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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두 세계를 사는 중남미…빈부격차가 코로나에 미친 영향

송고시간2020-06-21 07:07

부유층 관료들이 세운 방역대책, 저소득층 현실과 엇박자

칠레 전 보건장관 "빈민촌 상황 알지 못했다" 시인

칠레 산티아고의 저소득층 거주지역 소독
칠레 산티아고의 저소득층 거주지역 소독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남미 칠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은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입국 제한과 지역별 격리 등 방역 조치나 경기 부양 대책을 늦지 않게 꺼냈고 적극적인 진단검사를 시행했다. 정부의 대응이 호응을 얻으며 지난해 시위 사태로 바닥까지 추락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지지율도 반등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100일을 넘긴 칠레는 지금 전 세계 확진자 수 톱10 안에 들었고, 인구 대비 확진자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중남미 대부분 국가에서처럼 초기 칠레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부촌에 집중됐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감염된 채 돌아온 이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나왔다.

칠레는 초반에 감염자가 많은 지역에만 격리령을 내렸는데 대개 수도 산티아고의 부촌들이 해당했다. 부자들은 격리를 잘 따랐고 봉쇄조치는 금세 효과를 보이는 듯했다. 칠레는 일찌감치 이들 지역의 봉쇄를 해제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곧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부촌에서 가사도우미 등으로 일하던 이들이 가져온 바이러스가 비좁고 위생이 열악한 빈민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봉쇄 지역을 넓혔지만 효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빈민촌에선 정부의 식량 지원 등을 촉구하는 시위도 잇따랐다.

13일 물러난 하이메 마냘리치 전 보건장관은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지난달 말에 "산티아고 일부 지역의 빈곤과 밀집 상태는 내가 알지 못한 수준이었다"며 "취약계층에게 격리를 준수하는 것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시인했다.

지난 5월 정부의 식량 지원 등을 촉구하는 산티아고 시위대
지난 5월 정부의 식량 지원 등을 촉구하는 산티아고 시위대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집에 머물라'는 말은 더없이 단순하고 쉬운 주문인 것 같지만, 가난한 이들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멕시코시티의 고급 슈퍼마켓은 배달 대행업체 로고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른 이의 식탁에 오를 고기와 채소를 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부자들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가사 도우미나 대행업체를 통해 장을 볼 때, 고용인들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종일 슈퍼마켓을 돌며 남의 장을 대신 본다.

규칙적인 일자리조차 없는 이들은 끼닛거리 마련을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가 돈벌이에 나선다.

요즘 멕시코시티 거리엔 신호에 걸린 차의 앞 유리를 닦거나, 어설픈 저글링을 선보이거나, 사탕 등을 들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멕시코시티의 한 상인
멕시코시티의 한 상인

[AP=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들에겐 10%를 넘긴 멕시코의 높은 코로나19 치명률도, 계속 밥을 먹지 못해 굶어 죽을 100%의 확률보다는 한참 낮다.

가난한 이들에게 집에 머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페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칠레의 의사 장관은 알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큰 칠레에선 그들만의 세계에 사는 1% 부자 각료가 대다수 서민의 현실을 외면한 정책으로 국민에 좌절감을 안기는 일이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래서 좀 더 일찍 빈곤층에 식량을 지원하는 등 세심한 대응을 했다고 해도 코로나19 위기를 얼마나 더 잘 극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중남미에선 엄격한 전 국민 격리를 시행한 페루나 격리가 권고에 그쳤던 멕시코나 대부분의 국가가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하지 못했다.

페루 리마의 한 저소득층 가정
페루 리마의 한 저소득층 가정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빈곤율이 중남미 최저 수준인 우루과이나 의료 인프라가 풍부한 통제국가 쿠바 정도만이 예외적으로 선방했다.

추적 역량이 없는 국가들에선 격리가 최선인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곤층은 오랜 격리를 버티기 힘들고, 이를 간과한 일률적인 봉쇄책은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삶의 방식이 너무 다른 계층을 아우르는 방역 대책을 마련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제였다.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19가 중남미의 빈곤과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중남미에선 코로나19로 3천만 명가량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남미에선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그 기능도 더 약화할 것이다. 사립학교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과 엄청난 숙제로 등교 공백을 메우는 사이 IT 기술의 수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이 마냥 학업에서 손을 놓았다.

빈부격차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런 격차를 더 심화한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정말 잔인한 병이 아닐 수 없다.

과테말라시티의 빈민 거주지역
과테말라시티의 빈민 거주지역

[AP=연합뉴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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