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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년] 소년병은 전우기록 찾고 아들은 기념관 운영

송고시간2020-06-17 07:01

16살에 참전한 이경종씨…전우 200여명 만나 참전 자료 수집

치과의사 아들은 병원 아래층에 '인천 학생 참전관' 운영

16세에 참전한 이경종씨
16세에 참전한 이경종씨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16세에 참전한 이경종씨가 1951년 향로봉 전투 후 찍은 사진.(왼쪽) 오른쪽 사진은 약 70년이 지난 현재 모습. 2020.6.17 inyon@yna.co.kr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제대한 저로서는 꽃다운 나이에 전장에서 전사한 인천 학생들의 흔적을 찾아서 후대에 전하는 게 저의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6일 인천시 중구 용동 '인천 학생 6·25 참전관'.

16살 나이에 6·25 전쟁 학도병으로 참전한 이경종(86)씨는 참전관에 전시된 전우들의 묘비 사진을 어루만지며 힘주어 말했다.

이씨는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12월 18일, 인천 축현초등학교에 모인 동네 형·친구 3천여명과 함께 부산까지 20일 넘게 걸어가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이씨를 포함한 인천 학생들이 대거 남하한 것은 그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후 10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인천이 다시 인민군에 점령될 상황에 놓이자 학생들은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가느니 남쪽으로 가서 조국 수호에 힘을 보태야겠다고 판단, 대장정에 나섰다.

이씨는 인천 송현동 양키시장에서 산 군복을 입고 학교 모자를 쓴 채 참전했지만, 너무 어려서 처음엔 입대 불허 판정을 받았다가 탈영병 군번 '0248251'을 편법으로 받고 가까스로 입대했다.

이후 향로봉전투, 금화지구전투,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등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뒤 1954년 12월 제대 후 고향 인천으로 돌아왔다.

약 4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에게 남은 것은 제대증 1장, 그리고 평생 본인을 괴롭히게 되는 허리 통증과 중학교 중퇴라는 학력뿐이었다.

학도병 이경종씨와 아들 규원씨
학도병 이경종씨와 아들 규원씨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학도병 이경종씨와 아들 규원씨가 인천 학생 6·25 참전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버지는 전우들의 참전 자료를 수집하고, 치과 의사인 아들은 이 자료로 참전관을 운영하고 있다. 2020.6.17 inyon@yna.co.kr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전쟁 못지않은 힘겨운 일상 속에 청춘을 보낸 이씨는 환갑을 넘긴 1996년 국가보훈처로부터 6·25 참전용사증서를 받고 무언가 뜻깊은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부할 어린 시기에 무거운 총을 힘겹게 메고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냈는데 참전용사증서를 막상 받고 보니 오히려 더 허무하더군요. 인천 학생들의 참전 기록을 꼼꼼하게 찾아보고 기록하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됐습니다."

이씨는 이때부터 녹음기를 들고 전우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함께 참전한 동네 친구부터 시작해 다른 전우를 소개받고 그렇게 전우들을 만나다 보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애달픈 사연들이 하나하나 모였다.

아들의 동네 친구들은 살아왔는데 아들만 전사한 사실을 알고는 오열하며 실신한 어머니, 해병 6기생으로 입대했지만 대인지뢰를 밟아 숨진 어린 병사, 인천에서 부산까지 3천명의 학도병을 데리고 갔지만 고향에서는 "어린 동생들을 전쟁터에서 죽게 했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은 대학생까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수많은 역사가 이씨의 손끝에서 하나하나 살아났다.

이씨는 전우들을 만나며 학도병들의 당시 사진, 전역 증서, 전사 통지서, 전사 후 묘비 사진, 1950년대 신문 자료 등 1천여점의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끝에 2004년 12월 인천 중구 신포동에 처음으로 '인천 학생 6·25 참전관'을 열었다.

참전관에 전시된 당시 사진들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 누렇게 변했지만 사진 속 청년들의 푸른 기백만큼은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참전관 한편에 걸린 전사통지서는 아들을 잃은 노모의 한 맺힌 눈물이 아직도 배어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참전관에는 이씨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전우 200여명의 육성 녹음테이프도 보관돼 있다.

참전관 자료 설명하는 아들 규원씨
참전관 자료 설명하는 아들 규원씨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치과 의사인 이규원씨가 인천 학생 6.25 참전관에서 아버지가 수집한 자료들을 설명하고 있다.
2020.6.17
inyon@yna.co.kr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참전관 운영은 치과 의사인 아들 규원(58)씨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규원씨는 다른 기관의 재정 지원 없이 본인의 사재를 털어 자신의 치과 의원 아래층에 참전관을 만들고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16년 가까이 참전관을 운영하고 있는 규원씨는 최근에는 인근 건물을 아예 매입해 참전관 면적을 330㎡ 규모로 넓혔다. 참전관은 조만간 치과 의원과 함께 이 건물로 확장 이전될 예정이다.

새로 조성한 참전관에는 아버지 이씨의 이름을 딴 '인천 소년병 이경종 기록관'도 마련됐다.

참전관은 유동인구가 많은 신포국제시장 건너편에 자리 잡아 월세만 500만원이 넘지만 규원씨는 임대료 수입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참전관의 내실 있는 운영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규원씨는 아버지의 기록을 정리해 '인천학생 6·25 참전사'라는 이름의 책도 2007년부터 2013년까지 4권이나 출간했다.

1권당 약 400쪽 분량의 이 책에는 닥쳐온 국가 위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조국과 고향을 지킨 인천 학생들의 참전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규원씨는 지난 2일에는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를 위해 10차 후원금 1천만원을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는 등 최근 10년간 모두 1억원을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 후원금으로 기부했다.

규원씨는 치과 의사인 딸 근아(29)씨와 함께 인천의 첫 부녀 '아너 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회원이다.

규원씨는 "개인 인생을 놓고 보면 뼈아픈 손실의 시간일 수 있지만 아버님을 포함해 인천 학생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목숨을 바쳐 싸웠다"며 "그들의 높은 뜻을 후세 사람들이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 학생 6.25 참전관
인천 학생 6.25 참전관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인천 중구 용동에 있는 참전관. 2020.6.17 inyon@yna.co.kr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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