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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주는 色의 향연] ① 고창 상하농원과 청보리밭

송고시간2020-06-06 08:01

[※ 편집자 주 = 갑갑하고 아쉬운 마음 가득한 요즘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때로는 진홍빛 물결로, 때로는 청량한 녹색으로, 때로는 총천연색으로 생명력을 내뿜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수레바퀴는 쉼 없이 굴러갑니다. 연합뉴스는 화려한 색상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현장 세 곳을 다녀왔습니다.]

(고창=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전북 고창에서 찾은 색은 녹색이었다.

꿋꿋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건강한 녹색을 보여준 고창 청보리밭은 그래서 더욱더 반가웠다. 농촌 생활 체험 관광의 대명사 상하농원은 녹색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 '녹색의 꿈' 보여준 고창 청보리밭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익어가는 청보리 위로 해가 지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익어가는 청보리 위로 해가 지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민 애창 가곡인 '보리밭'. 아동문학가이며 시인인 박화목(1923∼2005)의 시에 윤용하의 곡을 붙인 가곡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 싹을 틔운 보리는 춘궁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조상들의 배를 채워준 소중한 존재다. 세상이 바뀌어 한동안 홀대를 받는가 싶었는데, 최근 관광과 접목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란 우리나라 사람들은 탁 트인 공간을 접하면 크게 감동한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다.

트로트 가수 남진의 히트곡 '님과 함께' 도입 부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상향이 나타나 있다.

녹색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鶴苑)농장의 청보리밭이다.

얕은 구릉이 펼쳐내는 파노라마는 회색빛 빌딩에 갇혀 살던 사람에게는 청량감을 선사한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고창의 청보리밭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관이 된다.

이제 보리는 식량일 뿐 아니라, 주요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학원농장 진영호 대표 [사진/성연재 기자]

학원농장 진영호 대표 [사진/성연재 기자]

전국 각지에 고창 학원농장을 본뜬 청보리밭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학원농장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무총리를 지냈던 진의종 씨가 1960년대 초 개발되지 않은 야트막한 야산을 개간해 농장으로 조성했다.

학원농장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인 황새골에서 따 왔다.

1960년대에는 당시 유행하던 뽕나무가 가득 찬 농장이었다. 이후 1970년대에는 목초를 재배해 한우 먹이로 활용했다. 1980년대에는 보리, 수박, 땅콩 등이 재배됐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진 전 총리의 장남 진영호 씨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귀농하면서부터다.

대기업에서 이사직까지 올랐던 진 대표는 농업에 대한 뜻을 버리지 못하고 1992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귀농해 보리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으로 가꾼 결과 청보리밭은 이제 우리나라 대표적인 경관 농업 관광지로 자리 잡게 됐다.

학원농장을 비롯한 100만㎡ 규모의 보리밭은 2004년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됐다.

매년 방문자가 늘어 지난해 청보리밭 축제에는 44만여 명이 찾는 성과를 올렸다. 학원농장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행사장에서 체험과 먹거리 부스를 열어 수익을 나눈다.

청보리밭을 거니는 여행객들 [사진/성연재 기자]

청보리밭을 거니는 여행객들 [사진/성연재 기자]

덕분에 진 대표는 2013년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축제가 취소됐지만, 청보리밭의 풍경에 이끌린 관광객의 방문은 이어졌다. 올해 방문객은 10만여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영식당에서는 보리밥을 맛볼 수도 있다.

출입구에서는 고창군에서 고용한 안내 인력들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만 출입시켰고 비접촉 체온계로 체온을 재고 있었다.

보리의 싱그러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온 아마추어 사진작가와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들은 땅거미가 질 때까지 카메라 삼각대를 고정한 채 지평선 너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진 대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농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잔일을 했다. 보리밭 한가운데서 작업하던 그를 만났다.

진 대표는 "올해는 코로나19로 모두 보릿고개와 유사한 체험을 하는 듯해서 안타깝다"면서 "조상들이 보리로 춘궁기를 넘겼듯, 관광객들이 보리밭을 보며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유기농의 아침 상하농원

상하농원에 해가 뜨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상하농원에 해가 뜨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과거 고창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고인돌 공원 등 전통적인 관광지였다.

그러나 최근 이 지역에서 주목을 받는 여행지는 청보리밭과 상하농원이다.

유기농 먹거리를 생산하는 상하농원은 고창군과 농림축산식품부, 매일유업이 합자해 만든 유기농 농업법인이자 농어촌 테마공원이다.

상하농원 개발은 농민과 정부, 지역자치단체가 동반성장을 모색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기획됐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연 것은 8년이 지난 2016년이 되어서였다. 그만큼 준비에 공을 들였다.

건물 디자인과 동선 등도 미적 관점을 빼놓지 않고 고려했다. 건축과 디자인을 총괄한 김범 설치미술가 등이 건물 한 동 디자인에 3년을 고민했을 정도다.

덕분에 하나둘씩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목마름이 만든 당연한 결과였다.

지역 농부들의 얼굴이 크게 내걸린 파머스 마켓 [사진/성연재 기자]

지역 농부들의 얼굴이 크게 내걸린 파머스 마켓 [사진/성연재 기자]

상하농원은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예쁘게 디자인된 뾰족지붕의 건물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지역 농부들이 생산한 유기농 제품을 판매하는 파머스 마켓이다.

건물 내부에는 환하게 웃는 지역 농부들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밑에는 신선한 먹거리를 사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파머스 마켓의 출입구를 지나면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푸른 청보리밭이다.

규모는 학원농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지만, 지역민과 기업이 가꿔가는 녹색의 꿈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청보리밭 뒤쪽의 화단에는 앙증맞은 모습의 프렌치 라벤더가 활짝 피어 있다.

10만㎡ 규모의 상하농원 내부에는 유기농 방사 계란을 생산하는 양계장을 비롯해 유기농 사료와 건초만을 먹는 젖소를 기르는 외양간 등 다양한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보리밭이 조성된 상하농원 내부 [사진/성연재 기자]

보리밭이 조성된 상하농원 내부 [사진/성연재 기자]

건강한 유기농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도 여러 군데 있다.

'빵 공방', 비엔나소시지와 햄, 프랑크 소시지 등을 생산하는 '햄 공방', 장류를 생산하는 '발효 공방' 등 다양한 공방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또,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친환경 동물농장이 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양과 새끼 염소 등이 뛰노는 동물농장에선 직접 홍당무 등을 먹일 수 있다.

다양한 메뉴의 식당 중에서 양식당인 상하키친을 찾았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야채를 재료로 한 피자라고 한다.

때가 때인지라, 레스토랑 내부보다 바깥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늘막 아래 나무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피크닉을 온 듯했다.

잠시 후 나온 피자는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떤 피자보다 맛났다. 이것이 신선한 음식 재료의 힘인가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신선한 유기농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맛보았던 것처럼 싱싱하고 달콤했다.

상하농원은 단순한 1차 농산물 생산에서 벗어나 가공(2차 산업)과 유통·서비스·관광(3차 산업)까지 접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한국형 6차 산업'의 농어촌 테마공원이다.

동물농장에서 한 어린이가 염소에게 홍당무를 먹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동물농장에서 한 어린이가 염소에게 홍당무를 먹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숙박시설인 파머스 빌리지가 2018년 개관한 데 이어 품격 있는 휴식을 콘셉트로 한 야외수영장과 스파도 연내 차례로 문을 연다.

파머스 빌리지는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지만 정결함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내부 집기는 화려하지 않게 나무에 페인트 색을 칠했고, 편의성을 최대한 살렸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신선한 유기농 음식 재료로 만든 조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식에서 나온 음식 가운데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갈색의 베이컨이었다. 보통 시중 베이컨은 붉은색 색소가 첨가돼 있지만, 이 베이컨은 그렇지 않았다.

또 한가지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자연 방사 계란이다.

농원 내부에서 자유롭게 키운 닭이 생산한 달걀인데 계란 노른자에 진한 붉은 색이 많이 첨가돼 주황색에 가까운 노른자였다.

식품 및 생명공학 분야를 전공한 류영기 대표의 안내를 받아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하는 닭들을 보았다.

류 대표는 "자연 방사 계란은 비타민E와 베타카로틴 성분이 월등히 많아 면역력 증진에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에서 느낀 상하농원의 인상은 진한 오렌지색의 노른자만큼이나 깊이 남았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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