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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충주 작은 알자스

송고시간2020-05-12 08:01

프랑스 농부가 충주산 사과로 빚은 '시드르'

충주 작은 알자스에서 생산하는 와인들 [사진/조보희 기자]

충주 작은 알자스에서 생산하는 와인들 [사진/조보희 기자]

(충주=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다'라고 하면 대개 무색의 무알코올 청량음료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과의 즙을 짜서 발효 시켜 만든 알코올 음료를 가리킨다.

영국에서는 사이더(Cider), 프랑스에서는 시드르(Cidre), 스페인에서는 시드라(Sidra), 독일에서는 아펠바인(Apfelwein)이라고 불린다.

사이더, 혹은 시드르는 유럽을 중심으로 기원전부터 만들어진 유서 깊은 술이다. 포도를 재배하기 힘든 프랑스 북부와 영국에서 즐겨 마시면서 대중적인 술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1853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알코올을 뺀 청량음료 '사이다'로 바뀌었고, 1930년대 우리나라에도 건너와 인기 청량음료로 자리 잡았다. 원래의 시드르와는 완전히 다른 일반 음료가 된 것이다.

최근 국내에도 무알코올 음료 '사이다'가 아닌 사과주 '사이더' 혹은 '시드르'를 제조하는 양조장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충주 도자기 마을에 있는 '작은 알자스'도 그중 한 곳이다.

◇ 야생 효모로 천천히 발효시킨 '자연의 맛'

프랑스 알자스 출신의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작가 신이현 부부가 운영하는 이 양조장에서는 직접 재배한 유기농 사과로 정통 프랑스식 '시드르'를 만든다.

4월 초 찾은 '작은 알자스' 주변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포도나무를 심으러 밭에 간 에어케씨를 기다리며 정원의 벤치에 앉아 시드르를 한 잔 맛봤다.

작은 알자스에서 생산한 시드르 [작은 알자스 제공]

작은 알자스에서 생산한 시드르 [작은 알자스 제공]

사과의 속살을 닮은 노란 액체가 담긴 잔을 코에 갖다 대니 향긋한 사과 향기와 꽃향기가 미세하게 피어오른다. 잔에 따를 때는 꽤 강렬했던 기포가 입안으로 들어가니 부드럽게 터지며 춤을 춘다.

알코올 도수는 6%로 부담 없는 편. 예상과 달리 단맛 없이 드라이해 청량감이 더욱 살아난다. 나른한 햇살 아래 화사하게 피어오른 벚꽃과도 닮은 듯하다.

과하지 않고 부드러운 기포, 향기로우면서도 드라이한 맛의 비결은 제조 방식에 있다.

프랑스 농업학교에서 양조를 배운 에어케씨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과일에 어떤 인공 첨가물도 더하지 않고 술을 빚는 '내추럴 와인' 방식을 고집한다.

보통 시드르는 과일즙에 인공 효모를 첨가해 발효시킨다. 인공 효모를 쓰면 발효 속도가 빠르고 과일의 품질이 낮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알자스에서는 인공 효모를 쓰지 않고 사과 껍질에 붙어있는 야생 효모만으로 술을 발효시킨다. 과일 껍질에 붙어있는 다양한 효모가 그 술의 특징을 만들어내는 '과일주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신 작가는 "과일 껍질에 있는 수많은 야생 효모들은 사람처럼 성격이 가지가지"라며 "인공 효모를 쓰면 1∼2주 만에 발효를 끝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야생 효모는 다 죽어버린다"고 설명했다.

양조용 사과를 세척하는 작업 [작은 알자스 제공]

양조용 사과를 세척하는 작업 [작은 알자스 제공]

야생 효모만으로 술을 빚기에 더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고 손도 많이 간다.

우선 늦가을 수확한 사과를 잘 세척해 물기를 뺀 다음 굵은 강판에 간다. 믹서기로 가는 것보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꼭지나 씨는 갈리지 않은 상태로 남기 때문에 훨씬 맑은 즙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강판에 간 사과는 압착기로 옮겨 착즙한 뒤 발효 탱크에 들어간다.

인공 효모를 넣으면 곧바로 발효가 시작되지만, 착즙 과정을 거친 야생효모는 2주 정도 지난 뒤에야 천천히 발효를 시작한다. 야생 효모가 과즙의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생성하고, 그 과정에서 뀌는 방귀는 탄산이 된다.

효모의 활동이 강해지면 찌꺼기도 많이 생기는데 이 찌꺼기를 걷어내고 맑은 즙만 탱크로 옮겨 발효시키는 '탱크 갈이'를 겨우내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너무 빠른 속도로 발효가 진행되면 술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찌꺼기를 걷어내 효모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굵은 강판에 간 사과 [작은 알자스 제공]

굵은 강판에 간 사과 [작은 알자스 제공]

이렇게 4개월가량 탱크 안에서 발효된 술은 병으로 들어간 뒤 다시 1개월가량 2차 발효를 거친다.

2차 발효 과정에서도 찌꺼기가 생기는데 이를 병 입구로 모아 걷어내고 다시 병에 넣은 뒤 코르크로 막고 1개월가량 더 발효시켜야 비로소 천연 기포가 톡톡 터지는 시드르가 완성된다.

늦가을 수확한 사과가 이듬해 봄 시드르로 완성되기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신 작가는 "그해 과일의 당도가 떨어진다고 해서 당을 첨가한다든가, 찌꺼기를 필터링한 뒤 인공적으로 과일 향을 첨가한다든가, 산화를 늦춰주는 이산화황을 넣는다는가 하는 방법은 절대 쓰지 않는다"면서 "내가 편한 대로 발효해 원하는 맛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과일이 자연스럽게 발효되는 과정을 끝까지 같이 가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라고 했다.

발효를 마친 시드르 [작은 알자스 제공]

발효를 마친 시드르 [작은 알자스 제공]

◇ 컴퓨터 프로그래머에서 농부로

20여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그곳에 정착해 살던 에어케씨 부부가 한국에 온 것은 2016년이다.

알자스 출신인 에어케씨는 원래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파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하지만 오랜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껴 귀농을 결심했고, 프랑스 농업학교에서 와인 양조를 배운 뒤 고국을 그리워한 아내와 함께 낯선 한국 땅으로 이주해 충주에 터를 잡았다.

사과 재배지로 유명한 충주에서 직접 사과를 재배해 제대로 된 시드르를 선보이겠다는 것이 이들의 포부였다.

포도밭에서 일하는 에어케 씨 [사진/조보희 기자]

포도밭에서 일하는 에어케 씨 [사진/조보희 기자]

물론,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화학물질을 전혀 쓰지 않는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고집했지만, 임대한 밭이 원래 농약과 제초제를 쓰던 땅이어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첫해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돌아오는 사과는 얼마 되지 않아 옆집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사과를 사다 쓰기도 했다.

시드르 같은 발포주는 높은 기압을 견디는 특수한 병에 담아야 하는데 처음에는 지금 쓰는 것보다 강도가 낮은 병을 사용해 술병이 펑펑 터지기도 했다.

재배한 포도의 당도가 예상보다 낮았던 탓에 판매 허가받은 알코올 도수가 나오지 않아 빚은 와인을 모조리 '자체 소비'했던 해도 있었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당을 첨가할 수도 있었지만, 내추럴 와인 기법을 고집하는 이들로서는 허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결국 부부는 지난해 수안보에 약 6천㎡의 농지를 구입했다. 임대한 땅에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농법을 제대로 구현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새 과수원에 다양한 품종의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를 심고 있다. 작은 알자스의 시드르와 와인에 적합한 품종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현재 작은 알자스의 주력 상품은 '레돔 시드르'다. 부사에 홍옥과 속 빨간 사과인 레드러브 등 다른 품종의 사과를 추가해 만든다.

레돔 시드르 외에도 레드러브를 주 품종으로 한 로제 시드르, 캠벨 포도로 만든 로제 스파클링 와인, 청수 품종의 포도로 만든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 등을 만들고 있다.

시드르와 와인 코르크 [사진/조보희 기자]

시드르와 와인 코르크 [사진/조보희 기자]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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