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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제주 어머니들의 삶의 흔적…고소리술

한때 우리나라 3대 소주로 불려
고소리술 내리는 모습 [제주술익는집 제공]
고소리술 내리는 모습 [제주술익는집 제공]

(서귀포=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온종일 밭일과 물질을 하고 돌아온 어머니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아궁이 앞에 앉아 술을 빚었다.

장작불 연기를 피우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나서야 고소리(소줏고리의 제주 방언)에서 흘러나오는 술 한 방울을 볼 수 있었다.

밤새 꾸벅꾸벅 졸며 술을 다끄다('빚다'의 제주 방언) 보면 새벽녘이 되어서야 자식들 곁에 누워 눈을 붙였다.

아이들은 잠결에 어머니 품에 밴 술향이 솔솔 풍겨오면 '이제 엄마가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오셨구나' 생각했다.

고소리술은 그래서 모향주(母香酒)라고도 한다. 그윽한 술 향기는 곧 어머니 냄새였다.

◇ 어머니의 체취가 담긴 '모향주'

예로부터 쌀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쌀 대신 오메기(좁쌀의 제주어)로 술을 빚었다.

좁쌉로 빚은 오메기떡에 누룩을 더해 발효시킨 탁주가 오메기술이고, 오메기술의 맑은 부분만 떠내 증류시킨 것이 고소리술이다.

한때 고소리술은 개성 소주, 안동 소주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소주로 불렸다.

고려시대 몽골로부터 증류법이 처음 전해진 세 지역 중 한 곳이 제주도였다.

제주에서는 집마다 어머니들이 고소리술을 빚어 제사상과 잔칫상에 올렸다.

고소리술을 시장에 내다 판 돈으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술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주세령이 시행되면서 고소리술은 남몰래 빚는 밀주가 됐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제주술익는집 전경 [사진/조보희 기자]
제주술익는집 전경 [사진/조보희 기자]

제주술익는집은 사라져가는 고소리술의 명맥을 잇는 곳이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4대째 전통 방식 그대로 고소리술을 빚고 있다.

양조장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 근처에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이 먼저 눈길을 끈다.

인공폭포가 흐르는 연못 둘레로 갖가지 꽃이 활짝 피었다.

마당 너머엔 규모가 꽤 큰 텃밭이 있다. 술 빚는 데 쓸 좁쌀과 보리를 직접 재배하는 밭이다.

양조장과 체험장으로 쓰이는 건물은 원래 김희숙 대표가 살던 살림집이었다.

방문객이 늘면서 안채는 손님을 맞는 카페가 됐고, 바깥채는 시음도 하고 술 만들기 체험도 하는 체험장 겸 판매장이 됐다.

카페 창을 통해 바라본 제주술익는집 마당 [사진/조보희 기자]
카페 창을 통해 바라본 제주술익는집 마당 [사진/조보희 기자]

부엌 자리에는 옛날식 아궁이가 남아 있다. 아궁이 위에는 술 빚는 데 쓰는 각종 도구가 전시돼 있다.

술을 증류하는 고소리와 고소리 위에 뚜껑처럼 얹어 찬물을 담았던 장태, 떡이나 밥을 찌는 시루, 술을 보관했던 술춘과 허벅도 있다.

과거 집마다 갖고 있던 필수품이었지만, 고소리술 전통이 사라져가면서 지금은 구하기 힘든 귀중품이 됐다.

옛날식 아궁이에 고소리와 술춘 등 술 빚는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옛날식 아궁이에 고소리와 술춘 등 술 빚는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 좁쌀로 빚은 오메기 맑은술과 고소리술

제주술익는집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은 오메기 맑은술과 고소리술이다.

두 가지 술 모두 좁쌀이 주재료다. 좁쌀은 껍질이 두껍고 전분이 적어 쌀보다 술빚기가 까다롭다고 한다.

우선 잘 불린 좁쌀을 가루로 빻은 뒤 반죽해 문고리처럼 생긴 구멍떡을 빚는다.

떡을 끓는 물에 넣고 떠오를 때까지 익히면 술 빚는데 쓸 오메기떡이 된다. 이 오메기떡에 직접 띄운 누룩과 물을 더해 잘 치댄 다음 항아리에 앉히고 물을 더 부으면 술이 괴기 시작한다.

여기에 조와 약간의 쌀을 더해 쪄낸 고두밥을 넣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나면 탁주인 오메기술이 완성된다.

이 오메기술의 맑은 윗부분만 떠내 숙성시킨 것이 오메기 맑은술이다.

마당에서 술 빚는 김희숙·강한샘 씨 모자 [제주술익는집 제공]
마당에서 술 빚는 김희숙·강한샘 씨 모자 [제주술익는집 제공]

직접 맛본 오메기 맑은술은 첫 모금에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상큼한 신맛과 부드러운 단맛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뤄 말 그대로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알코올 도수는 16도. 곡주지만 산뜻한 향과 산미가 화이트 와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소리술은 오메기 맑은술에 증류 과정이 더해진다. 술을 증류할 때 쓰는 소줏고리를 제주에서는 고소리라고 불러 고소리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선 발효시킨 술을 가마솥에 붓고 그 위에 고소리를 얹은 다음 연결 부위에 밀가루 반죽으로 단단히 테를 두른다. 고소리 위에는 찬물이 담긴 장태를 뚜껑처럼 얹는다.

이것을 아궁이에 올리고 은근하게 불을 때면 술이 78도에서 끓기 시작하면서 기체가 되어 올라온다.

이 증기가 찬물이 담긴 장태와 만나면 액체가 되고 길쭉한 고소리 코를 통해 흘러나오게 된다.

이렇게 한 방울 한 방울 받아낸 술을 다시 항아리에 넣고 저온에서 2∼3년 숙성시켜야 고소리술이 완성된다.

김희숙 대표는 "술은 빚는 사람의 성격을 닮는다고 한다"며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알면 그 보답으로 깊은 맛의 술이 된다"고 말했다.

오메기 맑은술과 고소리술 [제주술익는집 제공]
오메기 맑은술과 고소리술 [제주술익는집 제공]

고소리술은 알코올 도수가 40도에 달하지만 목 넘김이 부드럽다.

직접 띄운 전통 누룩으로 빚어 장기 숙성한 덕분에 은근한 꽃향기가 나면서 맛이 깊고 풍부하다.

제주에는 술익는집 외에도 고소리술을 만드는 양조장이 몇 곳 더 있지만, 이렇게 고소리를 사용해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내리는 양조장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 4대째 고소리술 명맥 잇는 제주술익는집

제주술익는집의 역사는 1888년 태어나 102세까지 장수한 고(故) 이성화 할머니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바다 건너 육지와 일본으로 두 아들을 유학 보냈던 이 할머니는 제주도 성읍마을에서 술을 빚고 주막을 하면서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다. 당시 술맛으로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로부터 양조법을 전수한 며느리 김을정(96) 할머니는 1990년에는 오메기술(제주 무형문화재 제3호), 1995년에는 고소리술(제주 무형문화재 제11호) 기능 보유자가 됐다.

제주술익는집의 김희숙 대표 [사진/조보희 기자]
제주술익는집의 김희숙 대표 [사진/조보희 기자]

제주술익는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본격적으로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김 할머니의 며느리인 김희숙 대표다.

밀주가 성행했던 구좌읍 세화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어머니가 몰래몰래 술 빚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랐다. 당시 어머니가 만들었던 술 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성읍마을로 시집온 뒤에는 시어머니 밑에서 술 빚는 것을 배우면서 1995년 무형 문화재 전수자가 됐다.

제주술익는집이라는 상호를 내고 술 빚는 것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은 세 아들 중 막내인 강한샘 씨가 전수자가 되어 교육전수조교인 김 대표를 도우며 4대째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30년 가까이 매달리며 눈물겹게 맥을 이어온 것은 사라져가는 고소리술을 되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어요. 고소리술은 제주 어머니들의 삶의 흔적이고 추억이니까요."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7/24 07: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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