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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남은 눈, 시신까지 기증할 것" 동해시 전 통장 박대현씨

송고시간2020-07-19 09:05

통장 수당 전액 5년간 장학금 쾌척…푸드트럭 수익금도 이웃돕기

고철 사업 중 눈 실명 "죽을 때까지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 것"

(동해=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집안이 무척 가난했지만 지금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것은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푸드트럭 앞에 선 박대현 씨. 수익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촬영 이해용]

자신이 운영하는 푸드트럭 앞에 선 박대현 씨. 수익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촬영 이해용]

통장 월급을 장학금으로 내놓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의 소식만 알고 찾아간 강원 동해시 분토마을(북삼2동) 박대현(65) 씨의 집 마당은 고즈넉했다.

잘 가꿔 놓은 마당이 평화롭게 보여 물었더니 여기서 마을 음악회를 열고, 친환경 장도 숙성시킨다고 소개했다.

보리수 열매가 반짝반짝 익어가는 마당 한쪽에서 그는 짧고도 웅숭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말은 유창하지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지만, 방문객을 설득하려는 기교는 보이지 않았다.

박 씨가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지독하게 가난했던 집안 사정과 관련 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자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어머니는 치매로 8년 동안 고생했고, 누나와 조카는 지적 장애여서 그는 막노동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힘들고 사람이 죽는 것까지 많이 보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던 그에게 한 건설회사 현장 소장이 "위험한 일 더는 하지 말고 회사에 들어가라"며 시멘트 회사를 추천했다.

그는 8년간 성실하게 근무했지만, 월급만으로는 2남 5녀 중 5번째로서 가족 부양의 짐을 혼자 지기 힘들었다.

그때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 본 사람이 고철 사업을 해보라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산소 용접기 등으로 고철을 자르다가 한쪽 눈을 실명해 이후 거리 조정이 안 되는 불편을 평생 겪어야 했다.

분토마을 달빛 음악회 모습. 다섯번 개최한 이 음악회 중 4회는 그의 마당에서 개최했다. [박대현 씨 제공]

분토마을 달빛 음악회 모습. 다섯번 개최한 이 음악회 중 4회는 그의 마당에서 개최했다. [박대현 씨 제공]

위험한 일을 내려놓고 통장을 맡은 2015∼2019년 그는 월 20만원 수당 전액을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동해시에 쾌척했다.

박 씨는 "통장은 정치인도 아니고 동네에 봉사하는 사람이다. 통장 수당은 내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난하게 살아왔던 그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탈북민의 딱한 처지를 보고는 생선 가게를 차려줬고, 자신이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했던 아픔 때문에 올해도 형편이 어려운 3명의 대학교 입학금을 도와줬다.

설날과 추석 등 명절날 고향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형편이 안 되는 탈북민에게는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했고,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탈북민에게는 구두를 사줬다.

그는 2015년 1월 한겨울에 17살짜리 아빠와 19살 엄마가 남의 집 창고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저귀와 분유를 사 찾아갔다.

그가 방을 구해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서자 동해시가 이들에게 원룸을 알아봐 줬다.

통장을 내려놓은 그는 현재 지역 시각장애인 위원장과 주민사회복지보장협의체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최근 노인 일자리 공모사업으로 5천만원을 지원받아 친환경 장을 만드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집 마당 입구를 채우고 있는 장독들은 마을 어르신들의 소중한 밑천이다.

또 밭에서 나오는 옥수수 대를 노인들이 짊어지고 가기 힘들어서 하는 사정을 보고는 파쇄기를 사고, 이를 실어 나를 동력 운반차를 장만했다.

그의 집은 울타리가 없고, 화장실도 이웃에 모두 개방한다.

주말이 되면 그의 집 마당으로 고기를 구우러 이웃들이 올 수 있도록 개방했다.

마을에서는 지금까지 달빛 음악회를 다섯번 개최했는데 그의 마당에서 4회를 열었다.

2017년부터 행사장을 찾아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박대현 씨. [박대현 씨 제공]

2017년부터 행사장을 찾아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박대현 씨. [박대현 씨 제공]

박씨는 2017년부터 직접 축제 등이 열리는 행사장을 찾아가 푸드 트럭을 운영하고 있다.

어묵과 닭고치, 커피 등을 팔아 얻은 수익금은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 게 아니라 이웃 돕기에 사용한다.

그가 고철을 자르다가 실명하는 등 어렵게 살아갈 때 아내는 남의 집 설거지 등을 하며 내조를 했다.

그는 "내가 받은 만큼 줘야 한다. 지금 이만큼 사는 게 많이 받은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선거 출마 등의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으로 봤던 이웃도 이제는 그의 진심을 인정하게 됐다.

주민 장희수(81)씨는 "박 전 통장은 젊은이가 갈 곳이 없거나 딱한 처지이면 찾아가 도와주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현재도 마을을 돌아다니며 없는 사람, 모자라는 사람, 환자들의 빨래나 청소 등을 해주는데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과 험난한 일로 고생한 박씨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이웃과 함께하고 싶다는 각오다.

그는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남은 한쪽 눈 등 장기 기증도 했으니 시신 기증까지 하고 세상을 떠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dm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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