 만들어낸 운무가 장관을 이룬다.

오지마을에 자리한 서점은 길 찾기가 쉽지 않다. 10여 분 달리다 보면 현곡리 이정표가 나온다.

현곡리 마을에서 꼬불거리는 시골길을 조금 더 달리면 새한서점 입간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차를 세운 뒤 오른쪽 밑으로 난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가면 새한서점이다.

길 초입, 잘 익은 블루베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서점 가는 길은 몹시 꼬불거렸고, 때마침 전국에 내린 폭우로 완전히 진흙길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헌책방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청량한 계곡물을 바라볼 수 있는 헌책방 [사진/성연재 기자]
청량한 계곡물을 바라볼 수 있는 헌책방 [사진/성연재 기자]

끝 무렵에 길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로 좁아진다. 길 끝에서 시냇물 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왔다.

폭우가 내렸지만 시냇물은 넘치지 않았고, 상쾌한 소리를 들려줄 정도의 수량을 유지했다. 그 시냇물 건너, 파란 지붕의 나무로 된 건물이 서 있다.

물 위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면 바로 서점의 2층이다. 2층 문 앞의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그 밑으로 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에 앉아 맘에 드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행복일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간 서적을 파는 작은 테이블이 있고, 오른쪽 소파에는 한 여성이 앉아 책을 읽고 있다. 1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계산대가 있다.

창 바깥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시냇물을 건물 안으로 끌어왔다는 거다.

실내 바닥 돌 틈에 만들어진 웅덩이로 농수관을 통해 시냇물을 끌어와 '모히토' 음료수를 담가놓았다. 모히토는 쿠바 아바나에서 만들어진 칵테일 음료로 헤밍웨이가 즐겨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정치 깡패 안상구 역할을 한 이병헌이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마실까요?"라는 대사를 했다. 그 이후 몰디브를 간 사람들이나, 새한서점에 간 사람들은 유행처럼 모히토를 주문한다.

힘겹게 시골길을 걸어온 뒤 마시는 모히토 한 잔. 얼음은 없지만 시원한 계곡물이 만든 청량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폭우와 무더위도 잊었다.

쿰쿰한 책의 향기가 풍기는 새한서점 내부 [사진/성연재 기자]
쿰쿰한 책의 향기가 풍기는 새한서점 내부 [사진/성연재 기자]

◇ '인생 샷 말고 인생 책 고르시길…'

헌책방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휴대전화로 몇 장 찍는 정도만 허용된다.

책방 곳곳에는 '책은 사진 촬영을 위한 소품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인생 샷 말고 인생 책 고르시길…'이라는 말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모히토 한 잔을 마시고 난 뒤에서야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을 따라 지어진 건물 내부를 내려가면 헌책방 특유의 쿰쿰한 내음이 전해져온다. 바닥도 흙바닥이라, 조심해서 걸어야 먼지가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눈으로 책을 훑다가 이어 양손으로 헌책의 촉감을 느끼며 책장 사이를 걸었다. 그러다 문득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웹스터 영어사전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옛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반가움이었다.

오래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문판 잡지 [사진/성연재 기자]
오래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문판 잡지 [사진/성연재 기자]

'자네가 여기 이렇게 있었구먼… 오랫동안 찾아보지 못해 미안하네' 딱 이런 느낌이다. 사람이 교감하는 건 생물만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자동차가 중고차 매매상에 실려 갈 때의 느낌을 우리는 기억한다. 새한서점에서 만난 책들이 그랬다.

한켠엔 낡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영문판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감탄하며 탐독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열정을 갖고 살았는데…'

헌책은 그 시절의 '나'를 연거푸 소환했다.

서점 중앙의 오른쪽 복도 한쪽에 나무문이 있었다. 걸쇠를 빼니 쉽게 문이 열린다. 마치 비밀의 통로로 향하는 문을 연 느낌이다.

문이 열리니 계곡물 소리가 쏴∼하고 들려온다. 두 명 정도가 서 있을 수 있는 나무 발코니였는데, 이미 한 여성이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책에 몰입한 모습은 아름답다.

곳곳에 승준씨가 붙여놓은 메모들 [사진/성연재 기자]
곳곳에 승준씨가 붙여놓은 메모들 [사진/성연재 기자]

서점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많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전' 같은 책도 보였고, 얼마 전에 작고한 김종철 교수가 발행인으로 있었던 녹색평론 같은 잡지도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토록 다양한 종류의 책들에 놀랐는데 새한서점의 연혁을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인 이금석 씨는 1978년 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인근에 지금과 같은 새한서점이라는 상호로 문을 연 이후 답십리 등을 거쳐 안암동 고려대 앞에서 20년 넘게 헌책방을 운영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지금도 사회과학 서적과 이공계 관련 헌책이 많이 눈에 띈다.

198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헌책방은 1990년대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때 온라인 판매에 눈을 뜨게 됐다.

시골에서도 택배로 물건을 판매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2002년 단양으로 옮겨왔다. 처음에는 폐교된 적성초등학교에서 7년간 문을 열었다. 이후 폐교가 매각되자 지금의 자리를 어렵게 구했다.

손으로 모든 건물을 지었다. 나무 널빤지로 된 건물은 900㎡ 가까이 늘어났고, 모두 670종 13만 권이 진열돼 있다.

새한서점 기념품들 [사진/성연재 기자]
새한서점 기념품들 [사진/성연재 기자]

◇ 헌책방에서 로컬 문화의 메카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아들 승준씨 손에 의해서다. 스포츠 마케팅 쪽 일을 하던 승준씨는 헌책 판매에만 의존해서는 서점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 몇 년 전 귀촌해 새한서점이라는 이름을 브랜드화하고 다양한 문화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산더미처럼 쌓여만 있던 책을 정리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동시에 단양 읍내에 2호점을 냈다.

이곳에 '새한서점 샵단양노트'라는 이름을 붙인 뒤 시인과 소설가 등 작가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미술 작가들의 힘을 빌려 새한서점 뿐만 아니라 단양의 명소를 나타내는 기념품도 만들어 판매한다.

승준씨는 자신의 활동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설명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의 문화나 고유한 특성을 콘텐츠화해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로컬푸드를 만들거나 지역 특색을 반영한 제조업을 하거나 스마트관광 등을 추진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는 최근 창업진흥원에서 뽑는 전국의 144명의 로컬 크리에이터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단양에서는 그가 유일하다.

로컬 크리에이터로서의 포부를 말하는 승준씨 [사진/성연재 기자]
로컬 크리에이터로서의 포부를 말하는 승준씨 [사진/성연재 기자]

그는 그 지원금으로 단양을 표현할 수 있는 기념품 등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새한서점에만 그치지 않고 단양의 모든 자원을 브랜드화하겠다는 것이다.

새한서점 샵단양노트는 단양전통시장 바로 앞에 있다. 나오는 길에 시장 바로 앞 유명 만둣집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마늘 만두를 파는 곳으로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곳이다.

마음의 양식을 채울 헌책방에도 많은 사람이 줄을 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9/10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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