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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제주, 화산섬의 속살 ①100만년 전의 용틀임

태초의 제주 속으로…산방산·용머리 해안 지질 트레일

(서귀포=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푸른 바다 위에 솟은 제주도는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외계의 행성에 온 듯 기묘한 풍경을 선사하는 해안 절벽부터 돌무지 위에 형성된 신비의 숲 곶자왈에 이르기까지, 화산 활동이 빚어낸 절경이 곳곳에 가득하다.

화산섬 제주의 속살 속으로 한 발짝 깊숙이 들어가 봤다.

산방산에서 내려다본 용머리해안 [사진/조보희 기자]
산방산에서 내려다본 용머리해안 [사진/조보희 기자]

◇ 한라산과 산방산에 얽힌 전설

제주에는 한라산과 산방산에 얽힌 전설이 여럿 전해 내려온다.

한라산에 오른 사냥꾼이 옥황상제의 엉덩이에 화살을 잘못 쏘자 노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멀리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봉우리가 뽑힌 자국은 움푹 패어 백록담이 됐다고 한다.

실제로 백록담 주변의 둘레와 산방산의 둘레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사실 산방산은 한라산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다.

80만 년 전 어느 날, 제주의 대지를 뚫고 용암이 솟아올랐다. 용암은 꿀처럼 점성이 높은 탓에 멀리 가지 못하고 주변에 두껍게 쌓였다. 그리고 그 위로 계속해서 용암이 흐르고 굳어 종처럼 봉긋한 모양의 용암돔이 빚어졌다.

이 용암돔이 오랜 세월 바닷바람과 파도에 깎인 것이 지금의 산방산이다.

산방산 아래 자리 잡은 용머리 해안은 산방산보다 역사가 더 긴,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다.

제주도의 용암대지가 형성되기도 전, 바닷속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뜨겁게 뿜어져 나오던 마그마는 바닷물을 만나 급격히 식으면서 자잘한 화산재가 되고, 뜨거워진 물은 강력한 수증기가 되어 화산재를 멀리 날랐다. 수증기를 타고 날아온 화산재는 차곡차곡 쌓였다.

이런 바닷속 화산폭발이 3번에 걸쳐 일어나 만들어진 것이 용머리 해안이다.

◇ 용머리 해안,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제주도 안에서도 특히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역사적 가치가 높은 13곳은 지질공원 핵심 명소로 인증받았다.

지질 자원과 인근 마을의 역사·문화 등을 접목해 만든 도보 길인 '지질 트레일'도 조성되어 있다.

지질 명소 13곳 중에서도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은 화산섬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를 만날 수 있다.

산방산·용머리 해안의 지질 트레일은 3가지 코스로 나뉜다. A 코스(4㎞)는 용머리 해안을 중심으로 산방산을 둘러보는 코스다. 사계포구를 돌아 마을 안길을 지나는 B 코스(약 2.5㎞), 황우치해변을 따라가는 C 코스(5.7㎞)도 있다.

우리는 가장 대중적인 A 코스를 택했다.

하멜 상선 전시관 [사진/조보희 기자]
하멜 상선 전시관 [사진/조보희 기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 방향으로 걸어가니 탐방안내소 옆에 커다란 범선이 한 척 서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상선을 본뜬 하멜 상선 전시관이다.

하멜이 탄 선박이 난파되어 이곳에 표착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네덜란드 대사관과 공동으로 세운 것이다.

하멜은 1653년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 남쪽 해안에 표류했다. 13년간 조선에 억류돼 있다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 조선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소개한 '하멜 표류기'를 남겨 서구사회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렸다.

하멜 상선 전시관 옆에는 기후변화홍보관이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을 교육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용머리 해안은 우리나라에서 해수면 상승 현상을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다.

해수면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밀물이나 바람에 의한 너울 등으로 탐방로 일부가 잠기는 경우가 잦아져 탐방로가 통제되는 날이 점점 늘고 있다.

1987년 탐방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만조 시에도 탐방로가 바닷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탐방로가 잠기는 날이 늘어나자 2008년 산책로를 더 높은 곳에 다시 설치했지만, 해수면이 계속 올라가면서 다시 탐방로는 물에 잠기곤 했다.

지금은 1년에 탐방 가능한 날이 200일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2100년 용머리 해안 대부분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날에도 날씨 때문에 탐방로가 열리지 않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결국 하루가 지난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용머리 해안 [사진/조보희 기자]
용머리 해안 [사진/조보희 기자]

기다림 끝에 볼 수 있었던 해안 절벽은 초입부터 탄성을 자아냈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지구 밖 행성처럼 기묘한 풍경이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펼쳐진다.

약 100만년 전 세 번에 걸쳐 일어난 수중 화산폭발이 완만한 언덕 모양의 화산체를 만들었고, 이것이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절경을 빚어낸 것이다.

자연과 세월이 빚어낸 기암괴석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조각품보다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길이 600m, 높이 20m의 해안절벽에는 100만년 전 파도와 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켜켜이 쌓인 지층은 물결이 휘몰아치듯 다양한 모양으로 굽이친다. 퇴적물이 물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과정에서 생긴 '연흔'이다.

바닥에는 커다란 바위가 움푹 패 형성된 물웅덩이도 있다. 바위의 작은 틈에 들어간 자갈이 물살을 따라 회전하면서 바위를 깎아 만든 돌개구멍(포트홀)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지층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위에서 칼로 내리쳐 자른 듯 수직으로 깊게 갈라진 틈도 볼 수 있다. 용머리 해안에 얽힌 전설 속 '호종단의 칼자국'이다.

전설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장차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진나라 시황제가 호종단이라는 인물을 보내 혈을 끊으라 명령했다.

호종단이 용머리 해안에 와보니 산방산의 맥이 바다로 뻗어 태평양으로 나가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 용의 꼬리와 등에 해당하는 부분을 칼로 내리쳤다.

그러자 검붉은 피가 솟구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구름에 뒤덮인 산방산 [사진/조보희 기자]
구름에 뒤덮인 산방산 [사진/조보희 기자]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산방산이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봉우리가 구름에 뒤덮인 모습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종처럼 우뚝 솟아있는 산방산은 세로로 깎아지른듯한 주상절리가 특징이다. 가로로 겹겹이 쌓인 용머리 해안의 지층과 대비를 이룬다.

탐방로 막바지에 다다르니 동굴 입구처럼 생긴 아치 형태의 구멍이 나타났다. 파도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해식 아치다. 이곳이 용머리 해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인 듯하다.

하멜 전시관 쪽 입구로 들어오면 탐방로 막바지에 있지만, 반대편 입구로 입장했다면 탐방로 초입에 해당한다.

100만년 전 태초의 제주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인 셈이다.

파도와 바람에 의해 형성된 해식아치 [사진/조보희 기자]
파도와 바람에 의해 형성된 해식아치 [사진/조보희 기자]

◇ 산방산과 송악산에서 내려다본 절경

'용머리 해안'은 해안 절벽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탐방로에서는 용머리 형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산방산 중턱으로 올라가 절벽을 내려다봐야 한다.

탐방로에서 나와 산방산 쪽으로 향했다.

하멜 기념비를 지나니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산방연대가 나왔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적의 침입 등 급한 소식을 전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도 용머리 해안과 그 옆으로 펼쳐진 사계해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만, 좀 더 올라가 전망대에서 보면 용머리 형상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망대에 오르니 왼쪽의 화순 금모래 해변부터 용머리 해안과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형제섬, 오른쪽의 송악산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산방산은 산속에 방처럼 굴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망대에서 좀 더 올라가면 산방산 중턱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굴속에 불상을 모신 산방굴사가 나온다.

굴 안의 천장 암반에서는 약수가 떨어진다. 이 물방울은 산방산을 수호하는 여신 산방덕이 인간 세상의 시달림을 받고 바위가 되어 흘러내리는 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송악산 둘레길을 산책하는 탐방객들 [사진/조보희 기자]
송악산 둘레길을 산책하는 탐방객들 [사진/조보희 기자]

용머리 해안에서 올려다본 산방산의 모습도 장관이지만, 송악산에서 푸른 바다 너머로 바라보는 산방산의 풍경 또한 일품이다.

자동차를 타고 사계포구부터 뻗은 해안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달리면 송악산이 나온다.

송악산은 너른 분화구 안에 깊고 작은 화구를 품은 이중 화산체다.

해안 절벽 위로 난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오른편에는 말들이 풀을 뜯는 초원의 한가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왼편에는 검푸른 망망대해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뒤를 돌아보니 깎아지른듯한 절벽 너머로 우뚝 솟은 산방산의 절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조금 더 걸어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가파도와 저 멀리 마라도까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반대쪽에는 형제섬이 호젓하게 서 있다. 무인도인 형제섬은 원래 하나였는데 18세기 말 가운데 부분의 바위가 무너지며 두 개의 섬으로 변했다고 한다.

바다에 잠겨있다가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새끼 섬과 암초들이 있어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개수가 3∼8개로 늘어나고 모양도 변한다. 일출과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다.

송악산 절벽 너머로 보이는 산방산과 형제섬 [사진/조보희 기자]
송악산 절벽 너머로 보이는 산방산과 형제섬 [사진/조보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7/11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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