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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탁의 탁견] 리비아 모델과 카다피, 그리고 김정은

송고시간2020-06-19 10:22

(EPA) 리비아지도자 카다피 유엔총회연설(2009.9)
(EPA) 리비아지도자 카다피 유엔총회연설(2009.9)

EPA/PETER FOLEY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2003년 10월의 어느 날, 컨테이너들을 실은 화물선이 말래카 해협을 통과해 수에즈 운하로 들어섭니다. 갑자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특수부대가 나타나더니 화물선을 세우고 수색에 들어갑니다. 그러곤 컨테이너에 실린 화물들을 압수했습니다.

농축 우라늄 제조용 원심분리기 부품들이었습니다. 미국의 첩보 위성은 이 화물선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했습니다. 핵 비밀 거래를 해온 국제 조직에 침투한 위장 요원으로부터 화물의 내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받은 CIA는 두바이 항에서 독일 국적의 화물선 'BBC China' 호에 컨테이너가 옮겨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화물선은 수에즈 운하를 거쳐 리비아로 갈 예정이었죠. 무하마르 카다피가 집권하고 있는 리비아였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2004년 2월 13일 자에 첩보 영화 같은 스토리를 자세하게 전합니다.

최종 목적지가 리비아라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리비아의 철권통치자 카다피 얘기를 해야 합니다.

1969년 9월 27일 27세에 카다피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쿠데타에 성공합니다. 왕정을 무너뜨린 그는 반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창하며 아랍 단일국가 건설을 국가목표로 내세웁니다.

리비아는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했지만, 카다피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가지고 있어야 미국과 유럽에 대항하고 이스라엘을 추방하고 아랍의 패권을 장악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집권하자 바로 WMD 확보를 위해 뛰어듭니다. 1970년대 초 해외 암시장에서 핵무기를 사들이려다 실패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곧바로 카다피 정권에 대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제재를 가합니다. 1986년 미국 팬암 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270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미국은 배후로 카다피 정권을 지목합니다.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미국을 넘어 유엔 차원으로 확대됩니다. 미국은 카다피가 어디 있는지 확인되면 즉각 사살하겠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카다피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않은 채 유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럴수록 카다피는 대량살상무기 확보에 더 열을 올립니다.

설상가상으로 1991년 소련 붕괴로 카다피는 기댈 곳이 없어졌습니다.

카다피는 살기 위해 미국에 손을 내밉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자 반미 노선과 범아랍주의를 포기하겠다고 밝힙니다. 결국 1999년 카다피는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과 비밀협상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어 등장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카다피를 더욱 압박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당신이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런 협의 없이 파괴해버리겠다"고 위협합니다. 결국 카다피는 신속한 핵 폐기를 선택합니다. 미국과도 관계개선을 하기로 합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카다피는 알카에다를 맹비난하며 미국을 지지했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알카에다를 토벌할 때는 알카에다 잔당에 대한 수색에 협조하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화물선이 적발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카다피는 끝까지 미국을 믿지 못했던 겁니다. 겉으로는 미국과 관계개선을 도모하려 하면서도 뭔가 확실한 한방을 갖기 위해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주도하는 '핵 비밀 네트워크'와 비밀거래를 해서라도 핵무기를 가지려 했던 겁니다.

이 화물선 적발로 카다피는 더는 미국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2003년 12월 19일 핵 프로그램을 포함해 모든 WMD 포기 선언을 합니다. 2004년 1월 미군 수송기가 리비아에 도착해 핵 기술과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2만5000t 분량의 서류와 장비를 싣고 미국 테네시에 있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가져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리비아는 국제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됩니다.

카다피는 핵을 포기한 이후 서방세계로부터 엄청난 대가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지원과 외교 관계 개선이 늦어지자 카다피는 불만을 터트립니다.

2010년 말부터 아랍 세계를 강타한 민주화 열풍이 리비아에도 닥쳐옵니다. 리비아 국민들이 카다피의 독재에 항거했습니다. 민주화 시위는 초기에는 벵가지 일대에 한정됐지만, 순식간에 수도 트리폴리를 포함해 리비아 전역으로 퍼집니다.

카다피는 공군을 동원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그러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2011년 3월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수시로 리비아를 공습해 반군 시위대를 지원했습니다.

리비아 반군이 트리폴리를 압박해 들어오자 카다피는 미국과 유럽에 공습을 중단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리비아 공습을 계속합니다. 결국 카다피 정권은 붕괴합니다.

카다피는 2011년 10월 20일 고향 시르테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42년 권좌의 끝은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카다피 최후의 장면은 전 세계에 생생히 중계됐습니다. 좁은 하수구 속에 숨어 있다 붙잡혔을 때 카다피는 피범벅이 된 채 '제발 쏘지 말아라'며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어디선가 서너 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카다피의 시신은 땅바닥에 끌려다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오래된 정육점 냉동고에 '전시(?)'됐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지금 미국에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곧 펴낼 회고록을 놓고 화제 만발입니다. 자신이 모셨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제가 주목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18일 트위터에 반박한 내용입니다.

"폼페이오, 트럼프 북미외교 비관에 뒷담화도"…볼턴, 회고록서 폭로 (CG)
"폼페이오, 트럼프 북미외교 비관에 뒷담화도"…볼턴, 회고록서 폭로 (CG)

[연합뉴스TV 제공]

트럼프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과의 핵 협상에 진전을 보고 있었는데 볼턴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 모델'을 제시해 "일을 망쳤다"고 비난했습니다. "김정은이 미사일처럼 분통을 터뜨렸고,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볼턴의 멍청하기 짝이 없는 모든 주장이 북한과 우리를 형편없이 후퇴시켰고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강조했습니다.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진흙탕 싸움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카다피와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오른 김정은에게 '리비아 모델'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요.

직설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리비아 모델이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미 핵무기를 손에 쥔 북한은 리비아와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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