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진 뉴스

[지금, 여기] 뜨거운 오월의 광주 ②

도시로 스며든 미술, 광주폴리

(광주=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1995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광주비엔날레,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문화 수도' 공약에서 출발해 2015년 문을 연 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문화 도시, 예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광주영상복합문화관 옥상에 설치된 뷰 폴리&설치작업 '자율건축' [사진/한미희 기자]
광주영상복합문화관 옥상에 설치된 뷰 폴리&설치작업 '자율건축' [사진/한미희 기자]

2011년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이었다가 2013년부터 독립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는 '광주폴리'도 하나의 축이다. '폴리'(folly)는 장식용 건축물을 뜻하는 말이다.

국내외 유명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광주폴리'는 광주 도심 곳곳에 의미와 볼거리를 심어 놓고 상호작용을 끌어내고 있다.

미술인 듯 아닌 듯, 숨어 있는 듯 아닌 듯한 폴리들을 숨바꼭질하듯 하나씩 찾고 마주치고 발견하는 것이 광주 구도심을 걷는 또 다른 재미다.

◇ 광주옛성 흔적을 따라

출발은 지상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시아문화전당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 '뷰 폴리&설치작업 '자율건축''(문훈·리얼리티즈 유나이티드)이다. 광주영상복합문화관 6층에 있는 광주폴리 정보센터를 거쳐 옥상으로 올라가면 된다.

기둥이 회전하며 색이 바뀌는 'CHANGE' 광고판 앞에 서면 광주읍성터와 아시아문화전당이 주욱 펼쳐진다. 광고판 뒤편으로 가면 선연한 분홍색과 노란색 스트라이프로 장식한 구조물과 데크에서 무등산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뷰폴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시아문화전당 [사진/한미희 기자]
뷰폴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시아문화전당 [사진/한미희 기자]

지상으로 내려오면 아시아문화전당을 하나의 꼭짓점으로 오각형을 이루는 광주읍성터를 따라 10개의 폴리가 설치돼 있다. 아시아문화전당 한쪽 남문인 진남문이 있던 자리에 광주읍성의 일부가 복원돼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개발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읍성의 북문인 공북문 터에 한옥의 공간과 사회적 위계질서를 표현한 '99칸'(피터 아이제만)이, 동문인 서원문 터에 '서원문 제등'(플로리안 베이겔)이 세워져 그나마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

서문인 광리문이 있던 황금동에서는 광주읍성과 읍성의 도로를 황동으로 새긴 '기억의 현재화'(조성룡)가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상업지구의 사거리 한가운데 야트막한 둔덕을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속도를 늦추고 광주의 과거를 내려다보게 한다.

광주읍성과 읍성의 도로를 황동으로 새긴 '기억의 현재화' [사진/한미희 기자]
광주읍성과 읍성의 도로를 황동으로 새긴 '기억의 현재화' [사진/한미희 기자]

두 블록 떨어진 구시청사거리에 만들어진 '열린공간'(도미니크 페로) 역시 박스 모양의 노란색 구조물을 둘러싼 여러 개의 동심원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오래된 상업지구 한가운데 생기를 불어넣으며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읍성 안쪽의 오랜 핵심 상업지구인 충장로 안에서도 청소년의 통행이 빈번한 골목이 있다. 과거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이었고 현재는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가 있는 충장로 안길의 이 골목에서는 '투표'(렘 쿨하스·잉고 니어만)를 지나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이 머리 위 전광판에 흐르고, 바닥에 '예', '아니오', '중립'으로 표시된 선택지가 다른 색깔로 표시돼 있다.

잠시 지켜보는 동안 대부분이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질문 아래 표시된 집계 수치는 '예'가 '아니오'보다 두 배 가까운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강철봉이 불규칙하게 무리를 이룬 '광주 사람들'[사진/한미희 기자]
강철봉이 불규칙하게 무리를 이룬 '광주 사람들'[사진/한미희 기자]

◇ 사거리를 놓치지 말 것

광주세무서 앞에서 바닥과 4.5m 높이에 설치한 사물로 사라진 성곽의 돌을 형상화한 '열린 장벽'(정세훈·김세진)을 지나 중앙로와 금남로가 만나는 금남로 공원으로 향하면 금남로공원 북쪽 모서리를 감싸고 있는 '유동성 조절'(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이 있다.

시내 한복판 대로가 교차하는 곳이지만 보행자에게는 대로 방향으로의 시선을 차단하고 인도와 공원, 지하도 상가를 아늑하게 아우른다.

다시 한미쇼핑 사거리에 이르면 교차로의 좁은 인도에 신호등과 가로등, 설비 장치 사이에서 가로수 두 그루를 완전히 품고 있는 강철봉 구조물을 마주한다. 공중에서 불규칙하지만 서로 만나 무리를 이루는 강철봉은 '광주 사람들'(나데르 테라니)이다.

전남여고 방향으로 제봉로를 걷다 동명로와 만나는 장동로터리에서는 소쇄원에서 영감을 얻는 '소통의 오두막'(후안 에레로스)을 만난다. 나무와 기둥 사이를 유연하게 흐르는 구조물은 밤에는 조명으로 기능한다.

초등학교 옆 보행자 도로에 설치된 '아이 러브 스트리트' [사진/한미희 기자]
초등학교 옆 보행자 도로에 설치된 '아이 러브 스트리트' [사진/한미희 기자]

◇ 동네 구석구석으로

아시아문화전당 동쪽의 오래된 동네에서도 폴리를 찾을 수 있다. 서석초등학교 옆 보행자 전용 도로에 설치된 '아이 러브 스트리트'(위니 마스)는 바닥에 데크와 잔디, 자갈, 우레탄, 나뭇조각 등 다른 재료로 'I LOVE'라는 글자를 만들고 뒤에 대형 칠판을 설치해 낙서와 그림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반대편 맨 끝 노란색 계단에 올라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다.

폐선된 철로에 조성한 도시공원 푸른길에 있는 '푸른길 문화샘터'(승효상)는 1960년대까지 있던 광주교도소 재소자들이 농장에 일하러 갈 때 건너다녔던 농장다리 아래 설치됐다. 계단은 공연의 객석이나 쉼터가 되고, 녹이 슨 강판은 사라진 철로를 연상시킨다.

푸른마을 공동체센터 앞에 있는 '꿈집'(조병수)에는 빛고을 광주가 담겨 있다. 옛집의 박공 모양을 닮은 집의 외부는 850개의 동판, 내부는 680개의 티타늄판이 서로를 붙잡고 지탱하고 있다. 티타늄판의 분홍색은 칠한 것이 아니라 빛의 간섭과 반사로 만들어진 천연색이다.

빛고을 광주를 담은 '꿈집' [사진/한미희 기자]
빛고을 광주를 담은 '꿈집' [사진/한미희 기자]

◇ 끝나지 않은 골목 여행

민주화 항쟁의 횃불을 따라, 광주읍성터를 따라 광주의 구도심을 한없이 걷고 또 걸었는데 아직 끝이 아니다. 구도심에서 광주천을 건너가면 100여년 전 광주에서 처음으로 서양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양림동이 역사문화마을로 조성돼 있다.

1920년대 지어진 우일선 선교사 사택 등 기독교 유적과 전통가옥이 어우러져 있다. 골목골목 숨어있는 작은 미술관과 카페, 주민과 예술가들이 폐품을 모아 예술작품으로 꾸민 펭귄마을까지 돌아보려면 반나절이 부족하다.

해 질 무렵 산책 나온 주민을 따라 푸른길 공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명동 카페 거리다. 고급 주택을 리모델링한 카페와 식당,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어 저녁부터 더 활기를 띠는 곳이다.

펭귄마을의 펭귄언덕 [사진/한미희 기자]
펭귄마을의 펭귄언덕 [사진/한미희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5/10 08:01 송고

광고
댓글쓰기

이매진 기사는 PDF로 제공됩니다. 뷰어설치 > 아크로벳리더 설치하기

출판물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