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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년] '끝나지 않은 아픔' 단양 곡계굴 폭격 사건

송고시간2020-06-15 07:01

1951년 1월 미군 네이팜탄 폭격·기총사격에 민간인 360명 희생

유족회 "법적 시효 없이 피해 배상하고 무연고 유해 안장해야"

(단양=연합뉴스) 박재천 기자 = #1. 한강 물이 휘돌아 흐르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의 곡계굴.

곡계굴
곡계굴

[박재천 기자 촬영]

태화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입구는 비좁지만, 길이가 80m가량 되고 안쪽 공간은 넓다.

동굴 끝부분은 깎아지는 절벽이고, 15m 아래에 호수가 형성돼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지만, 70년 전 이곳은 통한의 현장이다.

'무명' 피란민들 유해 매장지
'무명' 피란민들 유해 매장지

[박재천 기자 촬영]

#2. 이곳에서 차량으로 2∼3분 거리의 군유림.

벌초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숲으로 착각했을 이곳에 곡계굴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무명' 피란민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

봉분은 매우 초라했고, 숫자가 표시된 어른 무릎 높이의 시멘트 비석은 오히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곡계굴의 아픔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무고한 민간인이 미군의 폭격을 받아 집단 희생된 '곡계굴 사건'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발생했다.

당시 전선은 중공군 개입으로 수세에 몰려 유엔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상황이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은 서울을 다시 점령한 뒤 남하했고, 중부전선의 경우 소백산맥지대까지 침투했다.

영월 등 외지에서 피란민이 몰렸고, 느티마을(상리) 주민들도 몸을 피해야 했다.

1월 7일 미10군단 예하 제32연대 제2대대 G중대는 가곡면 향산리 근방 도로를 탱크로 봉쇄한 채 피란민 대열을 되돌려보냈다.

곡계굴 입구
곡계굴 입구

[박재천 기자 촬영]

북한군이 피란민 대열에 위장 합류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소백산 일대에 인민군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 주민과 피란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돼 대거 곡계굴로 피신했다.

1월 중순 미10군단은 전세 역전을 위해 북한군 침투지역에 대대적인 공중공격을 가하고 소각작전도 실행했다.

곡계굴의 참극은 이때 빚어졌다.

같은 달 20일(음력 12월 12일) 미7사단 17연대는 영춘면 일대 공중공격을 미5공군에 요청했다.

오전 10시께 미군 F-51기와 F-80기 등 전투기 11∼13대가 곡계굴과 느티마을 등 영춘면 일대를 폭격했다.

네이팜탄 공격에 곡계굴에 있던 민간인들은 불에 타거나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소스라치며 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기총사격에 죽거나 다쳤다.

폭탄과 총탄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극히 일부만 목숨을 건졌다.

느티마을 가옥 50여채도 거의 불에 탔다.

폭격으로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는 조병규 유족회장의 옛 가옥
폭격으로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는 조병규 유족회장의 옛 가옥

[박재천 기자 촬영]

굴에 들어가지 않고 웅덩이 등에 숨어 있던 주민들은 폭격이 종료된 뒤 한참이 흐르고 나서야 가족의 시신을 찾아갔다.

외지 피란민 등 무연고 시신은 방치돼 있다가 두 달 뒤 영춘면사무소가 수습해 이곳저곳에 임시 매장했다.

유해는 1980년대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곡계굴 폭격사건 희생자는 36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유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사상적 의심 등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날의 진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음력으로 매년 12월 12일마다 숨죽여 제사를 지냈을 뿐이다.

곡계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가 제기된 것은 또 다른 피란민 학살 사건인 영동 '노근리 사건'의 진실이 AP통신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1999년 들어서다.

유가족들은 곡계굴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진상규명 활동을 벌였고, 2003년 첫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곡계굴 위령비
곡계굴 위령비

[박재천 기자 촬영]

2006년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5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무연고 희생자를 포함한 전체 희생자는 200명을 상회하며, 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67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군은 다수 민간인이 존재하는 봉쇄된 전투 근접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단행했고, 정찰 및 공중공격 과정에서 인민군과 민간인을 구별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미국 정부와 협상하고 위령사업 지원을 국가에 권고했으나, 지금까지도 유가족이 원하는 배상이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곡계굴 사건 자료 살피는 조병규 유족회장
곡계굴 사건 자료 살피는 조병규 유족회장

[박재천 기자 촬영]

곡계굴유족회는 정부를 향해 소멸시효 적용 없는 신속한 배상·보상과 무연고 희생자를 국가위령시설에 안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곡계굴유족회 3대 회장인 조병규(73)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정부를 상대로 곡계굴 사건에 대한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며,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법적 시효를 적용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도 함께 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와 고모 등 가족이 곡계굴에서 희생됐다.

조 회장은 "미군이 우리를 헤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유대한민국의 지원요청에 도와주러 왔다가 피해를 준 것이니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어렵게 살아온 우리가 무슨 힘으로 미국을 상대하겠냐"고 한숨을 쉬었다.

jc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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