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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가을을 붙잡는 3가지 방법 ③ 노천을 가르는 선율

야외무대가 펼쳐지는 안동의 가을

(안동=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감염병이 몰고 온 혼란 속에서도 자연과 계절은 어김이 없었다. 봄,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다. 멋진 음악과 공연이 펼쳐지는 야외무대에서 가을에 젖어 보자.

퓨전 국악 '몽(夢)매(賣)난(難)망(忘)' 공연 [사진/조보희 기자]
퓨전 국악 '몽(夢)매(賣)난(難)망(忘)' 공연 [사진/조보희 기자]

◇ 가을에 어울리는 무대…야외 음악과 공연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소리꾼이 '원이 어머니 편지' 한 구절을 읽는다. 가야금과 대금이 슬픈 배경 음악인 '시린 가을'을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면 소리꾼이 '꿈에서 만나다'라는 퓨전 국악 곡을 부른다. 판소리 아니리가 이어진다. 아니리는 판소리 사설의 일종이다.

가을을 바라보는 어느 토요일 아침나절, 안동문화예술의 전당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퓨전 국악 '몽(夢)매(賣)난(難)망(忘)'의 한 장면이다.

원이 어머니 편지는 조선 중기인 1500년대 쓰인 한글 편지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1998년 안동에서 발굴됐다.

'몽(夢)매(賣)난(難)망(忘)'은 지역 음악인들로 구성된 예악국악단이 이 편지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나무 밑 그늘에 옹기종기 앉아 연주에 빠져든 관객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편안한 옷차림의 관객들은 대개 인근 주민들로 보였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30대 여성, 대여섯 살로 보이는 어린이,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도 눈에 띄었다.

공연이 무르익어가면서 관객이 하나둘 더 늘어났다. 연주에 동참하기라도 한 듯 매미와 참새도 제법 큰 소리로 울어댔다. 문화의 향기가 느껴지는 편안하고 차분한 주말 아침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어느덧 가을은 무르익고 있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볼 계절이다.

올해 가을은 역병과 싸우는 고단하고 지루한 나날을 이기기 위해 음악과 공연의 활력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바이러스 전파력을 한풀 더 꺾을 수 있는 야외라면 더 힘이 될 것이다.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사진/조보희 기자]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사진/조보희 기자]

파란 하늘 드높은 가을이 깊어지면서 대기의 청량한 기운에 의지해 곳곳에서 소규모의 야외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안동문화예술의 전당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은 이번 가을 매주 토요일 야외 공연을 열 계획이다. 다만 코로나19 관련 상황에 따라 공연 일정에 변동이 생길 수는 있다. 대중음악, 클래식, 풍물, 크로스오버 등 장르가 다양하다. 출연진은 모두 공모를 통해 선정된 지역 음악 단체들이다.

시민에게는 문화 향유의 기회를, 지역 음악인에게는 재능을 펼치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작은 물이 방울방울 모여 큰 바다가 되듯, 하나하나의 문화 활동이 쌓여 지역 문화를 이룰 것이다.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9월에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하는 '여민동락', 뮤지컬 앙코르 공연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수준 높은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10월에는 국립합창단과 안동시립합창단의 합동 공연이 예정돼 있다.

연말에는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이 공연되는데 안동 어린이합창단이 전막 공연을 펼친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사진/조보희 기자]
하회별신굿탈놀이 [사진/조보희 기자]

◇ 세상을 보는 특별한 시선…하회별신굿탈놀이

전통과 문화의 도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는 안동에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 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인 하회마을에서 펼쳐지는 하회별신굿탈놀이다. 공연장은 천막 지붕이 씌워져 있어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다.

지난달초 어느날. 가족, 연인 사이로 보이는 관객들이 공연장을 채운 가운데 각시탈을 쓴 광대가 풍물패의 흥겨운 연주 속에 무동을 타고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관객들의 눈길이 일제히 각시탈로 향했다. 요란한 꽹과리, 징, 북 소리에 아이들마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어 암수 한 쌍의 주지가 삼베 포대기를 덮어쓰고 등장해 마주 보며 춤을 추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 주지는 이무기를 말한다. '주지 마당'은 탈놀이가 벌어지는 탈 판을 정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백정이 양반의 위선을 비판하는 '백정 마당', 평생을 궁핍하게 산 할멈이 신세타령을 하는 '할미 마당', 고려 시대 말 불교의 타락을 고발하는 '파계승 마당', 양반과 선비가 기생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양반·선비 마당'이 차례로 펼쳐졌다.

전주에서 왔다는 여성 관객이 걸립(구걸)하는 백정에게 5만원짜리 지폐를 건넸다. 출연자와 관객 사이에 상호작용과 교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안동은 선비 정신이 강한 고장이지만 전주가 안동보다 더 품위 있는 양반 마을이라고 백정은 전주를 치켜세웠다.

출연자와 관객의 호응은 공연 중간중간에 적지 않게 일어났다. 백정이 소를 잡으려 하자, 관객은 소를 향해 "달아나, 도망가"라고 외쳤고, 흥겨운 풍물놀이패 연주에 아이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손뼉을 쳤다.

공연을 지루해할 수 있는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흥겨운 국악이나 전통 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회탈놀이는 신나고 재미있다. 특히 놀이의 핵심 도구인 하회탈은 민속놀이 도구에서 보기 드문 높은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탈을 보면 그 표정이 생생히 살아있고 풍부함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회탈은 12세기쯤에 14개가 나무로 제작돼 11개가 지금까지 보존돼 있다. 하회마을 선조들은 별도의 집(洞舍)을 지어 800여 년 동안 탈을 보존해왔다. 하회탈의 탁월한 예술성을 알아본 결과이리라.

그러나 하회탈놀이의 특별함은 무엇보다 이 놀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시대·사회 의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인, 백정, 여성 등 피지배 혹은 억압받는 계층은 양반, 선비, 스님 등 지배 계층의 타락과 신분 질서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의 전통 예술 작품 중 사회 모순과 갈등을 이처럼 선명하게 지적한 작품이 또 있을까. 이 땅의 선인들은 억압의 굴레를 끊지 못했을망정 그 부당함을 간과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줄불놀이 [사진/조보희 기자]
줄불놀이 [사진/조보희 기자]

하회탈놀이는 신분질서의 모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하회마을의 양반들은 5년, 10년에 한 번씩 하던 이 마을 축제의 비용을 부담했다. 그렇게 해서 탈놀이는 신분 갈등을 드러내는 동시에 풀어내는 기능을 했다.

하회마을 놀이문화에는 탈놀이와 쌍벽을 이루는 선유줄불놀이가 있다. 이는 낙동강변 기암절벽인 부용대에서 선비들이 음력 7월에 했던 뱃놀이, 줄불놀이, 계란불놀이를 일컫는다.

부용대 꼭대기와 강변 소나무밭인 만송정을 동아줄로 연결하고 동아줄에 수백 개의 숯 봉지를 매달아 불을 붙였다. 숯 봉지가 차례로 타들어 가면서 밤하늘을 은은하게 밝히는데 이를 '줄불'이라고 했다.

경상북도는 올해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지정 10주년을 기념해 '2020 세계유산축전'을 안동, 경주, 영주에서 8월 한 달 동안 열었다. 개막일이었던 7월 31일에는 빗방울이 흩날리는 속에 줄불놀이가 열렸다.

하회탈놀이 공연은 코로나19 사태가 악화하지 않으면 하회마을 내 전용 공연장에서 올해 가을 내내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열릴 예정이었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면서 지금은 아쉽게도 공연이 잠정 중단됐다.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공연을 재개할 계획이다.

하회탈놀이가 벌어진 해에는 줄불놀이도 열렸다. 상민과 노비들이 줄불 동아줄 설치 작업을 떠맡는 등 양반들의 놀이를 위해 노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회마을에서는 계층 갈등 속 융화라는 통찰과 지혜의 전통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하회마을 놀이에는 세상을 보는 혜안이 녹아 있다.

◇ 낙동강이 굽이쳐 휘돌아가는 아름다운 고장, 안동

학문과 예의를 숭상해 유교 문화의 맥을 잇고, 민속문화의 보고이기도 한 안동의 아름다움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99), 고(故) 노무현 대통령(2007),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2008),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2009),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2016), 문재인 대통령(2017) 등 국가 수장급 인사들이 다녀갔다.

안동이 간직한 문화재는 국가 지정 문화재 99개, 도 지정 문화재 229개 등 328개에 이른다. 이중 하회탈,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 등 5점은 국보다.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유교책판, 봉정사 등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연합이매진'은 지난해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을 소개한 바 있다.

봉정사 만세루 [사진/조보희 기자]
봉정사 만세루 [사진/조보희 기자]

이번에는 봉정사, 지난해 12월 새로 보물로 지정된 체화정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보석'을 찾았다.

천등산 봉정사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가는 길이 험하지도 않아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고 싶을 때 훌쩍 방문하기 좋다.

2018년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7개 사찰 중 하나다. 유네스코는 1천300년 이상 한국 고유의 불교 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온 종합 승원이라는 점을 높이 사, 이 사찰들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렸다.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봉정사에는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나랏말싸미'의 촬영지로 유명한 영산암이 있다.

한국의 10대 정원으로 선정된 영산암에는 자그마한 건물 6채가 'ㅁ'자 모양으로 배치돼 있었다.

낡고 삐걱거리는 나무 건물들이 작은 뜰의 소나무, 바위와 어우러져 소박하고 은은한 한국적 미학을 드러냈다. 영산암의 작은 정원에서 고요하고 편안한 암자의 일상을 느낄 수 있었다.

체화정 [사진/조보희 기자]
체화정 [사진/조보희 기자]

체화정은 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조선 시대 정자다. 진사 이민적이 영조 때(1761년) 지어 학문을 닦던 곳이다. 형 이민정과 함께 살면서 우의를 다진 장소이기도 하다. '체화'란 형제간 화목을 뜻한다.

산을 등진 정자 앞의 인공 연못이 멋스러웠다. 연못 안에는 방장산, 봉래산, 영주산을 상징하는 작은 섬이 조성돼 있다.

바로 앞으로 주도로가 지나가고 풍산시장이 가까이 있는데 전혀 번잡스럽지 않고 고즈넉했다. 붉은 배롱나무꽃이 체화정의 예스러운 정취를 더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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