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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년]② 소 떼 몰고 태평양 건넌 카우보이 이야기

송고시간2020-06-21 08:30

(서울·안동=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전후 한국 구호사업에 나선 미국의 헤퍼 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에 소속된 카우보이들은 약 7주간 화물선에서 지내며 가축들을 돌봤다.

태평양을 횡단해 한국까지 젖소를 운반하는 고된 작업에 동원된 해상 목동들은 모두 300여명에 이른다.

헤퍼는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총 44차례에 걸쳐 가축 3천200여 마리를 한국으로 실어 보냈는데, 가축을 실은 수송선에는 목동 20여 명이 동승했다.

카우보이 복장의 원양 항해 목동들이 태평양 항해를 앞두고 젖소를 돌보고 있다.
카우보이 복장의 원양 항해 목동들이 태평양 항해를 앞두고 젖소를 돌보고 있다.

카우보이들이 남긴 항해 일지에는 가축의 심리 상태를 살피고 비행고도를 낮추는 등 세심하게 가축을 돌보았던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다[사진 제공 = 헤퍼 인터내셔널〕

◇ 소 떼와 함께 바다 누빈 '원양 항해 목동'…한국까지 7주간 태평양 횡단

소 떼를 몰고 초원이 아닌 바다를 건넌다는 뜻에서 '원양항해 목동'(Seagoing Cowboys)으로 불렸다.

헤퍼의 기록보관소에는 이들 목동의 활동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봉사활동 목적으로 해상 목동이 된 휴 넬슨 목사는 1954년 8월 5일 샌프란시스코 항에 정박한 캘리포니아 베어 호에 올랐다. 기적 소리와 함께 부산항을 향해 출발한 화물선에는 염소 150마리, 홀스타인 등 소 21마리, 양 18마리와 돼지, 토끼, 닭 등이 실려 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으로 향하는 '노아의 방주(Noah's Ark)'였다.

플리머스 빅토리호에 승선한 원양 항해 목동들과 갑판 위 우리 안의 젖소.
플리머스 빅토리호에 승선한 원양 항해 목동들과 갑판 위 우리 안의 젖소.

[사진 제공 = 페기 밀러〕

태평양을 건너 부산항까지 7주간의 긴 항해 동안 동물들을 건강하게 지켜야 하는 목동들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넬슨 목사가 남긴 '대작전: 항해하는 목동 이야기'라는 제목의 일지에는 원양 항해 목동들의 선상 생활과 한국에서의 경험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울릉도 병원에 염소 58마리와 의료품을 전달한 어니스트 코르테 부부.(1969년)
울릉도 병원에 염소 58마리와 의료품을 전달한 어니스트 코르테 부부.(1969년)

[사진 제공 = 헤퍼 인터내셔널〕

◇ 사람도 가축도 멀미로 고통…기뢰 터져 목숨 잃을 뻔

1954년 8월 5일 출항한 퍼시픽 베어호가 북반구 항로에 들어서자 배에 탄 목동들은 멀미약부터 찾았다. 각자에게 할당된 가축의 먹이를 주려고 건초, 귀리 더미와 싸우다가 속이 점차 매스꺼워지고 몸살이 날 만큼 심한 근육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멀미는 목동들뿐만 아니라 동물들에도 닥쳤다. 목동들은 멀미를 참아가며 바닥에 나뒹구는 동물들을 돌봤다.

매일 건초와 귀리를 먹이로 주고 잠자리를 봐주는 일도 고역이지만, 가장 고달픈 일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가축 배설물을 신속히 치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목동들은 배설물 치우는 작업을 '비우기 작전'으로 불렀다.

염소와 어린이들
염소와 어린이들

헤퍼가 제공한 염소를 안고 있는 아이들[사진 제공 = 헤퍼 인터내셔널〕

누비안 염소는 좁은 우리 속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바닥에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폭풍우, 뱃멀미와 싸워야 했던 목동들은 7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닿았다. 하선하는 '탑승객'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고 넬슨 목사는 기술했다.

가축 돌보는 해상 카우보이들
가축 돌보는 해상 카우보이들

목동들은 선상에서 엄청난 양의 여물을 준비하고 가축의 배설물을 처리해야 하는 고충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 = 페기 밀러 컬렉션/헤퍼 인터내셔널]

빌 벡은 1960년 헤퍼 가축 구호 사업에 처음 지원해 3차례나 한국으로 염소와 소 등 가축을 운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1964년에는 일본을 거쳐 한국까지 가는 USS 프레지던트 타일러 수송선에서 컨테이너에 실린 소 24마리와 돼지 20마리를 돌봤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피어29 부두에선 암송아지를 배에 싣던 중 한 마리가 물로 뛰어든 일이 있었다. 이 송아지는 가까스로 구조돼 무사히 한국까지 왔다.

1972년 화물기를 이용한 암송아지 100마리 이송 작전 당시에는 송아지 한 마리가 무리를 이탈하는 일도 있었다. 탈주한 송아지는 결국 오클랜드 컨트리클럽 잔디밭에서 발견돼 기증자의 농장으로 되돌아갔다.

벡은 가축 구호 사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보람도 있었지만,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을 이겨내야 했고 기뢰 폭발로 목숨을 잃을 위기도 넘겼다고 전했다.

◇ 미국서 한국까지 3박 4일 비행…꿀벌 컨디션을 위해 저공비행

동물 이송의 고단함은 항공기를 이용한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란 기증자인 허버트 크레이턴은 1952년 4월 1일 종자란 200상자(7만개)를 여객기에 싣고 부산으로 오면서 기록한 '종란 한국 운반기'라는 글에서 "눈, 비, 얼음 등 조종사의 시야를 가리는 악천후로 인해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고 적었다.

또 항속거리 2∼3천km의 중형 프로펠러기를 이용하다 보니 미국에서 한국까지 무려 3박 4일간 비행을 해야 하는 고충도 있었다고 한다.

뉴욕주 오번에서 염소 농장을 운영하는 뉴턴 구드릿지는 1954년 4월 5일 한국행 수송기에서 염소 75마리, 토끼 500마리, 꿀벌 150만 마리(벌통 200개)를 돌본 내용을 일지에 적었다.

그는 한국 내 농작물 수분을 목적으로 꿀벌을 가져가기로 했다고 설명하고, 수송기 조종사들이 꿀벌의 컨디션을 고려해 비행고도를 낮춰야 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주 출신으로 돼지와 양 수송을 맡았던 조지 H. 매클레인은 한국 도착 직후 대전으로 가는 길에 로버트 케네디 당시 법무부 장관의 피살 소식을 모내기하던 농부들의 휴대용 라디오에서 들었던 기억을 전하기도 했다.

1953년 '노아의 방주 작전'을 통해 한국에 전달된 가축들.
1953년 '노아의 방주 작전'을 통해 한국에 전달된 가축들.

[사진 제공 = 페기 밀러/헤퍼 인터내셔널]

이들이 참여한 '항해하는 목동 프로젝트'는 헤퍼 인터내셔널의 창립자 댄 웨스트(1893∼1971)가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난민들에게 가축을 기증해 자립심을 키워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1945년 6월부터 1947년 초까지 이 활동에 참여한 목동은 모두 7천명에 달한다. 16세 소년부터 72세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헤퍼는 1944년 7월 푸에르토리코 우유 공급원인 암소 18마리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대형 수송선과 전세 화물기를 이용해 한국, 중국 등지로 360회에 걸쳐 총 30만 마리의 가축을 전달했다.

그렇게 전해진 가축은 전후 한국을 비롯한 빈곤국의 축산업 재건의 바탕이 되었고, 농가에는 생계를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duckhw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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