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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포착] 곤한 새벽녘 날벼락,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송고시간2020-04-11 07:00

조각조각 무너져내린 와우아파트
조각조각 무너져내린 와우아파트

[국가기록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어스름하게 날이 밝아오는, 아직은 모두가 새벽 단잠에 빠진 시간. 돌연 천둥 치는 듯 귀청을 때리는 굉음이 나더니 산비탈에 서 있던 5층짜리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폭격을 맞은 듯 박살 난 건물 골조와 잔해 사이에는 부서진 가구들과 찢긴 잠옷이 뒤섞여 있었고, 쏟아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는 "사람 살리라"는 외침과 신음, 비명이 흘러나왔다.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다. 사진을 보면 형체를 가늠할 수 없이 무너진 건물 잔해가 비탈 아래로 흘러내렸다. 구조물은 조각조각 부서졌고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었다. 콘크리트 더미 위에서는 구조대원, 경찰, 군인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고는 오전 6시 30분께 발생했다. 평일 이른 시간이어서 어떤 이는 곤하게 잠을 자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아침밥을 마련하거나 출근과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습한 시체와 구출한 주민들은 대부분이 잠옷 차림이었다. 이날 사고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의 날벼락이었다.

당시 일간신문 보도들을 보면 구조대원은 사고 1시간 후에야 도착했는데 마땅한 장비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한다. 오전 8시쯤 크레인 1대에 이어 콤프레서, 와이어로프, 곡괭이 등 구조장비가 도착했고, 9시가 넘어서야 콘크리트를 뚫을 산소통이 투입되는 등 본격적인 구조작업은 많이 늦었다.

새벽에 일어난 사고에 늑장 구조 등으로 인명피해는 클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주민 32명이 죽고 30여명이 다쳤다. 또 무너진 아파트는 10여m 아래 개인 주택을 덮쳐 1명이 죽고 3명이 중상했다.

와우아파트는 지은 지 불과 4개월도 안 된 건물이었다. 어찌 된 일이었을까.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1968년부터 불량건축물 정리와 인구 분산을 위해 판자촌 지구 40곳에 '시민아파트'를 대규모로 짓고 영세민을 입주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1969년 12월 와우산 언덕에 5∼6층 건물 16동 규모로 들어선 것이 바로 와우아파트다.

와우아파트는 당초 건축설계가 잘못된 것은 물론 공사비가 낮게 책정돼 재하청 부실기업은 이윤을 위해 철근, 시멘트 등 건설자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가로 40㎝, 세로 50㎝, 높이 3m 기둥 7개가 아파트 건물을 떠받쳤는데 기둥 1개에 들어간 철근은 지름이 1㎝짜리 6개뿐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 기둥은 정상 하중의 3배를 버티다 무너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점도 지적됐다. 공사 기간은 착공부터 준공까지 6개월에 불과했다.

와우아파트 붕괴는 이윤에만 급급한 건설업자와 부패한 행정관리 등에 의해 발생한 사고였다. 즉 부실기업이 지명입찰을 받아 커미션을 챙기고 무자격자에게 하청을 줬고, 시 공무원은 업자로부터 돈을 받고 현장감독을 소홀히 했다. 당시 와우아파트는 일반 공사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비용으로 건설됐다고 한다.

이 사고로 마포구청장 등 관련 공무원 4명과 시공업자 1명이 구속됐고 김현옥 시장은 사고 8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와우아파트 나머지 동들이 차례로 철거됐고, 50년 전 사고 현장에는 현재 와우공원이 자리한다. 공원 남쪽과 동쪽은 대형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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