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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파도같은 강물에 몸만 피해"…기름범벅 빗물로 복구하는 상인들

송고시간2020-08-09 14:21

구례 5일장 상인들, 장날 장사 준비하다 물벼락

물 빠진 삶의 터전은 기름 섞인 빗물에 젖은 아수라장

숟가락, 젓가락도 흙탕물에
숟가락, 젓가락도 흙탕물에

(구례=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 상인들이 침수 피해를 당한 상점을 정리하고 있다. 2020.8.9 pch80@yna.co.kr

(곡성=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휴가철 손님이 늘어나 잔뜩 기대하고 장사 준비하는데, 저쪽 끝에서 파도처럼 강물이 밀려 들어오는 거야. 살기 위해 금붙이만 얼른 챙겨 줄행랑쳤지. 어쩔 수 있나."

9일 오전 전날 폭우에 이은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 제방 붕괴로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 오일장 상인들은 자신의 키보다 훌쩍 높이 찬 침수 높이를 손을 뻗어 알려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오일장 한쪽에서 30여년간 식당을 운영하는 박봉자(69·여) 씨는 지난 8일 장이 서는 날을 맞아 오전 6시부터 장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장날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을 무렵 저 멀리 시장 골목 끝에서 물이 무섭게 밀려오는 걸 목격했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몸만 챙겨 피신한 박씨는 가게가 물에 잠겨도 발만 동동 구르고 가보지 못하다 물이 빠진 오늘 아침에야 나와봤다.

다시 찾은 삶의 터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가게 안으로 물이 가득 차면서 무거운 업소용 냉장고도 둥둥 떠다니다 물이 빠지자 내동댕이쳐졌고, 음식 재료는 물론 숟가락 하나도 흙탕물이 범벅이 돼 성한 것이 없었다.

박씨는 가게 집기를 하나둘씩 빼내다 정리만으로 안 되겠다는 듯 가게 유리문을 부수고 가게시설을 모조리 뜯어내기 시작했다.

흘러든 강물 타고 온 물고기
흘러든 강물 타고 온 물고기

(구례=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전날 내린 폭우와 제방 유실로 수해를 당한 오일장 내부로 흘러온 물고기가 유출된 기름에 범벅이 된 채 죽어 있다. 2020.8.9 pch80@yna.co.kr

전날 서시천 제방이 무너지면서 수해를 당한 오일장은 주변 주유소와 숙박시설 등에서 기름까지 유출되면서 기름 냄새와 악취가 진동했다.

구례읍 시가지와 시장을 온종일 채운 강물은 전날 저녁 10시께에야 빠졌지만, 수해가 휩쓸고 간 곳에는 모조리 흙탕물과 기름이 뒤덮인 폐허로 변했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하루빨리 수해의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집과 상점의 가재도구와 상품을 모두 빼냈지만, 수도마저 끊기면서 씻을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상인들은 침수된 지하에서 양동이로 퍼낸 물로 씻어내거나, 경운기를 친척에게 빌려와 물을 퍼내며 기름 물로 집기를 씻어 냈다.

한 상인은 "기름 물이라 씻어도 냄새를 지울 수 없다"며 "물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고 흙이라도 털어보려고 씻고 있지만, 헛수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에 연일 폭우가 내리면서 몇차례 장사를 허탕 친 상인들을 휴가철을 맞아 구례의 계곡을 찾은 피서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보려고 물품을 잔뜩 준비한 터라 속상한 마음이 더 컸다.

빗물 퍼내 수해 복구
빗물 퍼내 수해 복구

(구례=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수해를 당한 오일장 상인들이 수도마저 끊겨 빗물을 퍼내 집기를 씻고 있다. 2020.8.9 pch80@yna.co.kr

한 과일 상점 상인은 기름이 묻은 복숭아와 수박 등을 쓰레기 더미에 내던지며 "내가 못 먹는 걸 어찌 다시 씻어 팔겠느냐"고 말했다.

구례군 피해가 심각한데도 이 지역에 주둔한 육군은 이번에는 수해 복구 지원을 할 수 없게 됐다.

주둔지가 침수되는 피해를 함께 겪어 군 시설을 복구하는데도 버거운 탓이다.

구례의 농경지와 비닐하우스도 쑥대밭으로 변했다.

서시천 제방이 붕괴한 현장 바로 옆 논밭에는 밀려든 강물에 원래 모습을 가늠하기도 어렵게 변한 비닐하우스 뼈대만 어지럽게 얽혀 있었고, 물에 휩쓸린 컨테이너가 비닐하우스에 올라가 있었다.

서시천 제방은 끊긴 채 복구는 손을 못 대고 있었고, 제방 붕괴와 함께 유실된 도로변 복구 작업만 겨우 진행되고 있었다.

곡성읍으로 이어지는 일부 국도는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아 곳곳이 통제 중이었다.

주변 축사의 소들도 물에 떠다니다 축사 지붕 위로 피신했다가 물이 빠지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무너진 제방
무너진 제방

(구례=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의 제방이 전날 내린 폭우에 무너져 있다. 2020.8.9 pch80@yna.co.kr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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