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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 쓴다는 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

송고시간2020-08-04 06:45

신작 소설집 '누가 봐도 연애소설' 출간…더 모자란 이들을 사랑하는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세상 모든 소설은 다 연애소설이라고 하던데, 나에게 그건 '연애'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 말이라기보단 '소설'을 쓰는 마음에 대한 가르침으로 들린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이 절반이니까."

신작 소설집 '누가 봐도 연애소설'(위즈덤 하우스)을 펴낸 중견 작가 이기호의 말이다.

그에게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호승심이나 복수심, 현학적 허세를 충족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고 한다. 그래야만 "망해버리지" 않고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또 매일 그런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아끼는 마음이 들게 된다"고 이기호는 말한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 제목처럼 연애 소설이고 순수 소설인데, 사실 이기호의 경력에서 처음 써내는 연애소설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로맨틱하거나 극적이거나 달콤하거나 가슴 아린 사랑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신 뭔가 모자란, 결핍의 인물들이 자신보다 더 모자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다.

이기호 "소설 쓴다는 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 - 1

단편 '뭘 잘 모르는 남자'에서 주인공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다. 그런데 스스로 몸을 아래로 던져 죽으려는 순간에도 남들을 걱정하고 아끼는 역설적 장면을 연출한다.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핀 주인공은 일단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힐까 봐 투신 지점을 조금 바꾼다. 그런데 그 아래엔 고시원 같은 층에 살면서 배송 일을 하는 남자의 차가 있다. 차를 망가뜨릴까 봐 그는 다시 선택지를 바꾼다.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어서 늘 새벽 1시 반에 출근하는 남자. 그 남자는 새벽 배송을 마치면 다시 편의점 알바를 뛴다고 했다. 몇 번 고시원 공용 식당에서 그 남자가 건네는 오징어 젓갈 반찬을 얻어먹은 적도 있다. 남한테 폐를 끼치면 안 되지. 이런 건 보험 처리도 안 될 텐데…. 그는 다시 몇 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매일 먹는 편의점 직원에게 직접 만든 김밥을 가져다주는 김밥집 청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대학 동기에게 큰마음 먹고 돼지갈비를 사주고는 혹시 지원금으로 결제가 안 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남자, 이혼하고 고향에 내려온 첫사랑을 도와주는 시골 노총각.

짧은 소설 30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고, 때로는 삶이 힘들고 초라하지만, 그래서 더 타인에게 사랑을 베푼다. "비루한 삶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이기호는 외치는 듯하다.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체를 인정받아온 이기호는 글 자체로 인정받는 영원한 글쟁이를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필명을 날리기보다는 자식과 같은 작품들이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길 그는 기대한다.

"5년째 한 달에 두세 편씩 꼬박꼬박 짧은 소설을 쓰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매번 무슨 백일장을 치르는 느낌이다. 백일장은 쓴 사람 이름을 가린 채 오직 글로만 평가를 받는 법. 그 마음으로 계속 근육을 단련하고 있다. 이름은 지워지고 이야기만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1972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이기호는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장편 '사과는 잘해요',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기호 작가
이기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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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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