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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목포의 재발견 ①목포에 사람이 살았다

'조금새끼'의 슬픈 사연과 물지게꾼 '옥단이'

(목포=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온몸으로 그 시대를 살아내며 목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어로 작업을 벌였던 뱃사람들의 슬픈 사연과 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던 물지게꾼의 이야기를 빼놓고 목포를 말할 순 없다.

바다가 보이는 보리마당의 사진관 외벽 [사진/성연재 기자]
바다가 보이는 보리마당의 사진관 외벽 [사진/성연재 기자]

◇ 조금은 슬픈 '조금새끼'의 보금자리 '보리마당'

한겨울 매서운 북서풍도 잦아드는 따스한 유달산 남쪽 비탈 서산동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몰려 살던 동네 '보리마당'이 있었다.

보리를 널어 말리던 너른 마당이 있었기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주택이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보리가 자라던 언덕이었다.

바둑판처럼 죽죽 뻗은 도로에 고급스러운 건축물들이 즐비한 인근 일본인 거주구역과는 대조적이다.

영화 1987의 배경이 된 연희네 슈퍼 [사진/성연재 기자]
영화 1987의 배경이 된 연희네 슈퍼 [사진/성연재 기자]

목포항이 바라보이는 보리마당 언덕 골목길에 살던 조선인 대부분은 뱃사람들과 그 가족이었다.

만조 때와 간조 때의 차이가 크지 않아 바닷물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때를 조금이라 한다.

물살이 잦아드는 조금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거센 파도와 싸우다 집으로 돌아온 뱃사람들과 아낙네들의 사랑이 시작되는 시기다.

그래서 매년 태어나는 아이들의 생일이 비슷하다. 하루 이틀 사이를 두고 신생아들의 울음소리가 이곳 보리마당에 퍼졌다.

이때 태어난 아이들을 그래서 '조금새끼'라고 부른다.

보리마당 골목에 걸린 김선태 시인의 시 '조금새끼' [사진/성연재 기자]
보리마당 골목에 걸린 김선태 시인의 시 '조금새끼' [사진/성연재 기자]

안타깝게도 조금새끼들의 운명은 서로가 닮았다. 같은 날 태어나 바다로 나갔다가 또 풍랑을 만나 수장되는 경우도 잦았다. 보리마당에 제삿날이 같은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이곳을 걷다보면 좁고 얽히고설킨 골목길 곳곳에 사람 손때가 묻은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담벼락엔 보리마당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목포대 김선태 교수의 시도 보인다.

최근 이 동네는 다른 이유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1987'이 이곳에서 촬영하면서부터다.

관광객들은 보리마당 아래쪽에 있는 '연희네슈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보리마당을 한번 쓱 훑어보고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슬픈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 보리마당의 예술인들

보리마당 길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찻집 [사진/성연재 기자]
보리마당 길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찻집 [사진/성연재 기자]

최근 이곳에 예술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좁다란 보리마당 골목길을 오가다 보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예술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박물관 겸 작은 찻집을 운영하는 예술인들도 있다.

이들이 보리마당 한쪽 끝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곳을 '바보마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는 곳이란 뜻으로, 아기자기한 찻집과 마카롱 가게도 들어섰다.

이곳에 지어진 대부분의 집은 남의 땅 위에 지어졌다.

어쩌면 이런 곳에 예술인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큰 욕심을 버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모두 단층이다 보니 대부분의 집에서 바다가 보인다. 그래서 바보마당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좁은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아기자기하게 꾸민 작은 찻집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가들이 내놓은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사진/성연재 기자]
예술가들이 내놓은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사진/성연재 기자]

◇ 물지게꾼 옥단이 누비던 구도심

보리마당이 바다를 접한 곳이라면, 유달산 북쪽의 목원동 일대는 내륙에 있던 또 다른 조선인 거주구역이었다.

당시 목포에는 4대 명물이 있었다. 물지게꾼 옥단이, 역전의 멜라콩, 평화극장 외팔이, 대성동 쥐약장수가 그것이다.

목포시 골목길 해설사 최희자 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가 옥단이라고 말한다.

옥단이는 1930∼1950년대 목포 유달산 일대에서 물을 길어주거나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유달산 아래 좁디좁은 동네 골목길을 누볐다.

영리하지는 않았지만,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물동이를 날랐다.

동네 노인들은 약간은 과장된 몸짓으로 골목길을 누비던 옥단이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구도심의 일부 골목길이 '옥단이길'로 이름 붙여진 사연이다.

시내에서 발견되는 옥단이길 이정표 [사진/성연재 기자]
시내에서 발견되는 옥단이길 이정표 [사진/성연재 기자]

이곳은 목포시의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진 곳으로, 최근 게스트하우스 등이 잇달아 들어섰다.

시에서 시작한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 오히려 민간인이 주도하는 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4년 전 들어선, 널따란 잔디밭이 인상적인 '화가의 집'도 빼놓을 수 없다.

무인카페로 운영되는 화가의 집 [사진/성연재 기자]
무인카페로 운영되는 화가의 집 [사진/성연재 기자]

무인카페로 운영되는 이곳은 관광객보다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다. 산책에 나선 한 주민이 무인 판매대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화가의 집 운영자인 서소연 씨는 "동네 할머니들이 직접 항아리며 다양한 골동품을 들고 와 기증하는 등 주민들의 적극적인 응원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그 집 담벼락에는 할머니들이 가져다 놓은 항아리가 보였고, 그 아래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지은 시들이 벽에 쓰여 있었다.

그의 추천을 받아 들른 한 가정집에는 주인 할머니가 평생 키워온 화초가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목포로 귀촌해 음식점을 연 5명의 청년 [사진/성연재 기자]
목포로 귀촌해 음식점을 연 5명의 청년 [사진/성연재 기자]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서씨가 목원동 아래쪽에 청년들이 하는 식당을 꼭 가볼 것을 권했다.

이곳은 모두 5명의 목포 청년들이 힘을 합쳐 꾸려나가는 식당이다.

별생각 없이 작은 건물 2층에 있는 이 식당을 들렀는데 의외로 큰 만족을 줬다.

대표 메뉴인 한우 스키야키 우동을 시켰는데, 달착지근한 일본간장 특유의 맛과 한우가 너무 잘 어울렸다.

우동 국물을 후루룩거리며 창밖을 보니 통창을 통해 유달산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청년들이 내놓은 대표메뉴 한우 스키야키 [사진/성연재 기자]
청년들이 내놓은 대표메뉴 한우 스키야키 [사진/성연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7/22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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