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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장 오래된 백두대간 고갯길, 하늘재길

송고시간2020-07-09 07:30

2천년 역사…충주∼문경 잇는, 편안하고 포근한 길

걷기에 편안한 하늘재길 [사진/전수영 기자]

걷기에 편안한 하늘재길 [사진/전수영 기자]

(충주=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충주와 문경을 잇는 하늘재 길은 백두대간 고갯길 중 가장 오래된 옛길이다. 2천년 역사를 품었다. 그러나 조금도 험하지 않은, 순한 길이다.

◇ 가장 먼저 뚫린 백두대간 고갯길

고개는 옛사람들이 무수히 만나고 헤어졌던, 그리움과 기다림이 켜켜이 쌓인 자리다. 오라비를 도회로 떠나보내며 누이가 하얀 손수건을 흔들던 곳, 밭매던 어머니가 기약 없는 자식을 기다리며 올려다보던 곳이다.

국토 구석구석까지 현대식 도로가 깔리고, 산을 터널로 뚫는 요즘 고갯길을 걸어 넘어갈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옛적에 고개는 사람 왕래와 물류의 요충지였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출가한 딸이 친정에 다니러 가거나 청운의 젊은이가 더 넓은 세상에 나갈라치면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고개 중 가장 먼저 뚫린 큰 고개가 충청북도 충주와 경상북도 문경을 잇는 하늘재다. 신라 시대 아달라왕 때인 156년에 열렸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영토 다툼을 벌일 때 아달라왕은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하늘재를 개척했다.

이 길은 인근 죽령보다 2년 앞서 열렸다. 영남에서 충청도, 경기도로 가기 위해 제일 많이 이용됐던 이 길은 조선 태종 14년(1414) 문경 새재길이 새로 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복원 공사 중인 미륵대원지 [사진/전수영 기자]

복원 공사 중인 미륵대원지 [사진/전수영 기자]

지금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에서 하늘재까지 약 2㎞에 걷는 길이 조성돼 있다. 하늘재길이다. 충주 미륵대원지∼미륵리 원 터∼미륵대원지 3층 석탑∼연아 닮은 소나무∼하늘재 정상 표지석으로 이어진다.

미륵대원지와 하늘재의 해발 고도는 각각 378m, 530m다. 하늘재길은 경사도가 평균 8%로 완만하다. 백두대간의 큰 고갯길이라 험할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키 큰 아름드리나무들로 숲이 우거지고 걷기 좋게 정비돼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 걸어보면 백두대간의 숱한 고개 중 왜 이 길이 가장 먼저 열렸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만큼 힘들지 않은 고갯길이다.

하늘재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포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1.6㎞의 등산로가 있다. 어린이나 어르신을 포함한 가족이라면 하늘재길 왕복 4㎞를, 청년이나 등산 애호가라면 포암산 등산로를 포함해 왕복 7.6㎞를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내친 김이라고, 하늘재에 도착한 우리는 빤히 보이는 포암산 정상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늘재길이 시작되는 미륵대원지는 하늘재만큼이나 유서 깊은 곳이다. 이름이 '미륵대원사'로 추정되는 석굴사원이 있었던 터다.

절은 사라졌지만 높이 10.6m의 거대한 석조 불상이 남아 있다. 보물 96호인 이 석조여래입상은 고려 시대 유행하던 거불 중 하나다.

미륵대원지는 석굴 복원 공사 중이었다. 자세히 관찰하긴 어려웠지만, 가림막 밖에서도 석불의 토속적이고 편안한 표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연아 닮은 소나무 [사진/전수영 기자]

연아 닮은 소나무 [사진/전수영 기자]

석불은 돌아간 두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얘깃거리가 전해진다.

문경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 시절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가 발굴 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이 석불 얼굴에는 물방울이 사람의 땀처럼 맺혔다는 얘기가 회자한다.

이 석불은 나라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땀을 흘리곤 했다는데,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 공사 중임에도 참배객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륵대원지에는 석불 외에도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 당간지주, 불두 등 희귀 석조 유물이 적지 않았다.

귀부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 모양 비석 받침대다. 길이 605㎝, 높이 180㎝에 이르는데, 여러 개의 돌을 이어붙인 게 아니라 거대한 한 개 돌로 만들어졌다.

미륵대원사는 특이하게 북향이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망국을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이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자 마의태자는 석굴을 북향으로 지어 마애불과 석불이 마주 보게 했다고 한다. 미륵대원지 석불과 덕주사 마애불은 실제로 마주 보는 방향으로 세워져 있다.

미륵대원사 터 바로 옆에 미륵리 원(院) 터가 있다. 미륵리 원은 마방시설, 여행자 숙소 등으로 쓰인 역원이었다. 드넓은 터에는 역원 건물 주춧돌 등이 발굴돼 있었다. 미륵대원사가 이 역원을 운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충주 일대는 한반도 중원이다. 교통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역사의 격전지였다.

고구려의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끈질기게 전쟁을 벌였다. 미륵대원지 근처에는 온달의 애마를 묻었다는 말 무덤이 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할 때도 하늘재를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리 원 터를 지나 20여분 걷다 보면 하늘재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계곡물이 콸콸거리며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탐방객 10여명이 계곡에 발을 담근 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길 오른쪽에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가 있었다. 길이 20m, 폭이 5m 정도였다. 예부터 충주 일대에서는 옹기가 많이 생산됐다. 이 가마에서는 민간이 쓰던 막사발이나 접시, 문양 없는 순백자가 생산됐다.

중간쯤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왼쪽이 역사·자연 관찰로, 오른쪽이 숲길이다. 이끼, 버섯, 나이테, 흙, 산림욕 등을 설명한 푯말이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었다.

가족, 친구와 천천히 걸으면서 역사와 전설, 숲과 나무 생태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면 길은 짧고 대화는 하염없을 것 같다.

하늘재길에는 연리지 두 그루가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었다.

한 그루는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연기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연아 닮은 소나무'라고 이름 붙여졌다. 다른 나무도 비슷한 모양이었는데 연아 나무의 친구라는 뜻인가 보다. '친구 나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하늘재 정상 [사진/전수영 기자]

하늘재 정상 [사진/전수영 기자]

어느새 고갯마루다. 울창한 나무 사이에서 새파랗고 맑은 하늘이 갑자기 나타났다. 하늘재 정상석은 망망한 하늘을 이고 있었다.

박경애 충주시 문화관광해설사는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목격하게 되는 푸르고 넓은 하늘의 감동이 하늘재라는 이름을 낳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수긍이 갔다.

하늘재 정상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의 경계에 있다.

자구대로라면 미륵리는 미래 부처인 미륵불이, 관음리는 현세 부처인 관음불이 관장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의 장소인 미륵리와 현재의 장소인 관음리를 하늘재가 잇고 있는 셈인데, 사뭇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하늘재 부근 문경읍 관음리 쪽에는 주차장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문경 쪽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하늘재까지 올라오기가 더 편해질 것이다.

하늘재 고갯마루에서 미륵대원지까지 거꾸로 걸어 내려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가파른 포암산 등산로

하늘재에서 바라보면 왼쪽에 포암산이 하늘을 절반쯤 채운 듯 우뚝 솟아 있다. 포암산은 백두대간이 명산 월악산을 만들어낸 뒤 그 여력으로 솟구쳐냈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주 능선 위에 있으며, 월악산국립공원의 남쪽 부분이다. 바위 하나가 산을 이룬 듯, 큰 바위가 산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바위 모양이 큰 삼베를 펼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게 포암산이라는 명칭이다. 베바우산이라고도 한다.

포암산 등산길은 하늘재 길과는 다른 맛을 준다. 포암산의 해발고도는 962m다. 등산로는 짧았지만 가파른 구간이 몇 군데 있었다.

하늘재길과 포암산 등산로를 이어 걷는다면 평화로운 숲길과 거친 산길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오르막길이 좀 힘들고, 땅이 메말랐을 때는 내리막에서 미끄러질 수 있어 물, 등산스틱, 장갑 등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포암산 정상 [사진/전수영 기자]

포암산 정상 [사진/전수영 기자]

등산로를 3분의1 쯤 지났을까. 돌무더기길이 나왔다. 돌들이 자연석 같지 않게 반듯반듯하고 크기가 비슷하다.

산이 험해 군사 요새로 쓰였던 포암산에는 옛적에 성벽이 있었다. 성벽이 무너져 생긴 돌무더기가 아닌가 싶었다. 소박한 약수터가 목마른 나그네를 반겼고, 사람이 조각한 듯 잘생긴 책바위 등 소소한 재밋거리가 있었다.

오르막이 가파른 만큼 내려다본 풍광은 박진감 넘쳤다. 세상이 정지한 듯 움직이는 것이라곤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잎새밖에 없는데, 늙은 소나무가 하계를 지배하듯 벼랑 끝을 짓누르고 있었다.

6월의 포암산은 이미 한여름이었다. 듣도 보도 못했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봄을 잃어버렸을 때 산은 봄을 쏜살같이 지나 여름을 앞당겨 맞고 있었다.

나무가 검은 숲을 이루었고, 숲은 더 짙은 산이 돼 있었다. 봉우리들은 다시 산해(山海)를 만들었다.

포암산 정상에 서면 월악산, 조령산, 주흘산, 대미산, 문수봉 등 주변 명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되 봉우리가 천지 사방으로 끝없이 이어질 뿐이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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