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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밀양강 푸른 물길 따라 걷는, 500년 된 금시당길

조선 선비들이 학문을 닦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걷던 길

(밀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밀양은 자연이 아름답고 문화가 풍요롭다. 푸른 물결 굽이치는 밀양강변의 500년 된 선비길은 시민의 더없는 휴식처다.

밀양 영남루 [사진/전수영 기자]
밀양 영남루 [사진/전수영 기자]

◇ 조선 시대 3대 누각, 영남루

밀양은 낙동강 동쪽의 오래된 도시다. 동북쪽에 높은 산이 첩첩이 이어져 있고, 서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경지 면적이 경상남도에서 가장 넓다. 땅은 기름지고 풍광이 수려하다.

조선 시대부터 향교와 서원이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임진왜란의 영웅 사명대사가 태어난 곳이며,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원봉이 '의열단'을 조직했던 곳이다.

경상도 대표 민요 '밀양아리랑'의 무대인 문화 도시이기도 하다. 1950년 발족한 밀양문화회관은 국내 문화원의 효시로,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1974년 개관한 밀양시립박물관은 시·군립박물관 중 제일 먼저 생긴 1세대 박물관 중 하나다. 밀양이 지역 문화를 선도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밀양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밀양영남루일 것이다. 아동산 절벽 위에서 도도한 밀양강을 굽어보는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밀양에는 '뚜벅이'들에게 인기 있는, 경관이 아름다운 길 4개가 있다. '금시당'(今是堂) 길은 '밀양아리랑길' 3개 코스 중 제2코스에 해당한다.

금시당은 조선 시대 문인 이광진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1566년에 지은 건물이다. 건물 이름은 선생의 호를 땄다.

금시당 길은 조선 선비들이 학문을 닦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다니던 길이었다. 5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선비길이다.

금시당으로 가는 밀양강변길 [사진/전수영 기자]
금시당으로 가는 밀양강변길 [사진/전수영 기자]

금시당길은 밀양철교에서 시작해 용두목→금시당 수변길→금시당→월연정→추화산성으로 이어진다. 거리는 편도로 약 5.6㎞이며, 보통 사람 걸음으로 3시간가량 걸린다.

우리는 밀양의 최고 명승지 영남루를 놓칠 수 없어 영남루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영남루를 둘러보고 금시당길 출발점인 밀양철교까지 가는 데 1시간가량 걸린 것 같다.

보물 147호인 영남루는 한양과 부산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와 밀양강 수로가 만나는 교통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

영남루 주변에는 무봉사석조여래좌상, 천진궁, 아랑각, 밀양읍성, 박시춘 옛집, 밀양아리랑 노래비, 석화 등 다양한 문화 유적지와 볼거리가 있었다.

한국 가요 1세대인 박시춘(1913∼1996) 선생은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 대중의 사랑을 받은 가요 3천여 곡을 작곡해 '한국 가요의 뿌리이자 기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석화는 영남루 주변 암반에 꽃송이 모양으로 나타나는 돌 무리를 일컫는다. 돌과 바위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국화, 장미, 모란 등의 꽃송이처럼 보인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지금은 흙에 묻혀 잘 보이지 않으나 영남루 좌대가 이런 돌꽃으로 만들어진 '꽃방석'이라고 한다.

영남루 앞 밀양교를 건너 밀양강 둔치의 공원 쪽으로 걸었다. 강변 위쪽에는 1901년 공립학교가 된 밀양초등학교가 있다. 120년 가까이 된 학교다.

병설 유치원까지 갖춘 큰 학교인 데다 인구가 많은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어 앞으로도 긴 역사를 이어갈 것 같다.

8월의 지루했던 장마에도 둔치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아 강변은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잔디와 풀이 봄의 신록처럼 파랗고 싱싱했다.

이순공 밀양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밀양강 옆 수변 공원길을 산책하는 시민은 많은 경우 하루 3만여 명을 헤아린다"고 말했다.

수변공원 주변은 아파트 밀집 지역이어서 산책 인구가 적지 않을 것 같았다. 밀양 인구가 10만여 명이니, 시민들의 밀양강 사랑이 대단하다.

삼문송림 [사진/전수영 기자]
삼문송림 [사진/전수영 기자]

둔치에는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삼문송림이 있었다. 약 2㏊에 이르는 면적에 수령이 100년 넘을 듯한 굵은 곰솔 650여 그루가 울창했다. 솔향이 짙고 그윽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곰솔 밑동에 큰 흉터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전쟁 물자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했던 자국이라고 한다.

조금 더 가니 암각화 조각공원이 나온다. 1991년에 착공돼 10년 만에 완공된 밀양댐 건설 때 밀양시 단장면 수몰 지구에서 가져온 자연석에 새긴 조각 작품 약 30개가 전시돼 있었다.

선사 시대 생활과 문화를 표현한 암각화들은 단순하면서 역동적인 추상화의 느낌을 줬다.

◇ 조선 선비들이 걷던 금시당길

용두교를 건너 마침내 금시당길 출발점인 경부선 밀양강 철도교에 다다랐다. 이 철교는 경부선에서 한강 철교 다음으로 길다.

상하행선 철교 중간에 새 철교가 건설되고 있었다. 지은 지 100년 이상 된 노후한 철교를 기차가 지날 때마다 심한 소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1904년에 건설된 하행선 철교의 교각은 아름다운 황톳빛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교각 건설에 밀양읍성의 성돌이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읍성 성벽을 허물고 그 돌을 가져와 교각을 지었다는 것이다.

새 철교가 완공되면 이 교각들이 어떤 방식으로 보존될지 관심거리다.

경부선 밀양강 철도교 [사진/전수영 기자]
경부선 밀양강 철도교 [사진/전수영 기자]

이제부터 밀양강변을 따라 걸으면 금시당에 이르게 된다. 중간에 위치한 용두목은 불과 10∼20년까지만 해도 밀양의 으뜸 유원지였다. 신혼부부나 연인들이 즐겨 찾던 뱃놀이 터였다.

당시에는 낙동강 하구에서 회귀한 은어로 만든 요리가 큰 인기를 끌었으나 요즘은 은어가 사라지다시피 해 유원지도 명맥만 남았다. 하구에 둑이 들어서고 댐이 많아지면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은어의 물길이 막혔다.

금시당으로 가는 수변 길은 강보다 훨씬 높은 지대에 나 있었다. 왼쪽 낭떠러지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밀양강은 장마로 물이 무척 불어나 있었다.

물길은 도도하고 숲은 짙었다. 나무가 울창한 수변길이 도심 가까이 있으니 시민의 쉼터로 각광받고도 남을 것 같았다.

마침내 금시당이다. 이광진 선생은 명종 때 좌승지를 지낸 학자다. 선생의 별서였던 금시당은 동쪽에 호두산, 서쪽에 용두산을 끼고 있다.

앞에는 밀양강이 휘감아 돌며 만든 용호가 있다. 금시당에는 1800년께 백곡서원이 창건됐으나 흥선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 경내에는 선생이 직접 심은,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가 밀양강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또 영조 때 재야의 선비로 명망이 높았던 백곡 이지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백곡재가 있다. 금시당과 백곡재는 영남지방 선비 가문의 전형적인 정자 건물이다. 주변 자연과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금시당은 선생의 후손이 거주하며 관리 중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주인이 외출 중이어서 내부를 둘러보지 못했다.

금시당을 지나면 밀양시국궁장이 나온다. 규모가 커서 전국 대회가 자주 열릴 것 같았다.

국궁장 옆 활성교를 지나 월연정으로 향했다. 활성교 아래 밀양강변에는 금시당 유원지가 있다. 장마 중에도 꽤 많은 야영객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금시당 [사진/전수영 기자]
금시당 [사진/전수영 기자]

◇ 월연정(月淵亭)과 추화산성

월연정은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 선생이 1520년에 지은 정사(亭舍)다. '월연'은 달빛이 고요히 내려앉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월연정은 쌍경당, 월연대 등 주 건물과 쌍청교, 영월간, 수조대, 탁족암 등의 유적으로 구성돼 있으며 백송, 오죽 등 희귀 나무와 수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두물머리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 경관 또한 수려해 밀양 8경으로 꼽힌다. 월연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폭 1m 내외의 흙길로, 길 오른쪽에는 검푸른 강이 넘실거렸다.

조선 시대 정자가 대부분 단독으로 지어진 데 비해 월연정은 담양 소쇄원처럼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다. 각 건물은 자연 지형과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살리려 했던 조선 사대부의 자연관을 보여준다.

호남의 대표 원림이 소쇄원이라면 월연정은 영남의 대표 원림이다.

월연정 옆에는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때부터 사용됐던 월연터널이 있다. 1940년 경부선 복선화로 선로가 이설되면서 현재는 일반 도로용 터널로 사용되고 있다. 인근 풍광이 빼어나 산책로로 인기가 높으며 영화 '똥개'가 촬영됐던 무대다.

월연정 둘레길은 추화산성으로 이어진다. 오르막이 좀 가팔랐다. 비 온 뒤 땅이 미끄러워 오르는 길이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성은 추화산(해발 240m) 정상 주변을 빙 둘러싼 테뫼식 성곽이다. 테뫼성은 산 정상을 둘러싼 성을 말한다.

산성은 신라와 가야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시대에 만들어져 조선 전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1.4㎞ 가운데 서남쪽 300m가량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산성 이름은 밀양의 옛 이름이 '추화군'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추화산성 [사진/전수영 기자]
추화산성 [사진/전수영 기자]

금시당 길은 추화산성에서 끝난다. 우리는 추화산성에서 시작점인 밀양철교로 되돌아가지 않고 추화산성 봉수대를 거쳐 밀양아리랑대공원으로 내려와 영남루로 회귀했다.

추화산 정상에는 옛 봉수대가 복원돼 있었다. 추화산 봉수대는 김해 성화예산에서 봉기한 봉수를 분산→자암산→밀양 백산→밀양 남산을 거쳐 받아, 분항산→경북 청도 남산으로 전달했다.

이순공 해설사는 옛날 부산 앞바다에 왜구가 출몰하면 봉수대를 통해 이를 한양에 알리는 데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밀양아리랑대공원은 시립박물관, 밀양시 독립기념관, 충혼탑, 밀양아리랑아트센터, 아리랑동산숲 등이 들어서 있는 큰 공원이다.

올해 상반기 이 공원 안에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와 국립밀양기상과학관이 완공돼 개관했다.

봉수대에서 대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밀양아리랑길의 제2코스인 추화산성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금시당길과 추화산성길을 걸으면 밀양의 많은 명승지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9/10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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