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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포착]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두 번의 탄핵

송고시간2020-03-14 06:00

노무현·박근혜 탄핵심판…기각과 파면으로 운명 엇갈려

슬퍼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
슬퍼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자료.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2004년과 2017년 두 차례 있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달력을 보면 3월 둘째 주에 이 두 개의 탄핵과 관련한 중대한 결정이 이뤄졌다.

첫 번째 사진은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모습을 포착했다.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 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의 의원들도 보인다.

이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저지했지만, 박관용 국회의장은 표결을 강행했고, 재적의원 271명 가운데 195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다.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은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해달라는 국회의 청구를 기각하며 종결됐다.

탄핵 심판하는 8인의 재판관들
탄핵 심판하는 8인의 재판관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가운데)이 2017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자료. 재판매 및 DB 금지]

두 번째 사진은 2017년 3월 10일 오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왼쪽에 4명 오른쪽에 3명의 재판관이 앉아 있다. 맨 오른쪽 한 자리는 비어 있다. 원래 재판관은 9명이지만 박한철 헌재소장이 앞서 1월 퇴임한 후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탄핵심판 결정문을 낭독하던 이정미 권한대행은 11시 20분께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인 주문을 선고하겠다"고 밝힌 후 굳은 표정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또박또박 읽었다. 헌정사상 최초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었다.

애초 법조계 안팎에서는 인용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일부가 기각 또는 각하를 점쳤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8대 0'이라는 전원일치 판결이 나왔다.

두 개의 탄핵은 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이 달랐다.

우선 노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한 선거법 위반 발언이 발단이 됐고,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서원(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이 문제가 됐다. 즉 노 대통령은 법치와 민주국가 기본 원리에 대한 위반행위에 대해, 박 대통령은 뇌물 수수, 부정부패 등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에 대해 중대한 법 위해행위가 있었는지 심판을 받았다. 탄핵 사유는 노 대통령이 3개, 박 대통령이 13개였다.

심판 과정도 달랐다. 2004년에는 재판이 총 7차례 열렸고 증인은 4명에 불과했지만 2017년에는 총 20차례 심리가 진행됐고 법정에 나온 증인만도 25명이었다.

헌재를 구성하는 재판관 숫자는 2004년에는 결원 없이 9명이었지만 2017년에는 8명이었다.

결국 노 대통령은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즉시 직무에 복귀했지만, 박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심판과 관련한 인물들의 입장도 대조적이다. 2004년에는 당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이 탄핵을 주도했고,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은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017년에는 문 대통령(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장했다.

같은 점은 선고일이 금요일이었고, 두 대통령 모두 헌재 탄핵심판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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