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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서해 다도해의 비경에 취하다…고군산길

송고시간2020-05-10 08:01

선유도 남악산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사진/전수영 기자]

선유도 남악산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사진/전수영 기자]

(군산=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서해 다도해 중 최고 절경이라면 고군산군도를 꼽지 않을까 싶다. 고군산길은 고군산군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3개의 섬, 즉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를 이어 걷는 길이다. 옹기종기 모인 섬들을 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간다.

◇ 서해 대표 다도해 고군산군도

'산들의 무리' 군산(群山). 군산 앞바다 섬들이 산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군산의 진짜 뜻은 '섬들의 무리'다.

군산 중에서도 고군산군도는 서해의 대표 다도해다. 63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이 중 열여섯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 고군산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까지 이곳에 수군 진영이 있어 군산진이라고 불린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 이 진영이 현재의 군산으로 옮기면서 옛 군산이라는 뜻의 고군산이 됐다.

전라북도 군산에는 걷기 좋은 '구불길' 8개가 있다. 구불길이라는 이름은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져 여유, 자유, 풍요를 느끼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휘어진 길 저편에 기다리고 있을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고군산길은 구불 8길이면서 군산의 대표 길이다. 전라북도가 선정한 '전북 천리길'의 제1코스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해양수산부로부터 해안누리길로도 선정됐다. 탁월한 풍광 덕에 감투를 여럿 쓴 모양새다.

망주봉 [사진/전수영 기자]

망주봉 [사진/전수영 기자]

고군산길은 A, B 코스가 있다. 이중 주변 경관이 뛰어난 A 코스를 택했다. 이 길은 선유도 집라인 놀이시설인 스카이선라인∼장자대교∼장자도∼대장도∼대장봉∼선유도해수욕장∼대봉전망대∼몽돌해수욕장∼오룡묘∼스카이선라인으로 이어진다.

선유도에서 시작해 장자도, 대장도로 갔다가, 다시 선유도로 와서 명사십리, 망주봉 등 명승지를 끼고 걷는다. 군산시 홈페이지에는 걷는 데 약 5시간 걸린다고 소개돼 있지만 보통 사람 걸음으로 4시간 정도면 될 것 같다.

스카이선라인에서 장자도로 향해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 바다 위에 푸른 숲을 머리카락처럼 인 작은 섬들이 점점이 펼쳐진다. 몇 개나 될까 헤아려보다가 섬들이 너무 많아 숫자 세기를 포기한다.

다도해는 주로 남해를 일컫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고군산군도는 그 어떤 곳보다 다도해의 진수를 보여준다. 좁은 간격으로 올망졸망 모여 있는 작은 섬들 사이에 있는 바다는 마치 호수 같다.

특히 고군산의 중심인 선유도에서 보는 다도해는 감동을 준다. 사방에 있는 작은 섬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아득한 갯벌, 높은 바위산이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온다. 10㎞ 거리 안에 워낙 많은 섬이 있어 바다가 섬을 둘러싼 게 아니라 섬들이 바다를 에워싼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장봉에서 바라본 장자도(오른쪽)와 선유도 [사진/전수영 기자]

대장봉에서 바라본 장자도(오른쪽)와 선유도 [사진/전수영 기자]

◇ 장자도와 대장도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다리는 두 개다. 두 다리 이름이 모두 장자대교다. 하나는 최근에 생긴 우람한 현대식 다리이고, 다른 하나는 옛날 다리다.

옛 장자대교는 사람만 다니는 보행교로 쓰이고 있다. 관광객이 좋아하고, 지역 주민이 애착을 갖는 다리다. 다리 아래로 바닷물이 푸르다. 서해는 갯벌 때문에 흐린 게 보통인데 섬들이 많은 이곳은 파도가 잔잔해 바닷물이 맑은 비췻빛이다.

다리를 건너 장자도에 도착했다. 2017년 12월 고군산대교가 개통된 뒤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는 게 실감이 났다. 식당, 찻집이 즐비했고 이런저런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에도 관광객이 제법 많았다. 식당 주인들은 손님이 줄었다며 울상이지만 다른 지역에 비교하면 활기가 있었다.

10분이나 걸었을까. 곧이어 또 다른 섬인 대장도에 도착했다. 선유도에서 출발해 장자도를 지나 대장도에 오는 데 30여분쯤 걸린 것 같다. 그만큼 섬들은 작고 서로 가까웠다.

대장도 정상인 대장봉을 향했다. 밑에서 올려다본 대장봉은 해발 100m가량의 야트막한 산인데도 그윽한 품격을 자아낸다.

선유도와 대장도가 선경처럼 보이는 것은 특이한 산세 때문이기도 하다. 두 섬의 바위는 적색, 갈색을 띠고 나무가 별로 없어 민둥 바위산 같은 느낌이다. 벌거벗은 바위산과 그 위에 군데군데 난 푸른 나무들이 의연해 보였다.

그러나 실제 대장봉에 오르면서 보니 숲이 꽤 우거져 있었다. 산길은 바위를 피해 부드러운 흙이 깔린 숲속으로 나 있었기 때문이다. 동백, 소나무, 사철나무 등 상록수가 많아 초봄치고는 녹음이 꽤 짙었다.

대장봉에 서니 선유도, 대장도, 선유대교, 장자대교, 선유도해수욕장 등 고군산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말도, 방축도 등 고군산의 다른 섬들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장자대교를 걷는 연인들 [사진/전수영 기자]

장자대교를 걷는 연인들 [사진/전수영 기자]

등산길 옆 나뭇가지에는 이곳을 다녀간 전국 각지 산악회 리본들이 묶여 있다. 달빛 산악회, 팔공산 산악회 등 대구와 관련 있을 법한 산악회 리본들이 눈길을 끌었다. 영호남 지역감정을 치유할 최고의 보약으로 사람의 왕래만 한 것이 없으리라.

대장봉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장자할매바위가 섬 수호신처럼 서 있다. 과거 보러 떠난 남편이 첩과 함께 귀향하는 것을 보고 몸이 돌로 굳어버렸다는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다.

대장봉을 오르내리는 데 30분쯤 걸린 것 같다. 가파른 구간이 있지만 풍광에 취해 힘든 것을 잊게 된다. 대장도와 장자도의 길을 되짚어 출발점인 스카이선라인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군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유도의 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악산 진달래 [사진/전수영 기자]

남악산 진달래 [사진/전수영 기자]

◇ 신선을 매혹한 선유도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도에 닿으면 선유도해수욕장과 망주봉의 비경이 눈뿐 아니라 가슴까지 사로잡는다. 선유도는 두 개의 땅덩어리가 선유도해수욕장의 모래사장으로 연결돼 있다. 두 개의 섬처럼 보일 만큼 신비스럽다.

명사십리라고도 불리는 이 해수욕장 모래는 부드럽고 깨끗하다. 물도 깊지 않아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에 그만이었다. 여름에는 해수욕객과 관광객이 너무 많아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고군산은 작은 섬들의 군락인 만큼 길은 대개 편도 1차선이고 주차장도 별로 없다. 관광 성수기에는 별도의 교통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 같았다.

망주봉은 두 개의 바위산이다. 높이 150m가량인데 여름에 많은 비가 내리면 폭포가 생겨 정상에서부터 암벽을 타고 내린다. 바위산 표면에 물줄기 자국이 선명했다.

망주봉에서는 망주폭포, 선유낙조, 삼도귀범(앞산섬, 주산섬, 장구섬이 귀향하는 범선을 닮음을 일컬음), 명사십리, 무산 12봉(12개의 중국 명산을 닮은 봉우리들), 평사낙안(땅에 내려온 기러기를 닮은 모래톱) 등 선유 6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유명한 선유 8경은 여기에 장자도 밤바다의 수많은 고깃배 불빛을 가르키는 장자어화, 신시도 월영봉 단풍을 지칭하는 월영단풍이 더한다.

망주봉 밑을 지나 남악산 대봉 전망대로 향했다. 남악산은 대장도의 대장봉보다 조금 더 높은 산이다. 대장봉보다 덜 가파르고 숲이 더 우거졌다. 길옆으로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꽃이 막 지기 시작했으나 선명한 분홍 꽃이 여전히 예뻤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나 바위틈에 핀 진달래는 여린 듯, 강인한 듯 고운 자태다. 군락으로 모여있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핀 수많은 진달래 곁을 지나는 나그네는 황홀하다.

선유도해수욕장 일몰 [사진/전수영 기자]

선유도해수욕장 일몰 [사진/전수영 기자]

대봉 전망대에서는 선유도의 진수를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가까이로는 명사십리와 망주봉, 누워있는 선녀의 모습을 닮았다는 선녀봉이 선명하고, 멀리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길이 33㎞의 새만금 방조제와 고군산의 가장 큰 섬 신시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물 빠진 갯벌 위에는 고깃배들이 시간마저 멈춘 듯한 평화로운 어촌의 주인공인 양 정지해 있었다. 바다 표면에 드넓은 김 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내려가는 길에는 얇은 판이 여러 겹 겹쳐진 모양의 편암류 바위들이 이곳이 화산지형임을 말해줬다. 박석처럼 조각조각 부서진 돌 때문에 아차 하면 미끄러질 것 같다.

산길을 다 내려가면 아담한 몽돌해수욕장이 나온다.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놓았는데 손이 부족한지 아직 치우질 못했다. 쓰레기를 줄이거나 잘 치우기만 해도 장소의 품격이 높아질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오룡묘 [사진/전수영 기자]

오룡묘 [사진/전수영 기자]

오룡묘로 향했다. 선유 3구 마을에 있는 오룡묘는 두 채의 작은 당집이다. 고려 인종 때(1123년) 이곳을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선화봉고려도경'에 기록됐을 정도로 유서 깊다. 먼 외국으로 가는 뱃길의 안전과 무역의 성공을 기원했던 곳이다. 망주봉을 뒷배로 한 오룡묘 주변에는 무수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신령스럽고 기괴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룡묘에서 내려와 갯벌 위로 난 다리를 걷다 보면 다시 명사십리 선유도해수욕장에 이르고, 이어 출발점에 회귀하게 된다. 산봉우리 2개를 오르는 게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실제 걸어보면 그리 힘들지는 않다. 평지, 산길, 바닷길이 다채로워 오히려 코스가 빨리 끝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아름다운 길이 많다. 고군산길도 누군가에는 '인생길'(평생 기억에 남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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