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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제주, 화산섬의 속살 ②켜켜이 쌓인 역사와 전설, 수월봉

1만8천년 전 화산폭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화산학 교과서'

(제주=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제주도 서쪽 끝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수월봉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해넘이 명소로 유명하다.

수월봉 정상의 육각정에 오르면 차귀도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물론 아름답지만, 수월봉의 진면목을 보려면 아래로 내려가 해안 절벽을 따라 난 '엉알길'을 걸어봐야 한다.

격렬했던 화산 활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절경을 만나게 된다.

수월봉 절벽 아래로 난 엉알길 [사진/조보희 기자]
수월봉 절벽 아래로 난 엉알길 [사진/조보희 기자]

◇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을 펼쳐보다

수월봉은 해발 77m의 낮은 오름(소형 화산체)이다. 1만8천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다. 100만년 된 용머리 해안에 비하면 한참 젊은 화산체인 셈이다.

하지만 '화산학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국제 화산학 백과사전에 실린 곳이기도 하다. 해안 절벽을 따라 드러난 화산재 지층 속에 다양한 퇴적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수월봉 지질 트레일은 세 가지 코스로 구성된다.

A 코스는 수월봉 절벽 아래 해안을 따라 나 있는 '엉알길'을 걷는 코스다. 화산재 지층의 다양한 퇴적구조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B 코스는 산방산·용머리 해안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 중 하나로 꼽히는 당산봉을 도는 코스다. 당산봉 정상에 오르면 신창풍차해안도로부터 차귀도, 수월봉, 고산 평야에 이르기까지 탁 트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 차귀도를 탐방하는 C 코스도 있다.

검은모래해변에서 본 수월봉 지층 [사진/조보희 기자]
검은모래해변에서 본 수월봉 지층 [사진/조보희 기자]

우선 화산지층을 들여다보기 위해 수월봉 아래 엉알길로 향했다.

제주도 방언으로'엉'은 절벽을, '알'은 아래쪽을 뜻한다.

해안 절벽 아래로 난 엉알길은 자구내 포구에서 수월봉 정상을 거쳐 검은모래해변까지 2㎞가량 이어진다. 올레길 12코스와도 일부 겹친다.

엉알길에 들어서니 오른쪽엔 검은 현무암 위로 푸른 바다가 햇빛을 받아 은빛 물결을 일렁이고 있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화산 지층이 물결치듯 길게 이어진다.

차곡차곡 쌓인 지층 곳곳에는 크고 작은 화산탄이 박혀 있다. 화산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층이 휘어진 곳도 많다.

최고 두께가 70m에 이르는 수월봉의 화산 지층은 불과 일주일 이내에 쌓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만8천년 전 화산활동이 얼마나 격렬하게 일어났는지 짐작게 한다.

수월봉은 땅속에서 올라온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나 격렬하게 폭발하면서 형성된 화산체다.

폭발과 함께 뿜어져 나온 화산재들은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지표면 위를 훑고 지나며 쌓이고 쌓여 봉우리를 이루었다.

고리 모양으로 형성된 화산체는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깎이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약 2㎞의 해안 절벽만이 병풍을 두르듯 남아 지금의 수월봉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녹고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수월봉 지층 [사진/조보희 기자]
녹고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수월봉 지층 [사진/조보희 기자]

◇ 죽은 누이를 목놓아 부르는 '녹고의 눈물'

엉알길을 따라 한참 걷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니 절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축축이 젖은 지층 표면에 파릇파릇한 이끼가 뒤덮여 있다. 겹겹이 쌓인 지층 틈새는 작은 게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는 슬픈 전설이 얽혀 있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캐러 험한 절벽을 오르내리던 누이 수월이가 그만 떨어져 죽자 동생 '녹고'가 몇 날 며칠을 구슬피 울다 바위가 됐다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수월봉 절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녹고의 눈물'이라 부르고, 남매의 효심을 기려 이 언덕을 녹고물 오름 또는 수월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녹고의 눈물'이라 불리는 이 물방울은 실제로는 절벽의 화산재층을 통과한 빗물이 그 아래 진흙으로 된 불투성 지층을 통과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지층 틈새는 작은 게들의 보금자리다. [사진/조보희 기자]
지층 틈새는 작은 게들의 보금자리다. [사진/조보희 기자]

수월봉에는 아픈 역사의 흔적도 있다.

엉알길을 걷다 보면 절벽에 파놓은 갱도 진지를 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파놓은 것이다.

미군이 고산리 앞바다를 통해 진입할 경우 갱도에서 직접 바다로 나가 전함을 공격하는 자살 특공용 보트와 탄약을 보관했다고 한다.

푸른 초원이 펼쳐진 차귀도 [사진/조보희 기자]
푸른 초원이 펼쳐진 차귀도 [사진/조보희 기자]

◇ 차귀도,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무인도

지질 트레일 C 코스에 포함된 차귀도는 고산리 해안에서 약 2㎞ 떨어진 무인도다.

면적이 0.16㎡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죽도와 와도, 지실이섬(독수리 바위) 등 3개의 섬과 장군여, 썩은여, 간출암 등 작은 암초들로 이뤄져 있다.

본섬인 죽도는 총 4번에 걸쳐 만들어진 화산체가 포개진, 복잡한 형태의 화산체다.

동쪽은 약 40만년 전 당산봉과 같이 형성됐고, 서쪽은 와도와 같이 25만년 전에 형성됐다고 한다.

차귀도는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희귀한 생물 종이 많이 서식해 200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차귀도는 무인도지만, 유람선을 타고 섬에 들어가 둘레길을 걸으며 탐방할 수 있다.

자구내 포구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은 원래 1시간 간격으로 운항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 이후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어 사전에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 30분 두 차례 유람선이 오갔다.

준치 말리는 풍경이 이색적인 자구내 포구 [사진/조보희 기자]
준치 말리는 풍경이 이색적인 자구내 포구 [사진/조보희 기자]

자구내 포구로 들어서니 준치를 말리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줄지어 매달린 준치 사이로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차귀도가 보인다.

유람선에 올라타니 10분이 채 되지 않아 죽도에 도착했다. 예로부터 대나무가 많아 대섬 혹은 죽도라 불렸다고 한다.

배에서 내려 탐방로를 따라 걸으니 지붕이 날아간 옛집 터가 나왔다.

차귀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무인도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1970년대 말까지 일곱 가구가 보리, 콩, 참외, 수박 등을 재배하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거제도에 간첩이 출몰하자 주민들을 철수시켰고, 이후 30여 년 동안 출입이 제한되다 2011년 말부터 다시 개방됐다.

차귀도는 1977년 개봉한 영화 '이어도'와 1986년'공포의 외인구단'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차귀도의 옛집 터 [사진/조보희 기자]
차귀도의 옛집 터 [사진/조보희 기자]

옛집 터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완만하게 굴곡진 초원이 넓게 펼쳐졌다. 들판에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무성하다.

저 멀리 언덕 위에 놓인 하얀 등대가 이국적 풍취를 더한다.

차귀도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무인 등대다. 195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자동으로 어둠을 감지하고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등대가 위치한 언덕은 볼래기 동산으로 불린다. 차귀도 주민들이 등대를 만들 때 돌과 자재를 직접 들고 언덕을 오르며 제주도 방언으로 숨을 '볼락볼락' 가쁘게 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귀도의 무인 등대 [사진/조보희 기자]
차귀도의 무인 등대 [사진/조보희 기자]

차귀도는 비록 작지만 지루할 틈이 없는 섬이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지층과 기암괴석이 곳곳에서 절경을 선사한다.

죽도와 지실이섬 사이에 솟은 검은 바위는 장군바위라 불린다. 화산활동 때 화도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되지 않고 굳어져 암석이 된 것이라고 한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 할망의 아들 500명 가운데 막내라는 전설도 있다.

장군바위 옆으로 붉게 펼쳐진 죽도의 절벽도 장관이다. 현무암이 산화되어 붉은색으로 변한 것이다. 붉은 현무암을 의미하는 '송이'(Scoria) 공원이라 불린다.

차귀도에서 본 장군바위 [사진/조보희 기자]
차귀도에서 본 장군바위 [사진/조보희 기자]

섬의 풍광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유람선이 떠날 시간이 거의 다 됐다.

타고 들어온 배로 다시 섬을 나가야 해서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탐방 시간이 1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는 와도와 지시리섬, 병풍바위 등 죽도 주변의 부속 섬과 암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지시리섬은 보는 방향에 따라 독수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호랑이가 울부짖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형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독수리 바위라고도 하고, 범바위로도 불린다. 차귀도 최고의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와도는 만삭의 여인이 손을 포개고 누워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시리섬 [사진/조보희 기자]
지시리섬 [사진/조보희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7/11 08: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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